사과 전쟁

백설공주도 울고 갈 금사과 쟁탈전

by 쿠크다스 이실장

어린 시절, 나는 유난히도 사과를 좋아했다.


빨갛고 탐스러운 예쁜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면 입 안에 퍼지는 그 새콤달콤하고 아삭한 맛이란!

아담과 이브가 왜 신의 금기를 깨고 선악과(사과)를 따 먹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 치명적인 유혹이 단번에 이해가 갈 정도였다.


문제는 사과를 향한 나의 사랑이 너무나 지독한 나머지, 여동생 몫의 사과까지 탐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초등학생이었던 어느 날, 나는 동생의 사과를 훔쳐 달아나다 그만 현장에서 딱 걸리고 말았다.


그걸 본 여동생은 당장 자기 것을 내놓으라며 나를 쫓아왔다.

난 내가 언니인데 도망가면 더 빠르겠지 생각하며 얕잡아 보았지만 자기 것을 빼앗길 수 없다는 여동생의 집념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돌아 나를 쫓아온 여동생은 결국 턱밑까지 나를 추격했고 결국 집 뒷마당에서 막히는 대치 상황으로 이어졌다.


다급해진 나는 마당 한편에 있는 작은 커터칼 집어 드는 위험천만한 행동을 하고야 말았다.


" 안 줄 거야. 더 이상 다가오면 너 다쳐!!."


칼을 쥔 채 여동생을 위협했지만, 여동생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 당장 내 사과 내놔." 라며 거침없이 다가오는 여동생 기세에 당황한 나는, 겁을 주려 칼을 휘두르다 그만 동생의 오른손바닥에 상처를 내고 말았다.


손에서 피가 나자 동생은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고, 비명 소리에 놀란 엄마는 무슨 일이냐며 뛰쳐나오셨다.


상황을 파악한 엄마가 빗자루를 치켜들자마자 나는 냅다 줄행랑을 쳤다.


혼비백산 도망쳐 나온 덕에 나는 난생처음으로 시간짜리 뜻하지 않은 가출을 경험해야 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아빠가 오실 시간이 다가오자,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결국 난 저녁 식사 직전, 제 발로 집에 들어가 엄마에게 몽둥이찜질을 제대로 받았다.

실컷 혼나고 보니, 손바닥에 붕대를 감은 여동생의 모습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난 울면서 여동생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러나 진짜 위기는 엄마의 매가 아니었다!

평소 너무나 엄격하셨던 아빠가 이 사태를 아시면 어떻게 나올지, 상상만으로도 공포가 밀려왔다.

그건 다친 여동생도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맨 정신으로 아빠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던 우리는, 아빠가 오시기 전 일찍 잠자리에 들어 자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혼나서 울다 잠든 척.


여동생은 아파서 울다 잠든 척.


저녁 식사 후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들으신 아빠의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심장이 벌렁벌렁.


떨리기 시작했다.


언제 벼락같은 불호령이 떨어질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곁에서 아빠 인기척만 느껴질 뿐, 몇 분 동안 아빠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길게만 느껴졌던 10분 남짓한 시간이 지나고 아빠는 우리 곁을 떠나셨고, 난 슬그머니 눈을 떠서 주위를 살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여동생의 손바닥에는 그 당시 우리에게 아주 거금이었던 천 원짜리 지폐가 쥐어져 있었다.


혼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나는 그 지폐를 쥔 여동생이 너무나 부러웠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그 돈을 가진 여동생에게 아주 호되게 당하고 말았다..


100원짜리 스크류바 아이스크림 10개를, 내 앞에서 아주 보란 듯이 혼자 맛있게 먹어 치웠기 때문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여동생은 아빠의 동정심을 얻기 위해 다친 손바닥을 이불 위로 살포시 올려놓고 자는 척을 했다고 한다ㅋㅋㅋ


역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법이다...


초등학교 교사가 된 여동생은 지금도 반 아이들에게 이 무용담을 들려주곤 하는데, 아이들이 배꼽 잡고 웃는다고들 한다.


이토록 사과에 진심인 나이지만, 요즘은 사과값이 금값이라 예전처럼 맘껏 사 먹지 못하니 영 아쉽다.


그래서 나의 지독한 사과 사랑을 아는 남편이 재작년, 시댁의 시골 땅에 사과나무 다섯 그루를 직접 심어 주었다.


그 결과, 올해는 드디어 수확이 가능하다고 한다.

내킬 때마다 가지에서 바로 따 한입 베어 물면 달콤한 과즙에 도파민 터지도록, 올 가을엔 꼭 사과 풍년이 들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빨갛게 익은 사과를 한 아름 안고 여동생을 찾아가 그때의 배로 갚아 주며 말해야겠다.


"그땐 정말 미안했어"


내 욕심이 남긴 흉터가 있는 동생의 손.

그 손에 이제는 가장 맛있는 사과를 한가득 안겨줘야겠다.

붉게 익은 그 마음속에 진심 어린 나의 사과(謝過)도 함께 넣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