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방을 나간 실장, 그리고 마지막 안녕.

나의 서투름을 묵묵히 견뎌준 그녀들... 고마웠어요.

by 쿠크다스 이실장

2025년 6월 말, 오매불망 고대하던 승진 대상자가 된 후 난 새로운 부임지로 향했다.

미리 인사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 설렘으로 가득 찬 내게 카톡 알림이 울렸는데 앞으로 같이 근무하게 될 막내 직원이 보낸 메시지였다.


내가 가져간 떡 간식이 너무 맛있었다며 선생님들과 잘 나눠먹었다는 감사 인사와 함께 조심히 돌아가라는 다정한 배려의 멘트까지. 내가 꿈꾸던 싹싹한 막내의 표본을 만난 것 같아 절로 웃음이 났다.

‘아 나도 이제 행정실장으로 대접을 받는구나’ 싶어 어깨가 으쓱해졌다.

하지만 차석 자리에 있는 그분에 대한 예감은 조금 달랐다.

인사하러 간 날은 출장 중이라 얼굴도 못 보았고, 그 흔한 축하전화 한 통이 없었다.

벌써부터 내가 꼰대 마인드가 나오는 건지 그 부분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 솔직히 나보다 열한 살이나 많다는 점도 내심 부담이었다.


그 불길한 예감은 첫날 업무 분장을 나누며 현실이 되었다.

분장표를 검토한 난, 보통 막내들이 처리할만한 실무업무를 행정실장 업무표에서 지우고 막내 직원에게 새로 해보라며 권했다. 어차피 앞으로 다른 학교로 가면 맡을 수도 있는 일이니 미리 경험 삼아 배우라며 말이다.

내가 판단하기엔 자주 챙겨야 하는 일도 아니고 과중한 업무도 아니라서 당연히 쉽게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막내직원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업무라며 거부의사를 표시하였다. 적잖이 당황한 난, 정 힘들면 내가 도와주면 될 것이고 정 못하겠다 싶음 내가 다 처리할 테니, 다음번 그 자리에 발령받아 오게 될 사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업무부장표에는 넣어놓겠다고 말했다

막내직원은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마지못해 수긍하는 눈치였고, 난 그거 하나 외에는 다른 부분은 수정 없이 그대로 두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인하고 넘어가겠지 생각했지만 그건 나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혹시 업무분장으로 할 말이 있는지 예의상 물어본 차석님의 대답은 "그럼 실장님 일이 너무 없겠는데요."였다.

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헉 이건 무슨 하극상이지...

그거 하나 업무 넘긴 거 가지고 내가 그런 말까지 들어야 하다니.

근무 첫날부터 그것도 본인 업무도 아닌 막내가 맡게 될 일을 가지고 이렇게 직설적으로 상급자의 역할과 책임을 무시하며 말해도 되는 건가!


물론 본인 딴에는 막내 직원을 도와주고 싶어 한 말이었겠지만, 그래도 상급자에게 해서는 안 되는 무례한 말이라 생각하며 난 바로 쏘아붙이며 말했다.


“행정실장이 왜 일이 없나요??

교장선생님, 운영위원들, 선생님들, 민원인들을 만나고 상대하며, 행정업무 총괄 담당자로서 책임질 게 많은데 왜 일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급속도로 사무실 분위기는 얼어붙었고 막내 직원은 본인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그런지 놀라 일어나며 내게 앞으로 가르쳐 주시면 열심히 해보겠다며 분위기를 수습했다.

나도 화난 기분을 드러내며 말한 것도 죄송하기도 해서 언제든 어려우면 실무일을 잘 돕겠다고 말하며 그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그날 이후 사무실에는 묘한 기싸움과 눈치 작전이 감돌았고, 서로 조심하며 행동했지만 어색함은 이어졌다.


편안하고 안온했던 삶이 어느 한 사람으로 인해 깨어지고 어긋나게 되면 그 사람을 경계하고 미워하듯이, 초보 행정실장으로서 여러 방면으로 바꾸려고 하는 나의 가득 찬 열정이 직원들은 적응하기 어려웠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또 하나 갈등이 대두된 건 복무 문제였는데, 병가를 연가처럼 자연스럽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직원들의 마인드였다.

본인이 개인적으로 여행 가는데 병가를 쓰겠다고 해서 나를 놀라게 하더니, 남직원은 평일에 낚시를 가면서 병가를 쓰고 다녀오겠다고 해 나를 기함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그동안 어떻게 지냈길래 복무가 이 모양이지 이해가 안 되었다.


저번에 화난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낸 이후 언행을 조심하며 가급적 평온한 이 분위기를 유지하고자 참고 있었지만 3개월 후에 결국 난 막내직원의 행동 하나에 폭발하게 되고 말았다.


유난히 추석 연휴가 길었던 작년 10월, 기상 악화로 배가 끊길 것을 우려해 막내 직원은 오랜만에 고향집 방문을 위해 일찍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명절이니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라며 전통시장 방문 출장을 내고 일찍 나가라며 배려했다.

그렇지만, 막내직원은 내 생각과 달리 의외의 대답을 했다.

출장을 낼 필요없이 본인이 남은 병가가 많으니 그걸 쓰고 일찍 조퇴하면 된다며 대답했고, 내가 말문이 막혀 가만히 있자 연 병가 6일은 마음대로 써도 된다며 행정실장인 나를 가르치기에 이르렀다.


아. 요즘 신규 공무원들이 병가를 본인 연가처럼 쓴다더니 정말이네...


결국 난 막내직원에게 잠깐 앉아보라며 꾸짖었다.

아프지도 않은데 병가를 쓰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그런 마인드는 신규 공무원으로서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니니 잘 생각해 보라며 충고했다.

그리고 차석주무관님도 불러 왜 이렇게 병가를 자연스럽게 쓰게 되었는지 설명을 요구했고, 본인들이 섬에서 근무하며 출퇴근 하느라 고생하니 그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용인이 되었다고 했다.

난 그래도 병가라는 건 몸이 아프거나 병원에 갈 때 쓰는 거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설득했다.


이후 막내직원이 다음날 조퇴를 내는 걸로 수긍하고 마무리되는 줄 알았으나, 다음날 출근시간이 다 되도록 그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고 혹시나 하여 전자복무 신청서를 확인해 본 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어떠한 말 한마디 없이 학습휴가를 올려놓고 나오지 않는 거였다.

내 상식으론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행정실 직원들에게 혹시 막내직원이 휴가를 신청한다는 말을 들었냐며 물어보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단톡방에 올려져 있다며 남직원이 친절하게 확인 사살을 시켜주었다.


내용인즉슨, 본인이 살펴보니 학습휴가가 많이 남아 있어 조퇴를 안 쓰고 휴가를 쓰면 될 것 같다며 우연히 만난 교장선생님께는 미리 말씀은 드렸으니, 본인은 오전에 관사에서 쉬고 배 시간에 맞춰 다른 사람의 차를 얻어 타고 나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들 추석 연휴를 잘 보내라는 인사말로 친절하게 끝맺어져 있었다.


대박. 이거 뭐야.

교장선생님께는 본인이 직접 얘기했으면서, 직속 상사인 나한테는 말도 없이 단톡방에 올려놨으니 읽고 결재만 하라는 뜻인 거야? 어제 내가 지적 좀 했다고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어이가 없네.


난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도저히 사무실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초보 행정실장이라 이런 분위기를 몰라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 길로 전화를 걸어 여러 선배와, 동기들, 지인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다들 답변은 상사에게 말도 없이 단톡방에 휴가를 신청하는 건 명백한 잘못이며, 상사에게 결재를 먼저 득하고 쉬는 거지 사무실에 나오지 않고 마음대로 쉬는 태도는 잘못되었음을 확실히 알려줘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난 당장 막내직원에게 사무실로 나오라며 가르치고 싶었지만 감정이 극도로 흥분되어 있을 땐 만나는 건 좋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리고 추석 연휴 전에 괜히 감정 싸움하는 것도 그 친구에게도 좋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 연락하고 싶은 마음을 꾹. 억눌렀다.


그래도 뭔가 화난 감정을 표출하고 싶었던 나는 단톡방에서 조용히 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네가 정말 잘못했다고 느끼고 사과해 줬음 하는 나의 작은 바람이었고, 못나고도 어리숙한 행동이기도 했다.


그 친구에게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커서 그런지 그날의 마음의 상처로 인해 결국 난 이틀 동안 추석 연휴를 망쳤고, 인간관계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어떻게 하면 그 아이가 기분 나쁘지 않게 설명을 해 줄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했다.


원칙을 앞세워 그녀들을 가르치려 했던 나의 모습은 리더의 카리스마가 아니라, 어쩌면 초보 실장으로서 느끼는 불안함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처음과 달리 바로 화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참았던 나 자신에게는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웃으면서 마무리할 수 있었던 일인데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군 것도 있었을 거라며 자책도 해보았다.


여러날 고민 끝에, 그래도 연휴가 끝나고 출근하면 그 친구에게 웃으며 먼저 다가가리라 마음 먹고 난 일찍 사무실에 나왔다.

보통 내가 출근할 땐 사무실에 아무도 없었는데, 그 막내 직원이 그날따라 일찍 나와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일어나 안절부절못하며 연휴 내내 고민을 많이 했다며 어쩔 줄 몰라하는 그 아이의 사과를 들으며, 내 마음속 응어리도 눈 녹듯 사라졌다.


아 그렇게 고민하는 줄 알았음 내가 먼저 연락을 해볼 건데 연휴 내내 마음고생 했을 직원을 생각하니 너무나 미안했다.


그렇게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듯 우리들은 서로 배려하며 6개월을 보냈고, 드디어 새해 첫날 그녀들은 2년간의 섬 생활을 마치고 각자 원하던 곳으로 떠났다.


나는 정성껏 준비한 감사패와 선물을 건네며 진심으로 작별인사를 건넸다.

리더로서 부족한 나를 견뎌준 그녀들이 고마웠고, 한편으론 벌써 그립기도 하다.

그녀들이 떠난 빈자리를 보며 깨닫는다.


리더의 자격은 지시하고 군림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갈등의 파도를 견디고 끝내 품어내는 인내에 있다는 것을.


정말 인간은 고통 속에서 성장한다는 고전의 진리는 참이다.

아프고 힘들었던 그 시간은 결국 나를 한 걸음 더 성장하게 했다.


행정실장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온몸으로 익히게 해 준 그녀들의 앞날을 응원하며,

나의 서툴렀던 첫 계절, 그리고 나의 첫 번째 그녀들.

덕분에 충분히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녀들의 앞날을 축복하며, 진심을 담아 배웅한다.

정말 마지막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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