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대로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올해 유난히 어려웠던 ‘불수능’의 난이도 속에서도, 내가 사는 광주에서 10년 만에 수능 만점자가 배출되었다.
아파트 단지 단톡방은 연일 이 놀라운 소식으로 화제가 끊이지 않는데, 특히 이 학생이 문과 출신이자 실질적인 전국 수석임에도 대다수가 열망하는 의대를 택하지 않았다는 점이 평범한 이들의 눈에는 그저 신기하고도 특별한 사람으로 비치고 있다.
사실 이 남학생은 이미 예견된 인재였는데, 작년 고2 때 유명 교육 유튜브 채널 ‘미미미누’에 출연해 고난도의 수학 문제를 막힘없이 풀며 진행자와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던 학생이었다.
그때 댓글에 남긴 ‘최장우’ 학생의 글이다.
‘영상 중간에 파란 점퍼 입고 나오는 광주서석고등학교 최장우입니다!
미누님 맨날 유튜브로만 보다가 직접 실물로 뵙고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다음에는 수능 만점자 인터뷰로 돌아올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해볼 생각입니다 ㅎㅎ
좋은 기회 만들어주신 미누님께 감사드리고 영상 시청하신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장우 군은 정확히 1년 만에 자기가 한 말을 현실로 이루어내며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판타지의 살아있는 증인이 되었다.
특히 장우 군은 단순히 공부만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뛰어난 성적은 물론이고 인성과 리더십, 훈훈한 외모와 운동 능력, 그리고 인문학적 통찰력까지 겸비한 그야말로 ‘육각형 인재’의 표본이었다.
사립고등학교인 우리 아파트 학군에서 이런 인물이 나오다 보니, 이웃들은 장우 군 어머니가 유퀴즈방송에 출연해 교육 비법을 전수해 줘야 한다며 부러움 섞인 탄성을 내뱉는다. 벌써부터 미래의 사위로 점찍으며 농담 섞인 기대감을 표하는 딸 가진 엄마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그가 방송에서 밝힌 꿈은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진출하여 우리나라의 긍정적인 변화에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다.
특히 그는 소모적인 갈등과 비난이 팽배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정확히 짚어내며, 선진국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는 내부의 불필요한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이런 혜안을 가진 인재가 전국 1등이라는 사실에, 내 자식 일이 아님에도 왠지 모를 든든함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샘솟는다.
반면, 우리 집 풍경은 수능 만점자 대신 게임만 하면 행복한 세 아들이 있다.
한창 잘 자라고 있는 세 아들은 건강한 체구(아빠 유전자로 키가 크다)와 통통하고 귀여운 외모를 자랑하며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누구는 수능 시험지의 정답을 맞히며 미래를 설계하고, 누구는 게임 속 승리의 쾌감을 맛보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정답은 다를지언정 아이들이 내뱉는 행복의 농도만큼은 우열을 가릴 수 없기를 바랄 뿐.
공부까지 잘해주었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요즘 아이들에게서 절실함이나 꿈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중학교 3학년 진학을 앞둔 큰아이는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다며 답답함을 안긴다.
비단 우리 아이의 문제만 아니라, 요즘 아이들에게서 절실함이나 가슴 뛰는 꿈을 발견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결과가 나온 중2 첫째의 기말고사 성적은 그야말로 헛웃음이 나오는 수준이었다.
학창 시절 시골 학교였지만 전교 3등 밖을 벗어나 본 적 없는 나의 DNA는 대체 어느 골목에서 길을 잃은 것일까! 아들은 엄마 머리를 닮는다는 속설은 우리 집 거실의 소파 위에서 처참히 부정당하고 있다.
정신 건강을 위해선 안 보는 게 정말 상책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금 긍정의 회로를 가동해 본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지금의 성적표는 한낱 작은 점에 불과할지 모른다고.
수능 만점자 소년이 1년 전 뿌렸던 말의 씨앗이 오늘 찬란한 꽃을 피웠듯, 우리 아이들의 마음속에도 언젠가 자신만의 꽃을 피울 씨앗이 심어지리라 믿는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격언처럼, 사람의 앞날은 누구도 단언할 수 없는 것이기에 잠든 아이들의 머리맡에서 다시 한번 주문을 걸어본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밝고, 그들은 반드시 자신의 길을 찾아 잘 해낼 것이라고.
말에는 힘이 있고, 그 간절함은 결국 길을 만들 것이기에.
오늘도 나는 장우 군이 보여준 그 ‘말하는 대로’의 기적을 우리 집 거실에서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