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인 줄 알고 왔는데, 법인이래요
법인 첫 출근날이었다.
안내해 준 예쁜 대리님이 나를 보며 말했다.
“선생님, 이쪽으로 오세요.”
… 선생님?
순간 뒤를 돌아봤다.
혹시 다른 사람 부르는 줄 알고.
나는 티쳐가 아니다.
학원도, 학교도 아니고, 분명 회사에 취직했는데.
그런데 여긴 ‘회사’가 아니라 ‘법인’이란다.
상무도 없고, 전무도 없고,
갑자기 ‘파트너’가 있고,
호칭은 ‘선생님’이고.
내가 알던 직장 문법이 하나씩 무너졌다.
회사 경력이 꽤 되는데.
그런데 여기서는 모든 게 다시 신입이었다.
‘법인’이라는 세계에 들어온 첫날,
낯설고 어색했다.
나는 지금…
회사원이 아닌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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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법인은 전문가 집단이다.
회계사 선생님, 세무사 선생님,
IT Specialist 니까 시스템 전문가 선생님,
이렇기 때문에 선생님이었다.
내가 지금 있는 회계법인은 일반 회사와 달랐다.
여기 오기 전에는 차이에 대해 궁금하지도 않았다.
회계법인은 ‘사장’ 대신 파트너가 있고,
직함이 아니라 지분으로 말하는 회사다.
누가 오래 다녔느냐보다
얼마나 출자했고 얼마나 벌었느냐가 곧 권한이 된다.
월급 받는 직원의 회사가 아니라,
수익을 나눠 갖는 동업자들의 조직 —
그래서 여긴 회사 같지만, 사실 작은 공동 개업에 더 가깝다.
처음엔 헷갈렸다.
파트너? 협력업체를 말하는 건가?
조금 지나니 임원을 아우르는 느낌으로 확정.
파트너는 사장 같고, 지분도 있고, 수익도 나눠 갖는다는데…
그럼 그 밑에서 일하는 우리는 뭐지?
결론부터 말하면,
스탭은 그냥 ‘직원’ 맞다. 월급 받는 근로자.
근로계약서 쓰고, 월급 받고, 연차 있고, 4대 보험 가입된
아주 평범한 직장인.
다만 분위기가 조금 다를 뿐이다.
회사는 ‘상사–부하’ 구조라면,
회계법인은 ‘파트너–전문가(스탭)’ 구조에 가깝다.
사장 밑 직원이라기보다,
동업자(파트너)를 도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프로페셔널 팀원 느낌.
그래서 “직원”인데도
“선생님”이라 불리고,
직급보다 “선생님”, “매니저”, “시니어”, “컨설턴트” 같은 역할이름을 쓰는 거다.
한 줄로 말하면 이렇다.
파트너는 주인, 스탭은 월급 받는 전문가.
같이 일하지만, 리스크와 보상 구조는 완전히 다르다.
회사 같지만, 끝까지 ‘동업자 조직’ 냄새가 나는 이유가 바로 그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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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급보다 역할 이름이 중요했고,
사장 대신 파트너가 있었고,
회사는 돈이 아니라 ‘사람’으로 굴러갔다.
효율, 매출, 원가절감보다 더 자주 들은 단어는
리스크, 독립성, 책임.
이익도 중요하지만,
문제 없이 제 기간에 신뢰있는 업무 마무리가 더 중요한 곳.
업무는 코드와 어싸인한 타임으로 돌아가고,
회의실마저 비용처리를 하고 사용하는,
여긴
자본주의의 핵심이자,
물건이 아니라 신뢰를 파는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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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아직도 가끔 헷갈린다.
회사원일까,
전문가 조직의 구성원일까.
월급을 받지만
어딘가 동업자들 사이에 얹혀 있는 느낌.
주식회사에서 살다
회계법인으로 이사 왔을 뿐인데,
일하는 방식도, 생각하는 기준도, 직업의 정의도 조금 달라졌다.
세상에는
돈으로 굴러가는 회사도 있고,
신뢰로 버티는 법인도 있다는 걸.
지분은 없고 월급만 있지만,
책임은 묘하게 더 크다.
여기가 회계법인이라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