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페트라 여행 3

보물은 찾아 나선자의 것

by 이스라엘 이영란

페트라 건축물들도 멋있지만 그것 못지않게 siq골짜기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미지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많은 기대감을 갖게하는 장소다 . 하늘을 올려봐도 아름답고 올려다보는 절경에 눈을 떼기가 어렵고 사진기를 댈수밖에 없는 그런 경이로움이 있다.

페트라는 천오백년 동안 잊혀졌던 바위 도시다. 기록상에만 남아있는 이 도시는 베두윈들만 알고있던 비밀의 도시였다.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라는 29살의 스의스인 청년이 이 땅을 지금으로부터 200년전(1812년) 에 최초로 발견하면서 다시 이 세상에 알려진 장소다.


그는 시리아에서 아랍어를 2년간 공부하고는 아랍인처럼 두건도 쓰고 완전 아랍인처럼 살았다. 이 중동 땅을 탐험하려면 철저히 아랍인이되어야했다.그가 일하던 아프리카 협화에서 아프리카에서 3번째로 가장 긴강 니제르강의 수원지를 찾아오라는 임무를 맡아 카이로로 향하던 길이었다.


당시 페트라는 베두윈들만이 아는 비밀방소였기에 인도 태생의 무슬림 순레자로 속이며 성경 속 아론(모세의 형)의 묘에 염소를 제물로 바치러 왔다"는 종교적 핑계를 대고 베두인 가이드를 섭외해 금기 구역인 페트라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종이를 꺼내면 베두윈들이 의심할까봐 조금씩 조심스럽게 메모만하고 나중에 돌아와 기록하였다고한다.


그는 페트라뿐 아니라 이집트의 아부심벨의 호루스 신(매)의 머리부분을 발견하기도했다. 그 이후 다른 사람이 모래에 파묻혀있는 아부심벨 람세스 신전을 재 발굴하게된다.


그는 나지르강의 수원지는 발견하지 못한채 풍토병에 걸려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된다. 그가 발견한 이후 중동 땅에 대한 관심은 더 넢아졌고 이곳은 평생에 한번은 가봐야할 7대 불가사의 중 한곳이 되었다. 요르단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나는 이곳 페트라를 3일째 구석구석 다니고 있다. 첫날은 monastary를 방문했는데 열번 이상을 왔어도 겉핥기 식으로 카즈네와 극장만 보고 왔기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입구의 카즈네 (보물 창고)는 입구의 것이 아니라 바로 이 monastary가 카즈네라고 말하게 되었다.

그만큼 내가 알던 것 이상의 보물이 페트라 깊숙한 곳에 있다.

둘쨋 날은 아론의 무덤을 향했다. 20여년전에 가본 곳이지만 다시 오니 내가 왔었나 싶을 정도로 험하고 멀었다. 이 보물은 그냥 두어도 되었다. 이곳은 이곳을 찾는 자들의 것이기에 말이다.


셋쨋 날 나는 페트라의 교회터를 보았다. 불이나서 지붕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바닥의 모자이크가 아주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6세기 7세기 것의 모자이크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올 듯한 모습으로 깔려있었고 많은 물고기종류와 많은 날짐승 등이 묘사되어 있었다 . 광야 한폭판에 물고기와 짐승이라니 . 그래서 더욱 풍요로운 교회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블루 처치는 기둥 4개가 이집트에서 가져온 돌로 세워졌기에 지어진 이름이다. 항아리 교회는 정면에 항아리 모양이 새겨져서 지어진 이름으로 무덤이 나중에 교회로 변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그 자체가 보석이구나 . 이 보석은 페트라의 보물은 이곳을 찾는자들의 것이다. 처음에 베두윈들은 유럽인들을 배타시했고 그들이 숨겨진 보물을 찾으러 오는줄 알고

이곳을 개방하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차차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통해 돈을 벌게 되었고 비가 오면 쓸려나오는 나바티안 시대 로마시대 때의 동전을 모으며 유럽인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이곳 페트라 베두윈들은 영어는 기본이고 4개국어를 하는 사람들도 믾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면서 자연스럽게 언어를 터득했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민족이다. 페트라의 베두윈들은 매우 친화적이다. 이집트에서 보던 사람들하고는 좀 차원이 다르게 신사적이다. 영어도 발음이 장난이 아니다 택시 운전사가 영국식 발음을 얼마나 잘하는지 깜짝 놀랄정도였다. 페트라에 있어서는 다들 거의 박사급이다.


그들에게 페트라는 관광지가 아닌 생활 터전이다.

괭장히 많은 사람들이 페트라 유적지 안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곳곳에 동굴안에는 상점을 내기도하고 그안에서 차를 끓여주기도한다. 아마 예전에도 위에 무덤을 만들고 아래에는 그들의 생활 터전이었을것이다. 1세기에 들어서는 무덤을 헐고 극장을 만들기도했다.


이곳을 지배했던 나바티아인들은 물을 다룰줄 아는 민족이었다. 광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다. 샘을 찾고 그 물을 끌어와서 도시에 까지 끌어올수 있는 능력을 가졌던 민족이다. 돌 깍는 기술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들의 숨겨진 유산을 다시 유럽에 알린 부르크하르트 .그를 통해 다시 이세상에 네바티안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아름다운 붉은 바위 도시 페트라를 보러 해마다 전세계에서 몰려온다.


해아래 새것이 없다지만 감추어진 보물을 찾는건 우리의 몫이다. 와서 보는건 여행자만이 즐길수 있는 값비싼 보석을 마음과 사진에 새길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