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에게 바라는 것

성인군자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by 겸양

정치인의 생명은 선출이다.
선출되지 못하면 그는 정치인이 아니다. 냉정하지만 이것이 출발점이다. 자리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첫 번째 목표는 언제나 출마와 당선이다. 우선 살아남아야 한다. 이 단순한 명제 위에서 정치는 시작된다.


그래서 정치는 태생적으로 이기적인 요구를 품고 있다.
대의, 철학, 비전 같은 말들은 선출 이후에야 비로소 힘을 얻는다. 생존이 확보되지 않으면 이상도 설 자리가 없다. 우리는 흔히 정치가 고결하길 바라지만, 그 바닥에는 언제나 생존의 본능이 흐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살아남은 뒤,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정치인의 욕망은 자연스럽다. 당선되고 싶고,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싶다. 그것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욕망이 공익을 집어삼키는 순간, 정치는 방향을 잃는다. 개인의 생존과 공동의 이익 사이, 그 아슬아슬한 균형을 붙들고 서 있는 사람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치인일 것이다.


완벽한 성인을 찾는 일은 어리석다.
정치는 인간이 하는 일이고, 인간은 불완전하다. 삶이 진실한 사람은 지나온 시간을 보면 드러난다.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무엇을 감수했는지, 무엇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그 축적된 과정이 한 사람의 정치적 태도를 말해 준다. 우리는 흠 없는 인물을 요구하기보다, 욕망과 책임 사이에서 스스로를 단속할 줄 아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정치는 늘 진영으로 나뉜다.
서로를 공격하고, 부족함을 파고들고, 견제한다. 그 긴장 자체가 민주주의의 일부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상대를 제거하는 게임으로 변질될 때, 정치의 에너지는 소모된다. 나이가 들수록 정치의 무게가 실감난다. 무심히 흘려보냈던 결정들이 일상의 공기처럼 스며들어 우리의 삶을 바꾼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기득권은 대중이 바쁘길 바란다.
먹고사는 문제에 지쳐 정치에 무관심할수록 권력은 다루기 쉬워진다. 적당히 나누어 주고, 문제를 폭발 직전에서 봉합하며, 조금씩 영향력을 확장하는 방식. 그것은 권력이 지닌 오래된 습성이다. 그래서 시민의 무관심은 때로 가장 강력한 협조가 된다.



나는 지금의 정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모든 정책에 대해 논할 수 없지만, 과정이 공개되고, 결정의 맥락이 설명되며, 협업의 흔적이 드러나는 장면들을 보며 이전과는 다른 감각을 느낀다. 깜깜이 행정보다는 열린 과정이 신뢰를 만든다. 신뢰는 성과 이전에 태도에서 비롯된다. 적어도 지금은, 그 태도가 보인다고 느낀다.


물론 경계할 부분은 있다. 그것은 기본적인 시민의 태도이다.
인간은 누군가를 영웅으로 세우고 싶어 한다. 복잡한 현실을 단숨에 해결해 줄 구원자를 상상한다. 정치에서도 그 욕망은 반복된다. 기대는 필요하지만, 숭배는 위험하다. 정치인은 상징이 아니라 기능이어야 한다. 인기나 이미지가 아니라, 제 역할을 해내는 능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깨끗한 성인이 아니다.
국민의 삶을 실제로 바꾸는 정책을,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이다. 문제를 인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리해 나가는 사람, 과정을 숨기지 않는 사람, 비판을 견디는 사람.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균형을 잃지 않는 정치면 충분하다.


내가 보는 것이 혹시 편향은 아닌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지를 하더라도 비판할 준비를 갖추고, 기대를 품더라도 질문을 멈추지 않는 태도. 정치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순간, 시민의 책임도 함께 시작된다.


정치는 생존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 생존을 넘어서는 순간에야 비로소 정치가 된다.
그 경계 위에 서 있는 사람을, 그리고 그들을 감시하는 시민을,

역사가 우상향하며 점진적인 발전을 이룬다는 믿음을 갖고 지금을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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