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니아

지구를 지켜라, 진실보다 중요한 것

by 겸양

지구를 지켜라, 참 충격적이었던 어린 시절의 영화, 흐릿한 기억 속에서도 마지막 장면은 잊히지 않았다. 백윤식이 외계인이 맞았어?


팟캐스트에서 부고니아 영화가 나왔다는 소리를 들었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고...


무료하던 차 영화를 봤다.


와... 넷플릭스라서 좋았던 건가, 좀 가볍게 볼 수 있고, 뭔가 다른 일을 하면서 영화를 보다 보니, 지루할 틈은 없었다.


뭔가 지구를 지켜라를 봤던 터라, 리메크 작품에서는 결말이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납치당한 엠마 스톤이 정말 외계인일까, 아닐까 하는 긴장감을 가지고 볼 수 있었다.


남 주인공의 제시 플레먼스는 어딘가 익숙하면서 낯선 배우였는데, 신하균이 연기했던 캐릭터와 잘 부합했던 것 같다.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인물, 집착, 고통, 그의 세상이 왜 그렇게 설정되었는지, 무엇이 진실인지를 떠나서, 연민을 일으키는 캐릭터였다.


어릴 적 보모 일을 했었다는 경찰관과의 대화에서는 그가 성적 학대의 피해자일 수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났다.


엠마스톤이 탈출을 위해, 납치범의 상황과 세계관을 이용하여 대화하는 듯한 부분에서는, 긴가 민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


후반부 자동차 부동액을 치료약이라고 속여, 엄마에게 달려간 주인공의 부재 동안, 그가 그 이전에 납치하여 고문하고 살해한 사람? 혹은 외계인들의 표본과 자료를 엠마스톤이 확인하는 장면에서는, 살짝 놀랐다. 어렴풋 하지만 지구를 지켜라에서도 그러한 장면이 있었던 걸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연쇄 살인자임을 확인한 엠마스톤은 당황한 모습이 아니라, 화가 난 모습으로 남 주인공에게 잡아 죽인 인간들 중 외계인이 몇 명이 있었느냐고 강하게 묻는다. 주인공은 2명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아... 엠마스톤은 외계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종족이 당했다는 것에 화가 난 듯한 연기가 느껴졌다.


외계인 모선으로 이동하려던 차, 남 주인공은 스스로 준비했던 사제 폭탄의 오발로 사망하고, 월식날 엠마스톤은 함선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지구인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인류를 멸살한다. 그 이후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한 듯한 모습으로 본래 있던 자리에 널브러진다. 그 모습을 장면장면 비춰주는데 기이한 감정이 들었다. 평화로우면서도,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그런 이질적인 느낌.



세상을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 그들을 지탱해 주는 것이 음모론으로 대변되는 환상과 기이한 신념이라면, 참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안타깝지만 망상에 살아가는 것 역시 자신을 지키려는 방어수단의 오작동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이 결국 도피처나 안식처는 될 수 없다.


연민이 마음이 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들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 아닌가, 누구도 보호해 주지 못한 이들의 정신은 쉽게 다른 것에 흔들린다. 위로받고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면 너무나도 달콤한 이야기들이 있다. 사이비나 사기꾼들은 그런 사람들을 잘 이용한다. 돈이 되고, 확증 편향과 신념화가 이뤄지면, 이용하기 쉽고, 또 열정적으로 추종한다.


종교, 정치, 이념 등의 이름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의 그런 약점을 잘 이용하는 이들은 역사 이래 줄곧 존재해 왔다.


어리석은 이들의 믿음과 행동을 보면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내가 믿고 있는 것,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의구심, 일말의 의심의 자리는 항상 간직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진리라고 여기는 것을 위해 나의 시간 대에서 모든 것을 관철시키고 끝장을 봐야 한다는 것은 위험한 생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과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혁명이나 말살이 아니다.

진정 사람을 감화시키는 것은 희생과 인내로 빚어낸 고귀한 인격, 그 자체의 삶의 모습이다.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불의한 고리대금업자를 죽임으로써,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 거란 착각을 했지만 가족을 위해 어쩔 수없는 선택을 해야 했던 소냐의 헌신적인 삶을 통해 변화되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자신의 행위가 세상을 위한 것, 지구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무너지지 않기 위한 수단이었고 자신의 불행을 감당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었다. 선의로 포장된 그의 계획은 위험천만한 행동으로 이어졌고, 여러 사람의 희생을 발생시켰다. 그가 변화시키고자 했던 것은 받아들이기 고통스러운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대상화한 파괴였다. 엠마스톤이 외계인이었고, 그가 믿은 것이 모두 진실이었다 한들, 그 과정의 끝은 무고한 이의 희생과 살인에 이은 자기 파괴였다. 그렇다면 그 진실이 중요한 것일까? 그런 외계 세력이 있다고 한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음모론, 혹은 잘못된 신념으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진실이자 진리이다. 그들을 비난만 할 순 없다. '저들은 무엇을 하는지 모릅니다.' 한 예수의 말씀이 떠오른다. 연민의 마음을 품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세상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며,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힘이다. 세상을 그렇게 계속해서 굴러간다. 끊임없이 뒹굴면서, 서로 부대끼면서, 그게 인간사이다.


영화 부고니아에서 모두 쓰러져 버린 세상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속 시끄럽지만 그게 세상이다. 지금 당장 유토피아를 이루려면, 부고니아의 결말 말고 다른 길이 있겠는가, 서로가 그렇게 있음을, 잘못된 생각도 있고, 조금 안타까운 상황도, 저항해야 할 부조리가 있는 세상을 인정하고, 연민의 마음으로 안고 같이 살아갈 수 없다면, 결국 희망은 없고 파멸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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