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 매치를 시작하며

국내축구 26년 차, 유럽축구 24년 차 고인물 입니다.

by Yangyb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축구를 보기 시작한 지가 얼마쯤 되셨는지 모르겠다.


2000년대 초반, 레알마드리드의 페레즈 회장이 갈락티코 정책을 시행하여 지단, 피구 등 세계적인 선수들을 끌어모아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했을 때?


박지성 선수가 한국인 최초 프리미어리거가 되며 맨유로 이적했을 때?


메호 대전이 한창이던 2010년대?


뭐 어떤 계기든 상관없다. 그 계기가 독자 분들을 축덕으로 이끌었을 테니깐. 필자도 조금 다르긴 하지만 축덕으로 입문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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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우리나라 선수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시기는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과 수원 삼성의 창단이다. 계기는 알겠는데 왜 계기가 이런 것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계기에 트리거 같은 역할을 한 건 축구 커뮤니티의 시초라고 할 수 PC통신 천리안이었다. 당시에 입에 많이 오르내리던 선수가 있었는데 "최용수", 그리고 일본의 "마에조노"라는 선수다. 물론 특이하게도 필자는 "최용수"가 아닌 "박건하"를 가장 많이 언급했다. 당시에는 박건하 선수는 이랜드라는 실업축구팀에서 뛰고 있었는데 최용수보다도 뛰어난 스트라이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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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나라 선수 외에 다른 나라의 선수가 머릿속에 각인된 계기는 1994년 미국 월드컵으로 기억한다.

결승전을 보면서 호마리우, 베베토, 로베르토 바조 (아...실축) 등의 선수가 머릿속에 각인되었었는데 그렇다고 이 선수들의 소속팀이나 나이 등 신상 정보까지 찾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 개막하고 멕시코를 제물 삼아 월드컵 첫 승을 할 수 있다는 열망에 부풀어 있을 때 본격적으로 "축구 잡지"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다. 이 잡지에는 각 나라의 주요 선수들에 대한 소개가 있었고 정말 빼곡한 텍스트임에도 불구하고 한 글자 한 글자 정독하면서 읽어 내려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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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멕시코의 경기가 열리기 전 전 직전 스페인vs나이지리아의 경기가 먼저 열렸다. 멕시코 전을 보기 전 시간 때우기 용으로 다른 나라 경기나 한 번 봐보자 라는 마음으로 이 경기를 시청했다. 나이지리아라는 나라는 살면서 처음 들어보기도 했고 스페인이 잘하는 나라라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당연히 스페인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vs1로 앞서고 있던 스페인이 당시 골키퍼 수비사레타 선수의 실책으로 2vs2가 되더니 선데이 올리세의 중거리슛이 폭발하며 나이지리아가 역전을 하는 것이 아닌가?

언더독이 이겼다는 쾌감에 승부를 결정짓는 언빌리버블 한 중거리슛이 더해지며 우리나라 경기뿐 아니라 다른 나라 경기도 모두 챙겨봐야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하게 된 경기였다. 필자는 한 달 내내 크로아티아의 4강, 프랑스의 우승까지 거의 전 경기를 라이브로 시청하며 나만의 첫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었다.


이후의 트리거는 정말 덕후로 이끌기에 아직 최적화된 것들이었다. 축구 감독이 되어 팀을 운영해나가는 게임 챔피언쉽 매니저와 풋볼 매니저, 싸커라인이라는 웹사이트, MBC ESPN 등의 신 문물은 1주일 내내, 심지어는 군대에서도 축덕질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어떤 경기부터 소개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지금도 머릿속에 맴도는 명 경기들이 너무 많다.

그렇지만 필자는 네덜란드를 이긴 프란체스코 톨도(이탈리아 아님)의 유로2000 4강전, PSV와 AC밀란의 4강전(이스탄불의 기적이 열렸던 그 시즌!), 첼시와 바르셀로나가 챔피언스리그에서 계속 맞붙은 이야기 (오브레보!)처럼 2000년대 경기를 위주로 얘기를 풀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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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늘 미화된다고 한다. 그러나 2000년대 축구처럼 미화되기 좋은 시기도 없다. 지금처럼 자본이 유입되지도 않았고, 원 클럽맨, 9번 스트라이커 (물론 지금은 홀란드가 있다고는 하지만), 플레이메이커, 판타지스타, 킥 앤 러시 등 낭만이나 감성을 자극하는 키워드들이 많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축구를 오래 보셨던 분들 혹은 아닌 분들 모두 필자의 글을 통해 이 키워드들에 자극되어 옛날 축구를 다시 꺼내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