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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영 Aug 14. 2024

제주도와 나

김주영

"제주도~ 떠나요~ 푸른밤~"


제주도 시내에 들어서자 막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완도에서 페리를 타고 제주도에 왔다. 보통 때면 비행기를 타고 와서 렌트카를 빌리러 갔을 텐데 이번에는 그런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된다. 제주항에서 방역 게이트를 지나자 도로로 곧바로 이어진다. 차 안에서 아내가 "제주도의 푸른밤" 곡을 틀었다. 배경음악을 들으며 제주 시내를 지나친다.


배에서 바라본 제주도 모습은 새로웠다. 익숙한 비행기에서 보는 풍경과 달리 바다 위에서 보는 제주는 더 아름다웠다. 제주도 땅 위로는 커다란 뭉게구름이 뭉실뭉실 떠있었다. 머리 위로 비행기들이 몇 차례 지나간다. 제주여행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첫 번째는 큰 아이가 뒤집기를 할 무렵, 봄이었다. 그때도 배에 차를 싣고 왔었는데 12년 만에 다시 배를 탄 것이다. 아이들은 배 여행이 재미있는지 배 안 여기저기를 탐험하듯 돌아다닌다. 한 여름에 제주에 오는 건 처음이다. 이번에는 아이들 여름방학을 맞아 제주 보름살기를 하러 왔다.


신호에 자꾸 걸리는 시내를 벗어나 남쪽을 향해 시원하게 달린다. 이번 숙소는 강정이다. 제주에 올 때마다 느끼지만 우리나라인데 문득문득 외국에 온 것 같다. 표지판이 한글일 뿐 이국적인 풍경이다. 육지에서 오래 산 나는 이 풍경이 외국일 따름이다. 저 멀리 산방산이 보인다. 비닐하우스에는 감귤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비닐하우스 물받이가 큼직하다. 감귤은 검은 초록색이었다. 수많은 편의점을 지나고 강정천에 다다르니 캠핑축제가 열리고 있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제주 로컬 여행을 시작해 본다.


폭염 문자가 매일같이 뜨는 나날이었다. 한 여름이다 보니 여러 바닷가에서 놀았다. 그동안 해수욕하면 동해로 갔었는데 제주도로 올 일이었다. 이곳저곳 수영하기 좋은 곳이 많았고 해변마다 스타일이 달랐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용천수가 있는 포구들이었는데 그 샘물이 어찌나 차가운지 목욕탕 냉탕 저리 가라였다. 얼음물처럼 짜릿짜릿한 온도였다. 용천수가 있는 곳에는 노천 목욕탕이 있었는데 한 어르신이 몸을 씻고 계셨다. 시원하게 씻고 나오신 어르신은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하셨다. 마치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처럼 오늘 하루 완료라는 뜻 같았다. 그분의 하루 일과를 마치는 고유한 의식처럼 보였다.


한라산의 기운도 느낄 수 있었다. 서귀포에서 제주로 가는 길 해발 1100미터 도로를 지났는데 폭염이어도 그곳 공기는 선선했다. 시원한 바람이 부니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곳에는 흰 사슴 동상이 있었는데 신비스러운 느낌이었다. 한라산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찍었다. 화산섬이다 보니 어느 곳을 가더라도 한라산이 보였다. 바다에는 까만색 용암 덩어리 현무암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만 년의 시간과 만나는 시간이었다. 세화(북동쪽)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강정(남쪽)으로 향할 때였다. 강정으로 간다는 얘기에 식당 아주머니는 크게 놀라셨다. 그렇게 멀리 숙소를 잡았냐고 하시면서... 제주도에서는 1시간 반, 2시간 거리면 정말 멀게 느껴진다고 한다.


미술관, 박물관도 부지런히 다녔다. 이중섭, 장리석 등 6. 25. 전쟁 1. 4. 후퇴 때 피난 내려온 화가들이 제주 예술의 꽃을 피웠다는 얘기가 흥미로웠다. 그 예술가들이 반했을 제주의 풍경은 새로움 그 자체였을 것 같다. 바다, 나무, 하늘, 햇빛, 바람, 바다 생물들...


12년 전, 제주도를 찾았을 때에는 게스트하우스가 붐이었다. 연예인 부부의 제주살이가 매스컴을 타며 제주 한달살기도 크게 유행했다. 요즘은 국내 여행객들이 제주도 대신 해외를 찾는다고 한다. 일단 비용 면에서 만만치 않고 바가지 이미지도 한몫하는 것 같다. 제주 여러 관광지에서 중국인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서귀포강정크루즈터미널에서 중국인들이 수십 대의 버스에서 우르르 내리는 걸 보았다. 상하이에서 온 크루즈가 제주도를 거쳐 일본으로 가는 일정인 것 같다. 중국인들에게 우리나라가 제주가 어떻게 비쳐졌을지 궁금하다.


나는 이번 제주도 보름살기를 하며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는지 제대로 경험하게 되었다. 지구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시간이었고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 추억을 쌓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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