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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그 빛나는 이름이 다시 빛나려면

『교육, 그 빛나는 이름』(김준식, 케렌시아, 2025)을 기다리며

“교육”이라는 단어는 참 자주 쓰입니다.

교육 혁신, 미래 교육, 공교육 정상화, 에듀테크,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


하지만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그 많은 수사들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눈앞의 아이 한 명에게조차

제대로 말을 건네지 못한 날,

교육은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작고 구체적인 질문으로 되돌아옵니다.


“우리가 하는 이 일, 진짜 교육이 맞는가?”


YES24에서 예약 판매 소식을 처음 보고, 저는 제목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교육, 그 빛나는 이름』.

이건 “교육, 그 참혹한 현실”도 아니고, “교육, 그 불편한 진실”도 아닙니다.

끝내 이 이름을 “빛나는”이라고 부르고 싶은 한 교육자의 고집이 느껴졌습니다.


1. ‘법에 의한 지배’와 ‘법의 지배’ 사이에서, 흔들리는 교실


1장의 첫 글 제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법에 의한 지배’와 ‘법의 지배’


교육 현장에서 법과 제도는 늘 양면을 가지고 다가옵니다.

학생인권조례, 교권보호법, 학교폭력예방법, 고교학점제, 각종 지침과 공문들…


“법에 의해” 움직이는 학교는 많습니다.

하지만 “법의 정신”으로 움직이는 학교는 얼마나 될까요?


김준식 선생님은 38년 교직을 걸어

이 질문과 씨름해 온 사람처럼 보입니다.

소개한 줄이 특히 마음에 남습니다.


“학교 교실이나 학교 현장에 기초하지 않는 법과 제도는

놀랍게도 교육을 방해하고 흔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교육학의 언어로 말하자면,

“거시 제도(macro)”가 “미시 상호작용(micro)”을 짓눌러 버린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가 교육과정, 법령, 정책은 마땅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제도가 교사–학생–학부모라는 구체적인 얼굴을 가진 관계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지 못하면,

교육은 어느새 ‘통치 기술’로 전락합니다.


2. 학교 민주주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호흡”이다


2장의 제목은 「학교와 민주주의」입니다.

‘실현을 위한 고민 1~4’, ‘민주적 학교 만들기 프로그램’, ‘교과서 선정의 그림자’…


민주주의는 시험지에서 ‘정답’으로 맞히는 개념이 아니라,

교무실과 교실, 행정실과 학부모 단톡방 사이를 오가는 공기에 가깝습니다.


교무회의에서 다른 의견을 말해도 괜찮은가


학생자치회가 행사용 장식품이 아닌가


학부모의 민원 앞에서 교사가 법적 보호를 받으면서도

아이의 성장이라는 공동 목표를 잃지 않을 수 있는가


교육학에서는 학교를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민주주의를 실험하는 공간”이라고 부릅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실험의 현장 기록”처럼 느껴집니다.


민주주의가 교실을 찾아오는 방식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습니다.


비밀 투표로 반장을 뽑는 작은 절차,


소수 의견도 회의록에 함께 남겨 주는 습관,


“틀렸어!”가 아니라 “왜 그렇게 생각했니?”라고 되묻는 질문,


교사의 실수도 아이들 앞에서 정정할 줄 아는 용기.


이런 것들이 모여 “학교 민주주의의 리터러시”를 만들어 갑니다.

『교육, 그 빛나는 이름』은 이 리터러시를,

법과 제도, 인사, 관행의 언어로 집요하게 다시 묻는 책입니다.


3. 교육과정·세특·고교학점제…


“프레임 싸움” 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3장 제목은 「교육과정과 혁신 그리고 방향」.

“고교학점제에 대한 현장 교사의 독백”,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대한 유감”,

“기초, 개념 교육은 보수적인가?”

그리고 마지막 글 제목이 인상적입니다.


“교육 그리고 프레이밍”


교육학에서 ‘프레이밍’은

“어떤 언어로 문제를 정의하는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수월성’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조기 서열화할 수도 있고,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개별성의 차이를 지워 버릴 수도 있습니다.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교사의 전문성을 의심할 수도 있고,


‘기초’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의 호기심을 가둘 수도 있습니다.


‘세특’ 하나를 적을 때에도,

우리는 특정 프레임을 선택합니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함”

vs

“자신의 관심사를 끝까지 추적하며, 친구들과 협업하려는 태도가 두드러짐”


둘 다 사실일 수 있지만,

둘은 전혀 다른 인간상을 상상하게 합니다.


김준식 선생님은 “추구하는 인간상”을 이야기하면서,

교육과정 문서에 적힌 문장과

교실에서 살아 움직이는 학생들 사이의 간극을 통찰합니다.


교육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목표 중심 교육’에서 ‘성장 서사 중심 교육’으로 이동하자는 제안에 가깝습니다.

점수와 스펙, 세부 능력 특기 사항 문장으로 환원되지 않는

한 사람의 삶의 방향성을 어떻게 기록하고,

어떻게 돕고, 어떻게 함께 걸을 것인가?


4. 교사에서 교장, 다시 교사로


“직함”이 아닌 “시선”을 옮긴 사람


4장은 제목만으로도 이미 한 편의 서사입니다.


「교사에서 교장, 다시 교사로」


많은 이들은 교장이 되는 것을

“교육자의 커리어 정점”으로 상상합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교장으로 4년을 보내고 다시 교실로 돌아왔고,

그 모든 과정을 교육 비평의 언어로 묶어 냅니다.


“공동체?”,


“‘전문적 학습 공동체’라는 용어에 대한 견해”,


“슬픈 교원 연구비 60,000원”,


“스승의 날 폐지에 대한 생각”,


“마지막 수능 감독”…


교육학에서 조직을 볼 때,

우리는 보통 “구조(structure)”와 “문화(culture)”를 함께 봅니다.


공모교장제, 인사발령, 연구비, 각종 사업은 ‘구조’의 언어이고,


서류를 바라보는 한숨, 회의에서의 침묵,

그리고 교무실의 농담과 자조는 ‘문화’의 언어입니다.


저자는 교사와 교장이라는 두 위치를 모두 경험하면서,

이 두 언어 사이를 오가며 기록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교장 비판”도, “교사 위로 에세이”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렇게 묻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어떤 조직 문화를 학생들에게 물려줄 것인가?”


학생들은 교실에서만 배우지 않습니다.

교장–교감–교사–행정–교육청 사이의 관계를

그대로 ‘사회 모델’로 흡수합니다.

교사의 뒷모습은, 언제나 교육과정 바깥의 숨은 교과입니다.


5. 미래 교육, ‘철학하는 교사’의 자리


마지막 5장은 「미래 교육」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우연히도(?)

‘중학교 철학’ 시리즈(1–4권)를 집필해 온 사람입니다.


『중학교 철학 1 – 자유, 권력, 의지』


『중학교 철학 2 – 변증의 산맥』


『중학교 철학 3 – 인식의 그림자』


『중학교 철학 4 – 실존의 등대』


철학은 거창한 학문이라기보다,

교실에서 매일 부딪치는 질문들을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멀리

끝까지 따라가 보는 연습에 가깝습니다.


“왜 이 규칙을 꼭 지켜야 하죠?”


“정말 다수결이 항상 옳나요?”


“공부 잘하는 게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나요?”


이런 질문들 앞에서

교사가 단지 “교과서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생각해 보는 동료 인간이 될 때,

교육은 비로소 ‘빛나는 이름’을 되찾는다고 믿습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예술 교육’, ‘초중고 철학 교육’, ‘아디아포라(adiaphora)’ 같은 키워드가 나옵니다.

무엇을 가르칠지보다

무엇을 “그냥 두어야 할지”,

무엇을 통제할 지보다

무엇을 “믿고 맡길지”에 대한 질문들입니다.

부산대학교 대학원에서 실존 철학을 공부했던 기억이 나기도 하네요!!!


6. ‘공존’을 다시 꺼내 든다는 것


목차를 천천히 훑다가

저는 한 문장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회복해야 할 가치, ‘공존’에 대해”


경쟁과 서열, 효율과 성과의 언어가 지배하는 시대에

‘공존’은 어쩌면 가장 빨리 지워지는 단어입니다.


교육학에서는 교육의 역할을

대략 세 가지로 나누곤 합니다.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는 일(qualification)


사회 규범과 문화를 전수하는 일(socialization)


한 인간이 자기 목소리를 가진 주체로 서도록 돕는 일(subjectification)


이 세 가지가 균형을 잃을 때,

교육은 쉽게 왜곡됩니다.


지식과 기술만 남으면, 교육은 훈련장이 되고,


사회 규범만 남으면, 교육은 순응의 공장이 되며,


주체성만 강조되면, 교육은 내향적 취향의 놀이터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공존’은 이 세 역할을 잇는 다리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차이를 이유로 서열화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살아갈 규칙을 고민하는 힘.


『교육, 그 빛나는 이름』은

38년 교직을 걸어

이 다리를 놓아 보려 한 한 사람의 기록입니다.

저는 사반세기(25년)의 다양한 교직 경험을 통해 성찰합니다.


7. 이 책을, 어떻게 읽고 싶냐고 묻는다면


저는 이 책을 “교육학 논문”처럼 밑줄 그어가며 읽고 싶습니다.

동시에 “선배 교사의 일기장”처럼 조용히 덮고 다시 펴며 읽고 싶습니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교실에 기초하지 않은 제도가 어떤 파장을 만드는지”를

이 책 한 권으로라도 먼저 들여다보았으면 하고,


현장의 교사라면,

“나만 이상한 거 아니었구나” 하는 동지애와 위로를

이 글들 사이에서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


예비교사와 학부모라면,

‘학교’라는 공간을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아이와 어른이 함께 성장하는 공적 장(場)으로

다시 상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남기는 이유


우리는 너무 자주,

교육을 ‘위에서 아래로’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아래에서 위로,

교실에서 제도와 사회를 비평하는 드문 시도입니다.


“미세한 교육적 행위가 거대한 흐름으로 변하는 것을 목격한 저자는,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목소리들이 모여 거대한 함성이 될 때

비로소 교육의 길이 넓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인터넷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이 책을 먼저 소문내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 각자의 교실,

우리 각자의 학교에서

또 다른 『교육, 그 빛나는 이름』이

쓰이고, 읽히고, 이어지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


당신에게 교육은 어떤 이름으로 남아 있나요?

“빛나는”이라는 형용사를,

우리 세대에서 끝내 지워 버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교육이 살아야 질서가 생기고,

도덕이 살아야 악이 없어집니다.


윤리교육학 박사 다움 김종훈 삼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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