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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근한 미소로 남은 사람

— 황한식 교수님을 추모하며

푸근한 미소로 남은 사람

— 황한식 교수님을 추모하며

황한식 교수님과의 인연은 1999년, 부산대학교 대학원 입학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윤리교육과 연구조교로 일하며 여러 교수님들을 가까이에서 만나는 귀한 시간을 보냈고, 그 가운데 교수님은 늘 ‘사람의 온기’를 먼저 건네는 분이었습니다. 학문보다 사람이 먼저였고, 이론보다 삶의 태도가 먼저였던 분. 그래서 교수님의 존재는 늘 조용하지만 단단한 신뢰로 다가왔습니다.


2012년, 부산대학교 본관 1층 입학정책실에서 근무하던 시절, 교수님은 같은 건물에서 대학원 원장으로 일하고 계셨습니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건네주시던 따뜻한 미소와 짧지만 진심 어린 인사는 그날의 공기를 부드럽게 만들곤 했습니다. 학문과 시민운동의 길을 함께 걸어오신 김수자 선생님과의 부부 공동 활동 역시, 삶으로 보여주는 연대와 헌신의 상징처럼 느껴졌습니다.


2012년 부산분권혁신운동본부 총회에서 회원으로 다시 인연을 이어가며, 교수님이 평생 품어온 지방분권과 자치의 이상이 얼마나 깊은 신념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최근 건강이 편치 않으시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운 이별이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따님 황혜림 위원장과의 인연도 선명합니다. 환경영화 What If 촬영에 군중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며, 월성 핵발전소 인근에서 함께했던 그 장면은 ‘사회가 품어야 할 질문’을 몸으로 체험하게 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교수님의 삶이 고스란히 자녀의 길로, 또 다른 연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같은 진주 출신이라는 사실은 유난히 더 정겹게 다가왔습니다. 교수님은 진성면, 저는 대곡면, 교수님은 진주고, 저는 대아고를 졸업했습니다. 고향의 말투와 정서, 사람을 대하는 너그러움이 어디선가 닮아 있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부산의 하늘 아래에서, 그리고 대한민국의 시민사회 속에서 교수님은 늘 ‘푸근한 어른’으로 서 계셨습니다. 격랑의 시대에도 방향을 잃지 않고,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길을 열어주신 분. 그 길 위에서 많은 이들이 용기를 얻고, 숨을 고르고, 다시 걸을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 이제는 고단한 삶의 무게를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십시오.

남겨진 우리는 교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조금 더 따뜻한 사회를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깊은 존경과 애도의 마음을 담아

기억하겠습니다. 다움 김종훈 삼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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