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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장을 받아 들고, 다시 시간을 생각하다

— 「2025 경남도민 SDGs 아이디어 100」에 참여하며

문자를 하나 받았다.


“<2025 경남도민 SDGs 아이디어 100> 참가자로 선정되어 행사에 초청합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꽤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참가자로 선정되었다는 사실보다

‘초청’이라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누군가를 불러 세운다는 것은

의견이 아니라 책임을 요청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시민의 자리로 초대받다

12월 15일 월요일 오전 9시 30분까지 도착해

참가자 등록을 해 달라는 안내.

필기구와 다과는 준비되어 있으니

각자의 초기 아이디어를 잘 생각해 오라는 문장도 함께였다.

이 행사는 관람석이 없다.

선정된 사람만이

생각을 들고 들어갈 수 있는 자리다.

SDGs를 ‘배우는 자리’가 아니라

경남의 과제를 함께 설계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이 초청은 가볍지 않다.

1998년, 군복을 벗고 시민이 되었던 시간

이 문자를 읽으며

나의 시간은 자연스럽게 1998년으로 되돌아간다.

육군 중위로 전역한 뒤

나는 진주환경운동연합 회원이 되었다.

명령과 지시의 세계에서 나와

질문과 토론의 세계로 들어선 순간이었다.

그때의 환경운동은

지금처럼 세련된 언어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했다.

개발은 누구를 위해 이루어지는가

성장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잃게 하는가

다음 세대의 삶은 누가 책임지는가

이 질문들은

형식은 달라졌지만

지금의 SDGs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이름은 SDGs, 질문은 여전히 ‘삶’

오늘의 행사는

경제·환경·사회라는 세 축에서

경남의 과제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모은다.

인구감소, 지역순환경제, 지역소멸 대응.

어느 하나 추상적이지 않다.

모두 이미 우리의 일상에 들어와 있는 문제들이다.

SDGs는 국제회의의 언어이지만,

그 실천은 결국

지역의 골목과 마을, 학교와 일터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 자리는

아이디어 공모가 아니라

지역의 삶을 다시 설계하는 실험에 가깝다.

아이디어를 다듬는다는 것의 의미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다듬을 참가자 본인의 초기 아이디어를 잘 생각해 오시면 됩니다.”

이 문장이 좋았다.

완성된 답을 가져오라는 말이 아니라

함께 다듬을 질문을 가져오라는 요청이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발전은

혼자 떠올린 천재적 발상이 아니라

서로의 경험과 시선을 겹쳐 가며

조금씩 현실이 되는 과정이다.

참여는 선택이 아니라, 이어져 온 삶의 연장선

나는 오늘

무언가를 주장하기 위해 그 자리에 가는 것이 아니다.

또 누군가를 설득하러 가는 것도 아니다.

다만

1998년 이후 이어져 온 나의 시민으로서의 시간,

환경과 공동체를 걱정해 온 삶의 질문을

다시 공적인 테이블 위에 올려두기 위해 간다.

초청장은

그 시간을 멈추지 말라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월요일 아침, 다시 질문을 들고 간다

12월 15일 월요일 아침,

창원컨벤션센터 700호로 향하며

나는 다시 묻게 될 것이다.

이 지역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SDGs는 목표 번호가 아니라

이 질문에 대한

시민들의 집단적 상상력이다.

초청받은 오늘,

나는 다시 시민의 이름으로

그 질문을 들고 자리에 앉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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