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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삭 Aug 11. 2023

망가진 당신에게

「마이 브로큰 마리코」, 2019

마리코!

주인공 시이노

「마이 브로큰 마리코」, 2019

・ 히라코 와카 작품



자살한 친구의 유골함을 들고 도망쳤습니다



  「마이 브로큰 마리코」는 일본의 만화가 히라코 와카의 드라마 장르 만화입니다. 세상 속 하나뿐이던 절친의 죽음, 그리고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담은 작품인데요.


  유려한 대사, 뛰어난 시각적 연출과 함께 친구의 죽음을 막지 못했던 주인공의 자기 파멸적 회고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가슴이 아릿해지는 명작입니다.


  자신의 주변에 부서진 이가 있다면, 혹은 자신이 부서져가는 중이라면 더더욱 가슴의 먹먹함을 털어내지 못하게 되기도 하죠.


  망가진 당신과 고쳐주지 못한 나와 우리의 고장을 진단한 인생의 이야기.





I

줄거리



  무감각하다시피 바보 같고, 또 바보같이 자신에게 의지하던 마리코가 죽었습니다. 사인은 추락사, 사망 전 정황은 수면제를 다량 복용한 것 말고는 알 수 없음.


  주인공인 시이노는 친구 이상으로 가까웠던 마리코의 죽음을 그녀의 가족에게서도, 문자 메시지나 편지로부터도 아닌 식당 TV 뉴스로 알게 됩니다.


  지우개로 문질러댄 것처럼 희미하게 남은 흔적이 보이지만 시이노는 마리코의 흔적이 깔끔히 지워졌다고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시이노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데요.


  자신이 기억하는 마리코의 불행의 씨앗이자 분명 그녀가 목숨을 끊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리라 믿는 마리코의 친부로부터, 시이노는 죽은 친구의 유골함을 빼앗아 도망치기로 합니다.


  자신의 친딸을 노예처럼 부려먹고, 상습적으로 폭행을 일삼았으며 심지어는 그녀를 성적으로 학대하기도 한 인간 말종.


  시이노를 만나러 외출하기 전까지 집에서 당했던 짓들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그래도 시이가 있어줘서 다행이야. 라고 말하는 마리코의 모습.


  너무나도 순수한 그 모습에 시이노는 그녀가 나약한 건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단단한 사람이었는지도 잘 몰랐으니.

이젠 닿을 수 없어

  시이노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생각으로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여 사시미칼을 품에 감춘 채 마리코의 본가로 쳐들어가 유골을 훔치는 데 성공합니다.


  바다든, 산이든, 하와이든 집이 아니라면 다 괜찮다고, 시이와 함께라면 괜찮다고 말했던 마리코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정처 없이 달려 나갈 뿐입니다.


  같은 미성년자에다가 돈이 풍족한 것도 아니고 항상 상냥하지 많은 않았던 하찮은 나한테 의지했다면서. 어떻게 나한테 편지 한 장 전화 한 통 안 할 수가 있어. 왜 같이 죽어달라고 하지 않았어.





II

브로큰

망가진 사람들



  어떻게 보더라도 마리코는 불운한 인생을 살아온 인물입니다. 친부에게 매일같이 학대당했고, 어머니는 가출을 밥 먹듯이 하다 '내 남편을 빼앗았다'라며 오히려 사랑을 갈구하던 마리코를 더 아프게 했죠.


  하지만 마리코는 유일한 친구인 시이노에게 매일같이 상냥하고, 특별히 집 밖에서 문제를 일으킨다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얼핏 보기엔 그녀의 배경을 유추하기 어려운 캐릭터. 배시시 웃으며 집에서 나가고 싶다고 하는 그녀는 여느 또래와 다를 것 없이 보이는데요.

마리코의 불행

  또 여느 비극이 그러하듯이 항상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먼저 사람을 열받게 했잖아

유혹하면서 꼬드겼잖아

이상한 탓도 있잖아

알아서 잘했으면 됐잖아

바보 같은 게 제일 문제잖아


네가



  작품의 제목처럼 마리코는 망가졌습니다. 그렇게 고통받고도 바보같이 아버지를 만난 뒤 팔이 부러져서 돌아온 그녀에게 시이가 다그치길,



왜 만나러 갔었어?!
너, 감각이 다 망가진 거 아냐?



  마리코는 뒤이어 대답합니다.


담담하게

  그녀는 언제나 원인 제공자로 심판대에 오르곤 했습니다. 타인이 볼 땐 한없이 미련하고, 답답하기 그지없는데 정작 본인은 괜찮다고, 괜찮다고. 괜찮은 게 뭔지는 아는 걸까? 괜찮은 내가 이렇게 당신을 답답해하는 건 괜찮지 않은가?


  애초에 괜찮을 리 없는 당신이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나?


  이미 마리코는 많은 것을 포기한 채 남은 행복의 여집합만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유일한 집합이란 시이노의 모든 것.


  무심한 척 자신을 챙기는 성격과 매번 털털한 옷차림새, 담배를 피우는 습관과 옷에서 풍겨오는 향긋한 탈취제 냄새. 살아가고 있는 이유 속에 나 자신을 대체하고 있는 누군가.


  때문에 마리코는 시이노 앞에서 보란 듯이 자해를 하고, "남자친구가 생긴다면 용서하지 않을 거야. 난 죽어버릴 거야."라며 협박에 가까운 구애를 합니다.


  받아본 적 있는 종류의 사랑만을 베풀도록 설계된 인간은 그렇게 망가진 사랑을 다시 배출하며 속으로 말할 테죠. 이러기 싫어. 나 도와줘. 사랑해. 미안해.


   망가졌다는 건 단순히 상대이자 관찰자의 입장에서 원하는, 혹은 상식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았음이 아니지 않나요.


  컴퓨터 고장의 원인으로 컴퓨터 그 자체를 꼽을 수 없듯이 어딘가에서 정상 처리되어 전달된 신호는 또 어딘가에서 변질되고 뒤틀리고 압축되어 결과로 도출됩니다.


  무수히 많은 부품 중 마더보드가 문제인지, 아니면 단순히 자주 청소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알아내는 것은 꽤나 어렵고요. 컴퓨터를 잘 알면 금방 해결할 수 있지 않던가요?


   슬프게도 우리는 언제나 상대를 이해하는 것에 초보자로 살아가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오래 걸리고, 때로는 불가능하고요. 망가진 누군가를 고치려고 마음먹다 보면 결국 내가 다시 망가집니다.


  상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사랑에서 출발했지만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뜯어고쳐져 항상 화내는 말투, 다그치는 상황을 만들게 될 수도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는 말이 이 상황에 딱 들어맞는 게 아니던가요? 너만 괜찮다면야 하는 그 무던하고 심심한 사랑이 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III

마이

엔딩에 관하여



  작품은 초중반의 빌드업과 달리 시이노가 유골함을 들고 무언가를 대단히 성취하는 엔딩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지나가는 기억에서 떠올린 '마리가오카 곶'에 무작정 찾아갈 뿐, 가자마자 날치기를 당해 알거지가 되고, 벤치에서 노숙을 하기도 하며 속 시원히 친구의 뼈를 바다에 뿌려주지도 못합니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그렇게 갔어.


   마리코의 유골함은 결국 뜬금없는 이유로 산산조각 납니다. 어떤 여학생을 성폭행하려던 치한을 제압하다가요. 시이노는 마리코와 겹쳐 보이는 한 소녀의 "도와줘!"라는 말에 품에 쥐고 있던 것을 휘둘렀고, 마리코는 그렇게 공중에 흩뿌려집니다. 그녀의 죽음처럼 다시 한번 준비되지 않고 갑작스럽게.


변함없는 당신

  산전수전을 견뎌 어찌어찌 시이노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목숨을 걸고 유골을 가져오겠다는 일념으로 식칼을 가방에 품은 채 마리코의 집에서 깽판을 쳤던 게 엊그제 같은데.


  여전히 마리코의 부친은 시이노의 울음 섞인 일갈에 넋이 나가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아버님도 아닌 네놈이, 마리코를 망쳤다고. 그럼에도 뻔뻔하게 자신이 망가뜨린 딸의 제사를 지내다니. 그러나 뜬금없이 시이노를 맞이한 건 편지 한 장. 발신인은 마리코의 부친과 재혼한 여자였는데요. 일전의 테러에 대한 내용증명인가? 아니면 고소장인가?


   그러나 그 무엇도 아닌 시이에게라고 적힌 편지 한 장이 바닥에 떨어집니다. 마리코가 그녀에게 보냈던 수많은 편지와 다르게 하트도 그려져 있지 않고. 「마이 브로큰 마리코」는 이렇게 막을 내리죠.   





IV

새로운 구성, 인상적인 연출


  작품의 전반부 플롯을 보면 이미 다른 매체에서 비슷하게 다루어진 경우가 많은 느낌이 듭니다. 죽은 이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주인공이자 화자. 그 과정에서 얻는 치유 혹은 진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목숨을 끊은 마리코처럼 시이노는 행선지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중반부부터 플롯은 조금 비틀리며 시이노는 부표처럼 떠다닌 채 마리코에 대한 기억을 곱씹을 뿐이죠. 그 속에는 후회와 원망이 있을 뿐 빈자리를 따뜻하게 채워주는 것은 빈자리 그 자체였으니.


  마지막 부분 끝내 유골을 뿌리지 못하고 좌절하며 자신도 따라 죽으려던 시이노의 모습은 어쩌면 살아남은 이의 가장 현실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친구가 죽는 것을 막지 못하는 기분을 너도 느껴보라고 하면서.


  막을 수도, 막을 것도 아니었다고 스스로를 은연중에 다독이면서요.


  그 순간 시이노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다른 누구도 아닌 마리코에게만은 듣고 싶었던 '도와줘'라는 말에 본능적으로 치한에게 공격받던 소녀를 구한 것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소명을 다 했다는 듯 공중에 흩뿌려지는 마리코의 유골도.


  또한 마리코라는 인물은 시이노의 기억 속에서 존재할 뿐입니다. 객관적인 사실로 전달되는 회상이라던가, 시이노가 목격하지 못했던 그녀가 목숨을 끊을 당시의 장면이라던가 나올 법 한 장면임에도 작품은 담담히 시이노의 시선에서만 마리코라는 상을 만들고, 각인시킵니다.


  사람의 기억이란 언제든지 왜곡되기 마련인데, 우리는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모든 회상과 기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이유가 없습니다.


  죽음 당시 마리코의 모습이 어땠는지, 표정은 어땠는지, 직장은 있었는지 등 "시이에게"라는 한 줄만을 컷에 보여준 작가의 연출처럼 우리는 어느새 시이노에 동화되어 있죠.


  제목 속의 단어처럼 "나의"라는 부분에 더 녹아들고, "마리코"라는 이름은 얼마든지 다른 글자들로 대체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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