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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삭 Feb 12. 2024

완벽하게 불완전한 우리

「신세기 에반게리온」, 1995

*원작 애니메이션을 먼저 감상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

「신세기 에반게리온」, 1995

안노 히데아키 감독


  올 것이 왔습니다.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역작이자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작품, 「신세기 에반게리온」입니다.


  작품의 오리지널 스토리로 공고화된 TVA 26부작 시리즈와 구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넷플릭스에서 무삭제 버전으로 감상이 가능하며, 본 글도 TVA 시리즈와 구 극장판을 토대로 작성되었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은 기본적으로 「기동전사 건담」과 같은 메카물 장르로, "인간"에 대한 감독의 고찰과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려 발버둥 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다만 특유의 난해한 연출과 종교적 레퍼런스, 높은 수위의 장면들로 인해 진입장벽이 매우 높고 호불호가 극명히 갈린다는 점도 유념하셔야겠습니다.


시놉시스

세컨드 임팩트가 일어난 지 15년 만에 제3 사도가 나타나고,
사도 사키엘이 향하는 방향으로 도시에 피난령이 발령된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따뜻한 가정 없이 자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소년,
이카리 신지는 갑작스레 아버지의 호출을 받고 특무기관 네르프로 발을 내딛는다.

평범한 대화 한 마디 해본 적 없는 아버지에게서 떨어진 명령은
거대 로봇인 초호기를 탑승하여 사도를 섬멸하라는 것.

어째서 뜬금없이 자신을 태우려는 건지, 사도는 누구고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설명도 채 듣기 전에 신지는 인류의 존망을 걸고 싸워야 할 운명에 처한다.





I

줄거리


「신세기 에반게리온」 은

단신으로 인류를 쉽게 쓸어버릴 수 있는 괴수(사도)들과
인간 파일럿이 탑승하여 조종할 수 있는 거대 유기체 병기, 에바를 필두로
그들을 막는 기관 네르프의 싸움
사도와 에바

  이라는 작품 세계관 속


주인공인 이카리 신지를 비롯한 등장인물들 각각의 트라우마,
그중에서도 부모와의 상처로 인해 요동치는 인물들의 자아와 관계성
이카리 신지

 을 화두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품이 꾸준히 제시하는 소재는 [타인의 사랑을 끝없이 갈구하면서도 언제나 본능 깊은 곳엔 나 자신이 1순위인, 불완전한 인간] 이죠.


  이는 엔딩에 이르러 인류의 종말인 "서드 임팩트"가 일어나는 과정 중 '타인으로부터 상처받지 않는 세상'과 '그렇지 않은 현재' 사이에서 신지가 고뇌하는 중요한 쟁점이 됩니다.


  우리가 접하는 이 작품의 불친절함이 쉽게 해석되지 않듯 인류의 종말, 사도라는 괴수들과 나약한 마음 깊이 자리한 상처는 열네 살 소년인 이카리 신지에게 너무 어렵고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참고로 앞서 소개한 세계관은 원작 설정의 극히 일부에만 해당하므로, 개인적으로 잘 설명된 것 같은 영상을 첨부하겠습니다.


https://youtu.be/w5R6OF_-1bE

출처 : 유튜브 오덕사





II

마음의 장벽, AT 필드

'나'와 타인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수많은 예술작품에서 다루어지는 인간의 모순은 대게 작품 속 완전함을 표방하는 또 다른 인물 혹은 요소가 등장함으로써 대비되곤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완벽한 존재란 자급자족이 가능한 존재들을 말하는데요.


「브루스 올마이티」 속 신(모건 프리먼)

  그 자체로 존재 가치의 증명이 필요 없는 이라던가 작품 내적으론 강력한 힘을 가졌고 영생, 불로가 가능한 사도들을 예시로 들 수 있겠죠.


  그럼에도 수많은 예술작품들은 완전성을 거부하고 다시금 인간의 존재 가치를 필연적인 불완전성 속에서 확립하며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의 격려 역시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에는 "AT 필드"라는 요소가 등장합니다. 작 중에서는 단순히 괴수들의 결계,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힘쯤으로 묘사되다 그 진실이 후반부에 드러나는데요.


초호기의 공격을 방어하는 사도의 AT 필드

  AT 필드는 작품 속 표현을 빌리자면 "마음의 장벽"입니다. 사실 특별한 존재들만 가진 초능력 같은 게 아니라 보잘것없는 인간에게도 깃들어 있는 힘인데요. AT 필드는 나의 마음(의지, 분노, 사랑, 용기 등)이 물리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도와 에바의 경우 AT 필드의 강력함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어 자신의 마음(상대를 죽이고자, 누군가를 지키고자)을 이용해 방어, 혹은 공격까지도 가능하지만,


  인간의 AT 필드는 그 위력이 매우 미미하기 때문에 물리적인 힘을 구현해내지 못하고 물이 담긴 물병처럼 우리의 영혼을 가둔 채 형태를 유지시켜 육체를 형성하는 데에 그치는데요.


  작품은 아무리 나의 마음이 간절하다 해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없고, 타인의 마음을 아무리 알고 싶어도 끝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의 모습을 AT 필드로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나와 타자를 구분 짓는 마음의 장벽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결코 타인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인데요.


  그럼에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자급자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타인의 이해와 관심을 갈구하도록 설계된, 존재 자체로 모순인 인간들.


  마찬가지로 등장인물들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은 나 자신이 1순위인 이기심을 내려놓지 못하면서도 원하는 사랑과 관심, 이해를 받지 못해 망가지고 파국에 이르게 됩니다.


주요 인물들

  주인공인 이카리 신지 역시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어머니가 눈앞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어릴 적 상처를 입어 타인에게서 미움받고 버려진다는 공포가 가득한 소년입니다.


  때문에 언제나 자신보다는 타인을 과도하게 신경 쓰고, 매사에 수동적이며 수용만을 일삼는 상처받은 사람이죠. 결국엔 그것 역시 자신을 상처로부터 지키려는 이기심인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인간성이지만요.


  신지를 비롯해 아스카, 레이, 미사토, 리츠코 모두 이러한 상처(어린 시절 가장 큰 애착 대상인 부모로부터 얻은)를 가진 인물들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인간 역시 비슷합니다.


  작 중 등장하는 요소인 "인류보완계획" 역시 '인간의 AT 필드를 모두 없애 섞일 수 없는 자아의 구분을 무너뜨리고 하나가 된다'는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인류의 종말, 다른 말로 서드 임팩트의 목적이자 제레가 꾸미고 있는 인류보완계획.


인간은 홀로서기를 할 수 없는 종족임에도
타인을 이해하지 못해 다투고 싸우며 전쟁을 일으키고 결국 자멸한다.
따라서 자아의 구분을 없애고 모두가 같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인류보완계획을 최초로 꾸민 제레는 서드 임팩트를 시작으로 벌어질 자신들의 계획이 인간의 불완전성을 극복하고 진화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죠.


  네이버의 「2017 멋진 신세계」 릴레이 웹툰 중 배진수 작가의 [CIRCLE OF LIFE]라는 단편에서 등장한 '기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던 인류가 결국 가상현실에 전 인류를 하나의 자아로 통합시키게 된다'는 이야기와도 비슷합니다.


  당연히 인류보완계획 역시 자아의 죽음이란 요소를 담고 있기에 타인에게 상처받는 삶으로부터 도피해 영원히 상처받을 필요 없는 삶, 곧 죽음이자 자살을 암시하고 있는데요.


  결국 에바(아담의 복제)와 완전히 하나가 된 신지(릴리스의 후손)로 인해 서드 임팩트가 벌어질 위기에 처하게 되고 신지는 고뇌에 빠지게 됩니다.


이대로 모두의 자아가 죽고 하나가 되는 게 내가 원하던 세상일까?

등장인물들

  신지는 네르프를 만나고 초호기를 타게 된 뒤로 만나게 된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같은 파일럿 동료들, 네르프 기관 직원들, 학교의 친구들. 분명 나의 상처를 100% 이해할 리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들과 함께했던 거실. 재미없어도 주고받던 대화.


  끝내 신지는 서드 임팩트를 멈추고 작품 내내 회피해 왔던 타인과의 교류, 곧 상처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합니다.


   인간은 앞으로도 서로를 이해 못 한 채, 철저히 나와 타인으로 구분되어 살아가겠지만 서로 비비고 살다 보면 느껴지는 행복들을 간직할 테니까요.


  그러한 순간들이 모여 결국 생과 사를 매번 선택하는 내가 되어가겠지.





III

상처받은 세대

작품의 메시지


  설명했듯 주요 인물들은 모두 부모로부터 트라우마, 혹은 상처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매몰차게 버림받고 지속적으로 인정받지 못해 회피성 성격을 가지게 된 이카리 신지

정신이 이상해진 어머니 때문에 강제로 독립적인 삶을 살아 마음 깊은 곳에선 의존을 갈구하게 된 아스카

자연적인 가정이 아닌 인공적인 복제로 태어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레이

가정에 소홀하고 굳건하게 곁에 있어주지 않았던 아버지를 닮은 카지 곁을 맴도는 미사토

아버지의 부재와 연구원 어머니의 무관심, 그로 인해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앓는 리츠코


  실제로 부모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합니다. 평생 사랑을 갈구하는 방식,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정해지기도 하고 원하는 사랑의 양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나이를 먹으면서도 상처를 극복해내지 못해 비슷한 상황에 스스로를 밀어 넣고 다른 결과를 기대하거나 조금이라도 비슷한 상황을 회피해 버리는 등 인류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음에도 위태로운 삶을 이어나갑니다.


아야나미 레이

  나를 무조건적으로, 제일 많이 사랑해야 할 엄마아빠가 날 상처 주었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그러지 않을리가요.


  두 종족이 끝없이 충돌하며 그로 인해 고통받는 자손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전반적인 설정은 그 자체로 가정의 붕괴, 윗 세대(버블경제)로부터의 상처, 그로 인한 청소년들, 상처받은 세대들의 방황과 혼란을 은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과도하게 종교적으로, 철학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배경지식이 많다면 조금 더 흥미롭게 볼 만한 요소는 되지만 모든 칠드런들에게 격려를 하는 엔딩을 포함해 안노 히데아키의 메시지는 명확하거든요.


아주 먼 옛날부터 지속되어 온 종말의 공포. 서로 간의 분쟁과 다툼을 멈추기 위해
AT 필드를 없애고 자아의 구분을 무너뜨려 인간의 불완전함으로부터 탈피하려 했으나
신지의 선택으로 신지는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확립하고
기존의 세상 속에서 행복을 찾아나가길 선택한다.

어릴 적 부모와 가정으로부터 얻은 상처.
이를 품은 채 소통의 장애를 겪게 된 우리들.
그러한 장애로부터 오는 상처들로부터 도피해 자아를 잃어버리고
게임, 술 등에 빠지거나 목숨을 끊지 말고 타인으로 가득한 세상에 끝없이 부딪히며
그 속에서 행복을 찾고 자신이 누군지 찾아나가기를 소원한다.


  작품 자체로 은유하는 메시지를 따라가다 보면 관객들은 논란의(?) 엔딩을 마주하게 됩니다. 꽤나 당황스럽기도 하고 제작비 이슈 등 카더라가 많지만 끝내 세상과 타인에 대한 도망을 그만두길 선택한 칠드런들에게 보내는 찬사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무언가를 끝 마치는 것만큼 다시 시작하는 것도 충분히 어려우니까요.




18번째 사도, 인간

  우리는 불완전하게 태어나 불안정한 삶을 이어나갑니다. 작 중 인간의 강점인 마음과 사랑조차도 정해진 루트가 없죠.


  레이가 태생부터 정해진 용도를 거부하고 겐도를 내치며 이카리에게 간 것처럼, 리츠코의 어머니가 또다시 딸을 배신하고 남자를 선택한 것처럼.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입니다. 홈이 맞는 퍼즐조각이 되어 완벽하게 불완전한(Perfectly - Imperfect) 타인을 찾아 나라는 그림을 확장시켜 나가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림의 전체를 가늠하지 못해 방황하기도 합니다.


  인정욕구와 애정결핍, 일개의 퍼즐 조각에겐 참으로 청승맞고 과도한 진단인 듯 보이나


  그림의 일부가 되기를 거부하는 누군가는 끝내 초원 위 근사한 집을 만들지 못하고


  평생의 삶을 텅 빈 하늘로 담아가다 사라지기도 합니다.


  불완전함에도 특유의 번식력과 집단 지성으로 우리는 빠르게 성장해 왔으나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도 답을 내리지 못한 존재들입니다.


  그 속의 절망을 집어내 스스로 사라지길 선택하거나 현실에서 도망치는 이들에게도 목숨을 건 전투와 사랑과 고통이 있었다면


완벽한 축하를 전합니다.




  역시나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만한 작품입니다. 불친절한 연출과 난해함, 엔딩의 의미와 수위 등의 이유를 꼽을 수 있겠는데요. 그러나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갖고 있는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답답할 정도로 느껴지던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성이 곧 우리의 모습으로 다가올 때 전환되는 작품의 감상 방향이 인상적이고, 난해할 뿐이지 그 능력만큼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연출 역시 많은 영감을 준다고 생각하거든요.


  현실에서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봤을 상처받지 않는 세상에 대해 낯설게 표현한 감독의 상상력 역시 큰 여운을 남겼으며 작품 전체적으로 짙게 깔린 우울감과 코스믹 호러, 절망을 날 것의 결로 느껴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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