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터 스켈터」, 1995
Intro
우리는 누구나 아름다운 것을 좇습니다. 외모와 예술, 혹은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 등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려 하는데요.
철학자 칸트는 이 '아름다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객관적인 아름다움이 어딨어!
아름답게 보아야 아름다운 거야.
결국 아름다움이란 무언가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 이는 당시 아름다움이 사람, 사물, 대상의 속성이라고 믿었던 시류와 크게 상반되는 주장이기도 했는데요.
상식적으로 아름다움은 절대로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겐 추하고, 또 누군가에겐 경외스럽기 때문이죠.
일본의 만화가 오카자키 쿄코 역시 이 ’아름다움의 상대성‘에 대해 자주 다루는 예술가이기도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에겐 아름답지만,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다는 당연한 간극. 거기서 오는 공포와 파멸을 그려내곤 합니다.
1995 ~ 1996년 연재, 한국 단행본은 2020년에 출간된 「헬터 스켈터」는 남몰래 한 전신 성형으로 탑스타가 된 여자의 비극을 다룬 작품입니다.
어딘가 왕도적인 로그라인이지만 언제나 그랬듯 작품 속의 수많은 문학적 표현과 독특한 연출로 줄거리 그 이상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요.
작품의 연차는 꽤나 오래되었지만, SNS의 발달과 함께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전염병처럼 확산되고, 급기야 늙는 것에 대한 공포가 사람들을 지배하는 요즘에도 전혀 올드하지 않게 맞아떨어지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작 중 나오는 대사처럼, 젊음은 분명 아름답습니다. 때로는 그 어떤 것과도 맞바꾸기 힘든 보물과도 같은데요.
박색의 여자였지만 천문학적인 금액과 치명적인 후유증을 감수하고 전신 성형을 한 리리코. 그녀는 순식간에 스타덤에 올라 일본 전국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모델, 배우, 가수, 아이돌이자 톱스타가 됩니다.
광고 문구를 발랄하게 읽으며 윙크를 하는 그녀. 그러나 리리코는 활동 내내 자신을 따라다니는 소속사 사장이자 ‘엄마’의 가스라이팅, 그로 인해 외모 강박까지 생긴 상태였는데요. 하루가 멀다 하고 그녀는 대중들의 열렬한 환호와 극렬한 싫증에 떠밀리며 조금씩 망가져갑니다.
조현병 환자처럼 오락가락하는 정신상태, 온몸을 뒤덮어가는 수술 후유증 그리고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줄 사람 하나 없는 엔터 업계 등 리리코는 늙고 추해져 대중에게 버려지느니 죽음을 택할 사람입니다.
빠르게 태어나고 빠르게 소비되는, 인큐베이터와 장의사가 사라진 욕망에 찌든 세상은 스타를 만들고 다시 싫증 내며 굴러갈 뿐이죠.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헬터 스켈터'는 사실 영국의 카니발에서 볼 수 있는 미끄럼틀의 이름에서 유래했는데요. 정신없이 굴러 떨어지는 리리코의 추락과도, 또 마지막까지 내리막의 희열과 스릴을 느낄 뿐, 추락을 외면하려는 그녀의 삶을 나타냅니다.
칸트는 아름다움이란 대상을 보는 이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아가 그는 아름다움과 짝꿍인 ‘숭고함’이라는 가치를 강조했는데요.
젊음은 아름다움에 속하고, 노인은 숭고함에 속한다.
때문에 인간의 삶은 아름다움만을, 또 반대로 숭고함만을 좇으며 살 수는 없다.
작 중 아사다 검사가 리리코를 빗대어 한 말은 이와 궤를 같이합니다.
젊음은 아름답지만 아름다움은 젊지 않다
아름다움은 조금 더 풍부한 가치입니다. 때문에 유지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음을 「헬터 스켈터」는 말하고 있죠.
항상 스타를 아름답게 보는 대중들에 의해 끊임없이 아름다운 스타가 탄생하는 것처럼. 또 숭고함을 늙어버린 빛바랜 이들의 변명이라고 치부하는 것처럼, 아름다움의 아이콘이었던 리리코조차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결국 아사다라는 검사가 리리코의 전신성형을 집도한 병원이자 여성들의 욕망을 실체화하는 불법 미용 클리닉을 수사하기 시작하면서, 리리코 역시 아사다의 수사망에 옥죄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는 리리코에게 '타이거 릴리'라는 별명을 붙여주며 천천히 그녀를 사냥하는데요.
결국 리리코의 신체는 후유증을 감당하지 못해 무너지기 시작하고, 그런 사정 따위 알 바 아닌 세상은 어느새 새로운 스타를 위해 몸가짐을 단정히 합니다.
전신 성형 의혹, 퇴폐업소에서 일했던 과거, 살인교사 사주 혐의 등 기자들의 플래시가 총처럼 터지는 기자회견. 그것을 앞두고 벌어진 리리코의 충격적인 선택과 함께 작품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스타를 사랑하고 죽이고 싶어 하는 세상과 대중이 굴러간 자리엔, 언제나 '늙어가는 이'들이 남습니다. 스포트라이트와 아름다움에 집착하던 삶에서 벗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죠.
손뼉처럼 마주 보아야 하는 젊음과 고통, 아름다움과 숭고함은 한쪽을 잃어버리는 순간 따귀로 변하고 맙니다. '짝' 소리는 비슷하게 난다지만요.
「헬터 스켈터」는 아름다움의 입체성, 숭고함, 집착과 파멸 등 세상 속 '아름다움의 경쟁'에 놓인 사람들을 다룹니다. 그 주제의식과 작품성을 인정받아 영화화되는 등 심리 스릴러의 대표 격 작품으로서 오늘날에도 닿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무대를 향해 박수를 치던지, 상대의 뺨을 때리던지, 쿠션을 얼굴에 두드리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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