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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예술 Oct 07. 2024

한국 첩보 영화 4선

제임스 본드, 제이슨 본, 그리고 김봉두

007 (feat. SYD) - Tabber


사각예술은 각종 영화, 만화, 음악 등을 리뷰하고 해석하며 덧붙이는 매거진입니다. 업로드 주기는 비정기적이며 현재 네이버 블로그, 인스타그램 운영 중에 있습니다 :)

모든 작품은 스포일러를 동반할 수 있으며 들러주신 노고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베를린」에서 악역을 연기한 배우 류승범
푸른 안개가 주저앉은 새벽녘의 거리.
안주머니에는 권총을 숨긴 채 인쇄된 지 얼마 안 된 신문을 말아 들고
어딘가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많은 사람들은 첩보 영화의 ‘한기’에 매료되곤 합니다. 배신의 연속과 몸 대신 정착해 버린 낯선 곳의 외로움이 잘 표현되는 장르이기도 하죠.


  007 시리즈, 본 시리즈처럼 한국 영화계에도 흥미로운 첩보 영화들이 여럿 있습니다. ‘쉬리’의 계보를 잇는 한국의 첩보물들은 헐리웃의 깔을 가져가면서도 평범한 국민에게도 맞닿아있는 정치, 외교적인 문제를 소재로 삼곤 하는데요.


  대체적으로 가장 공적인 임무를 사적인 구실로 풀어내는 인물들의 고뇌에 몰입하며 관객들은 주인공이 겪는 긴장감과 서사가 드러내는 진실, 그들의 떠돌이 생활에 함께 참여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익숙하지만 맛있는, 익숙한 얼굴이지만 새롭습니다. 오늘도 인파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을 누군가를 떠올리며, 오늘은 익숙한 언어의 스파이 영화들을 추천드립니다.




한국 첩보물의 한 획을 그은 작품

「베를린」, 2013

・ 류승완 감독 / 하정우, 전지현 외


  류승완 감독의 2013년작 「베를린한국 첩보 영화의 선구자라는 평을 받습니다. 북한 첩보원, 한국 국정원, 북한 정치권 간의 삼파전을 담아냈으며 고국에선 영웅이라는 별명을 가진 남자와 로터리에선 좌회전도 안 한다는,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로 가득한 국정원 요원이라는 캐릭터성이 독특한데요.


  냉전 시절 '스파이 도시'라는 별명이 있었던 베를린의 차가운 색감과 절제된 액션, 배우들의 매력이 돋보이는 수작이죠. 특히 보기 힘든 류승범 배우의 인상적인 악역 연기와 마지막 갈대밭에서 벌어지는 육탄전이 백미입니다.




시대적 혼란을 개인의 입체감으로

「밀정」, 2016

・ 김지운 감독 / 송강호, 공유 외


  과거 독립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로 변절해 살아남은 주인공. 양심은 버렸으나 탄탄대로일 줄 알았던 그의 삶은 다시 흔들립니다. 공포스러운 악역 '하시모토'를 알린 작품이자 시대적 배경의 서슬 퍼런 압박감을 이중스파이 이정출의 입체성으로 표현해 내 호평을 받기도 했죠.


  반전과 액션보다는 서스펜스에 집중해 긴장감과 미려한 미장센으로 꽉 찬 작품으로, 이런 미적인 감상을 짚어주는 요소로는 이중스파이 이정출을 연기한 배우 송강호의 역할이 크지 않았나 싶은데요.


  단순히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닌, 뼈대는 자신의 성공과 야욕을 뿌리칠 수 없다는 캐릭터성으로 잡아가며 양심과 개인의 혼란, 죽음의 공포 등을 다면적으로 연기해 내 감탄을 자아냅니다.




토사구팽의 명분은 언제나 쓰라리다

「헌트」, 2022

・ 이정재 감독 / 이정재, 정우성 외


  '배우 이정재'가 '감독 이정재'가 되는 입봉작이자 80년대 군사정권 시절을 담아낸 '헌트'입니다. 첫 장편임에도 우려와 다르게 한 쪽으로 크게 치우치지 않은 수작 정치 첩보물을 탄생시켰는데요.


  안기부 내의 북한 스파이 '동림'을 잡으려는 두 요원의 혈투를 담아냈으며 한국 현대사가 여럿 얽혀있는 바람에 진입장벽이 있지만 두 주연배우의 열연, 하나의 사냥감을 쫓던 두 사냥개를 덮치는 아이러니가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슬로건 답게 간첩조작, 여론조작, 고문치사 등 과거 그들의 온갖 만행을 가감없이 표현함과 동시에 고문실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식당 유리를 부숴먹는 대학생 무리의 간극은 백지장 만큼이나 가볍고 공허하기도 합니다.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들키지 않는 것'

「공작」, 2018

・ 윤종빈 감독 / 황정민, 이성민 외


  '액션 없는 첩보물'이라는 평가에 '공작원의 액션은 작전의 실패를 의미한다'고 답변한 윤종빈 감독의 '공작'은 그 의도대로 치열한 머리싸움과 임기응변, 정보 전쟁의 긴장감을 다룬 하드보일드한 작품입니다.


  정보사 출신 사업가로 위장해 북한의 외화를 책임지는 인물과 접선 후 '광고 촬영'을 핑계로 북한의 핵 시설 자료를 가져오는 것. 총격전 대신 녹음기와 적절한 언변, 또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말인 호연지기의 관계를 이용하는 냉혹한 휴전.


  코드명 '흑금성'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북한의 모습과 실존 인물이었던 김정일의 위압감을 재현해 내는 등 스펙터클함보다는 철저한 몰입을 통해 발각, 잠입의 한 끗차이로 승부를 보는 수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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