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 (2025) | 리뷰 & 해석
Music | 2025.12.12 Edited by 사각예술
최근 국힙 지디 저스디스의 신보, 「LIT」 이 발매되었습니다. 발매 전부터 수많은 인터뷰에 출연하고 데모곡을 공개하는 등 강한 자신감을 내보인 채 기대감을 들끓게 만들었는데요.
이전의 가요에서 찾을 수 없는 수위다
어? 스릴러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창자를 보여주네? — 더콰이엇 曰
특히 그의 커리어, 서사를 알고 있는 리스너들에게는 애증의 마음으로 기다려온 신보이자 논란을 잠재울 복귀작이기도 했습니다.
래퍼 저스디스는 명반 「2mh41k」 를 발매한 후 다사다난한 커리어를 보내며 언제나 입방아에 오르내리곤 했습니다.
노선 바꾼 뱀 논란, 발라드 가수 논란, 디스전 회피 논란⋯⋯. 끝없는 이야깃거리들이 그를 뒤따랐죠. 그럼에도 저스디스는 음악으로 자신의 입장을 표현해 왔습니다만 대중들은 그의 말에 관심이 없거나, 손쉽게 왜곡해 버리기 일쑤였습니다.
헨젤과 그레텔 맹키로 '앨범 모드'만 몇 년째 보여주던 그때, '개쩐다'라는 의미와 '번역 중 손실'이라는 이중의미를 가진 앨범 「LIT」 이 세상에 탄생했고, 예상대로 엄청난 호불호와 함께 큰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Lost in traslation
그냥 할 뿐야 Display를
그래서, 앨범은 그의 자신감대로 세기의 명반이었을까요? 이전에 없던 게임 체인저였을까요?
1. LIT ★
2. 내가 뭐라고 (feat. Bumkey)
3. 내놔 ★
4. LOST
5. Don't Cross ★
6. Curse ★
7. Interrude
8. 유년 ★
9. VIVID ★
10. Dusty Mauve Intermission
11. 돌고 돌고 돌고 (feat. 라디) ★
12. THISpatch
13. Wrap It Up ★
14. Can't Quit THIS Shit (feat. ILLINIT)
15. THISISJUSTHIS Pt. III
16. 친구 (feat. DEAN)
17. 내 얘기
18. XXX
19. Lost Love (feat. DUT2, Street Baby & 009)
20. HOME HOME
커버와 앨범 아트
저스디스의 앨범 제목 [LIT]은 ‘Lost In Translation’의 약자입니다. ‘번역 중 손실’이라는 뜻으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미의 왜곡과 훼손을 상징하는데요. 이는 단순히 언어학적 문제를 넘어, 저스디스가 자신의 삶과 힙합, 그리고 사회 전반을 바라보는 방식과도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A를 B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의미의 손실은 필연적이다.
설령 그 손실이 결과적으로 소통을 돕는다 해도,
원래의 언어가 지닌 온전한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저스디스는 이 ‘손실’을 자신의 앨범 전체에 적용합니다. 예를 들어, 저스디스 자신은 과거에서 현재로 오며 변질된 행보를 걸었습니다. 그는 '방송 출연'을 감행했던 딥플로우를 시작으로 VMC 사단의 모순을 지적하며 디스전을 벌였는데요.
그러나 저스디스는 자신이 비판했던 이들처럼 리스너들을 실망시키는 행보를 걸어왔고, 그러한 변질이 결과적으론 성공과 부를 가져다주긴 했습니다만 처음의 마음이 아니게 된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힙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문화적 가치가 손실되며 대중화되었고, 그 손실이 씬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을지라도 원래의 힙합이 훼손된 것은 사실이니까요.
또한 LIT이라는 단어는 Light의 과거형으로 ‘빛났다, 불태웠다’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슬랭으로는 “쩔었다”, “찢었다”라는 감탄사로 쓰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앨범은 단순히 “개쩐다”는 1차원적 의미와, ‘번역 중 손실’을 차용한 자아성찰·사회비판이라는 또 다른 의미를 동시에 지니죠.
커버 아트 역시 단서를 제공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복잡한 미로 가운데 주황색 점이 있는 모습은 가사 속 반복되는 주황색과 파란색의 대비와 연결됩니다.
3번 「내놔」 | "Orange Tower”, “Blue Maze”
4번 「LOST」 | “황색 스파이더맨”, “천원(파란색)”
12번 「THISpatch」 | “peeled you an orange”, “Bluefaces”
이는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의 ‘자유의지를 잃은 인간상’, ‘Bluefaces’라는 100달러 슬랭과 디지털 사회 풍자 등 다양한 것을 연상시킵니다.
특히 주황색은 자연스럽게 앨범 커버 중앙의 점과 연결되는데요. 마치 Orange Tower가 미로의 해답이자 결말, 헤매는 자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를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파란색은 주황색의 보색으로, 보색대비표에선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데요.
현재 앨범에 대한 주된 해석 중 하나인 "화자이자 저스디스가 과거와 현재의 괴리를 극복하고 더 나은 인간상으로 나아가려는 여정" 이 사실이라면,
현대의 디지털 지옥 속에서 돈만을 쫓는 우울한 현재는 파란색이자 수많은 논란거리를 몰고 온 저스디스. 즉 미로의 탐색자는 청자가 아니라 자신, 가족, 세상, 힙합에 대한 사랑을 쫓는, 저스디스 본인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과거 오렌지색 첨탑을 찾아 수많은 막다른길을 버텼던 허승은 「2mh41k」를 발매한 후 이름값있는 예술가가 되었지만 이제는 Bluefaces가 되어버렸습니다. 떼돈을 벌면서도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은 빛바래져만 가죠.
자신의 자아를 회복하고 더 나은 예술가가 되고 싶은 '아티스트' 저스디스는 이제 중심의 점이 아닌 미로의 탈출구를 찾아 과거에 만났던 막다른길들을 분노로 깨부수며 나아가려고 합니다.
앨범의 메시지에 대해
룸방 가서 양주 빨고 물 빼는 배 나온 개저씨들
돈 몇백억 꼬라 박은 40kg대 여자애들이 자랑스럽지 않음,
너도 매국노가 되고, 버닝썬이 터져도 밤은 낮보다 밝고
12번 「THISpatch」
저스디스는 앨범 속에서 한국 가요산업과 사회적 병폐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부패한 KPOP과 연예산업이 국가적 자랑거리로 포장되는 현실을 꼬집으며 동시에 그의 메시지는 숏폼 콘텐츠 속에서 자극적으로 소비되고,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왜곡될 것임을 예고합니다.
현재 앨범에 대해 '이것까지가 릿임' 밈이 생겨났는데요. 솔직히 아주 설득력이 없지는 않습니다. 5번 「Don't Cross」가 ‘빈지노 디스’라는 루머가 생기자 귀신같이 숏츠, 릴스 등에서 해당 찌라시를 퍼트리며 재생산하는 모습이 대표적인 예시였습니다. 진짜로 그것을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당사자만 알 것임에도 댓글에선 이미 혐오뿐인 싸움이 계속되었는데요.
마지막 트랙 「HOME HOME」 에서 지적한 문제들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죠.
Shorts, reels, TikToks — edited fragments.
Talk with bots in the comments. This is your HOME.
And just like that, you become a Nazi
숏츠, 릴스, 틱톡 — 조작된 파편들.
댓글에선 AI 봇들과 떠들어대지. 이곳이 네 집이야.
그리고 그렇게. 넌 나치처럼 되는 거야.
사실은 변질된 힙합 문화 혹은 현재의 자신을 향한 자기비판일 수도 있다는 해석 역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 “16살”이라는 표현이 저스디스가 주목받았던 「2mh41k」의 발매년도인 2016년을 의미하며, ‘걔’라는 대상은 특정 래퍼가 아니라 힙합 자체일 수도 있다는 해석. — 과거 피타입이 힙합을 ‘멀어진 그녀’에 빗대 표현한 것처럼, 저스디스 역시 힙합을 인격화해 대화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디스 추정 트랙'인 「Curse」역시 단순한 저격이 아니라 반복해서 뱉는 훅인 'Curse'가 래퍼들의 플렉스 슬랭인 ‘Skrr’ 처럼 들리며, 저스디스 자신이 돈을 벌게 된 것이 결과적으로 저주와도 같았다는 자기 고백처럼도 보입니다.
즉 이것까지가 릿이라는 건,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결국 “혐오를 싫어하면서도 혐오를 재생산하는 사회”에 대한 고발이라는 것이죠. 하고 싶은 말과 듣고 싶었던 말의 괴리는 번역 도중 손실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단절과 혐오를 일으킨다고요.
저스디스는 이를 ‘HOME’이라는 불안정한 안식처로 표현하며, 리스너가 앨범을 통으로 듣지 않고 자극적으로 편집된 부분만 접한다면 빠질 수밖에 없는 함정을 설계한 셈이었습니다.
'정보 전달'이라는 명목으로 화자의 의도는 제외된 채 자극과 화제성을 위해 재단되고 편집되어 혐오로 재생산되는 이 사태는 저스디스가 커리어 내내 '고통스럽다'라고 호소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여긴 앨범을 듣는단 게 뭔지 몰라 Respect 있을 리가
살만해 中
네.. 맞는 말이죠. 그런데요, 그런데..
올해의 앨범은 절대 아니고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저스디스의 「LIT」 은 제게 꽤 불호였습니다. 이미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발매 전 던져놓은 말들이 많아 앨범을 여러 번 들은 뒤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죠.
그럼에도 아무런 설명 없이 '구리다'라고 하는 건 스스로에게 찔려 다양한 해석을 찾아보고 과거 인터뷰, 자료를 찾아보며 저만의 감상을 매듭지어봤습니다만 그럴수록 느낀 건 제 불호가 틀린 직감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크게 세 가지 이유입니다.
IZM 매거진에 기고된 「LIT」 평론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복잡성과 완성도가 동의어는 아니다
현재 「LIT」에 대한 주된 호평 중 하나는 '깊은 가사'입니다. 다양한 레퍼런스와 오마주, 과거를 파편화하여 묘사함과 동시에 현재의 괴리를 담아내는 퍼즐과도 같은 가사. 이는 저스디스가 실제로 느낀 현실의 혼돈이자 번역 중 손실을 보여주려는 시도라는 것이죠.
다만 그것이 예술적, 음악적 완성도로 결부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지나치게 꼬인 문장, 과도하게 파편화된 레퍼런스, 문장 구성을 오염시키는 한영혼용, ‘솔직함’과는 거리가 먼 욕설들.
스티븐 킹은 애착이 있는 문장이라도 독자의 이해를 방해하면 과감히 삭제하라는 작법 원칙 — "Kill Your Darlings" 을 남겼고, 헤밍웨이는 깊은 인생철학을 간결한 단문으로 담아 「노인과 바다」를 집필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작사가들과 극작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공통점은 '쉬운 글'에 대한 집착이라는 것이죠. 이는 꼭 1차원적인 글, 단문 위주의 글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또 이 읽기 쉬운 글은 쓰는 것만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막힘없이 읽히고 사색은 깊고 무한히 뻗어나가야 합니다.
퍼즐로 예시를 들어볼까요? 직소 퍼즐은 많으면 수만 개의 조각을 두고 그림을 맞추지만 그 재미와 어려운 난이도를 뚫은 성취감 덕에 인기가 많습니다. 근데 퍼즐의 난이도를 올린답시고 손발을 묶은 채 맞추라고 하면, 그게 재밌나요? 그저 불합리하고 불편한 경험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LIT」은 암호화되었을 뿐 풀기 싫은 앨범입니다. 다양한 비유가 등장하지만 우의적인 표현으로 메시지를 은유하지 못하고 이 '메시지'조차 다소 피상적이고 추상적이죠. 할머니의 임종을 생생하게 그린 <유년>이나 아버지로부터 아들로 이어지는 것들을 표현한 <돌고 돌고 돌고> 등 중간중간 번뜩이는 부분이 있지만, 저스디스의 분노를 쏟아내는 90프로의 부분에서는 분노를 위한 분노로 느껴질 뿐입니다.
예시로 염따의 「살아숨셔 4」 에 대해 불호를 표하는 이는 많지만 그의 가사가 오글거리는 자기 한탄일지언정 '솔직하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입니다. 가벼운 농담과 밈, 경박한 톤으로 멜로디컬 하게 부른다고 해도 '솔직한 가사'가 주는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는 의미이죠. 설명하지 않아도 듣는 사람이 느끼는 것. 나아가 그걸 직접 쓰는 건 누구라도 쉽지 않은 법입니다.
마지막 트랙인 <HOME HOME>에서는 이러한 작위적인 감상이 오글거림으로 최종 진화합니다. 가사 역시 중등 영어 수준에 머무르며 톤과 호흡만 과장되게 뱉는, 그저 청자의 감정을 동요시키기 위한 장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며 꼭 어려운 표현을 썼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너무 1차원적인 사회현상 나열에 불과해 명가사라기보단 혼신의 웅변이라고 보는 게 더 적합합니다.
음악은 음악입니다. 무슨 이야기일까요? 어떤 앨범을 듣던 그 안에 담긴 서사, 가사, 연출, 랩 등 모든 것은 결국 얼마나 음악적으로 영감을 주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메시지가 아무리 강렬해도 음악적 매력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 설득력을 잃습니다. 저스디스는 전반부에 해당하는 1번 ~ 10번 트랙 동안 이 '사운드'와 '가사'의 조화는 꽤 맛있게 해냈는데요. 짬이 느껴지는 강약조절은 귀를 즐겁게 하다가도 허를 찌르는 랩이 잘 가미되었고, 과거와 현재 시점을 오가며 건네는 떡밥들은 긴장감을 잘 빌드업시켰죠.
그러나 11번부터 이 '음악'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애초에 저스디스가 랩을 못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예상대로 못하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얕습니다. 본인 말대로 철저하게 계산되었을 뿐 감정적으로 와닿는 부분이 없었는데요. 설계와 트릭으로 점철된 가사들과 강한 쿠세, 랩을 받쳐주지 못하는 몇몇 비트, 답답한 믹싱.
음악적으로 듣기 불편하다, 피로하다는 말은 이게 단순하지 않아서, 그저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음악적, 청각적인 매력이 뒤떨어져 강렬한 메시지만 덩그러니 남는" 앨범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행보에 대한 논란으로 거의 비등비등한 욕받이였던 딥플로우의 「FOUDNER」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아성찰적인 가사와 인상적인 펀치라인, 자신의 과거를 담담히 묘사하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비단 아티스트 자신뿐만이 아닌 산업 전반적으로 혼재되어 있는 문제를 제시하죠.
굳이 '이 세상은 병신'이라고 할 필요 없이 자신이 느꼈던 바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욕을 쓰고 화를 내는 플로우는 아니지만 화자가 당시 느꼈을 분노와 답답함, 허무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가사'로. 그리고 이 '깊은 가사'는, 청각적 쾌감을 주는 풀 라이브 세션 아래서 움직이며 '음악'이자 '힙합 앨범'이라는 결과적인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LIT」 에서 화자가 하고 싶은 말과 견해는 치고 나가는데 음악적인 매력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니 지레 앨범으로서 설득력을 잃습니다. 설득력을 잃으니 집중하지 않게 되고, 집중하지 않게 되니 굳이 이것을 뜯어 해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죠.
완벽히 해석하지도 않고 왜 평가하나?라는 질문은 애초에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청취와 해석이 주객전도된 채 소화해야만 하는 앨범이라면, 그건 음악이 음악이 아닌 게 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머리로 사색하려면 귀에 먼저 흘러 들어와야 하는 법이니까요.
「조커: 폴리 아 되」와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 는 교조주의적이었습니다. 엔터테인먼트라는 가치를 훼손하고 자신들의 메시지를 작위적으로 대두시켰죠.
관객이나 플레이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 아니라 생각하지 못하도록 유도한 부분을 꼬집어 교훈을 주는, 기만이자 비열한 방법입니다. 조커라는 캐릭터에 열광하도록 유도해 놓곤 그걸 아서 플렉에 대한 무관심으로 탈바꿈하는 건 좀 짜치잖아요.
「LIT」으로 돌아와서, 저스디스는 앨범 발매 전 라디오에 나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취향이 아닐 순 있지만,
음악적인 혹평이라면 리스너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발매 전 뿌린 떡밥 중 유일하게 거슬리는 메시지입니다. 마찬가지로 「LIT」에 가졌던 가장 큰 불호 요소이자 예술가가 가장 취해선 안 되는 태도이며 '자신감'과는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예술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음악도 물론 그렇고요. 허무맹랑한 행위예술도 누군가에겐 인생을 바꿀 전환점이 되기도 합니다. 즉 예술은 절대적으로 취향과 결부되는 것이며 애초에 취향과 분리된, 절대적인 잣대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불호를 표하는 것이 곧 구리다는 의미이자 음악적인 혹평인 것입니다.
그러나 화자 저스디스는 자신의 음악이 절대적인 정답인 것처럼 여깁니다. 라디오에서 나온 이 말은 앨범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며, 그가 나열하는 사회현상들과 개인적인 경험의 파편들은 의도적인 불쾌함을 자아내 '완벽한 오답'이라는 감상을 피하려고만 합니다. 「조커: 폴리 아 되」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앨범에 대한 불호를 '진실에 대한 거부감'으로 탈바꿈하는 것이죠.
그렇다고 저스디스의 「LIT」 이 전무후무한 게임 체인저였나요? 이전에 없던 철학을 보여주었나요? 엄청난 청각적 쾌감을 주었나요?
마치 영화 「내부자들」이 본인들이 지적하던 사회적 병폐를 스스로 자처한 모순을 보여주었듯 화자 본인부터 앨범 내내 제시한 사회적 문제를 대변한 입장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것까지가 릿이라고? 네.. 뭐.. 알겠습니다.
저스디스가 「LIT」 에서 펼친 서사는 거대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철저한 빌드업을 거쳤고, 인터뷰와 메시지들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관을 확장하려 했죠. 그런 과정 자체는 분명 흥미로웠고,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었긴 했습니다만 이만큼 해석과 탐구를 요하고 대화를 만들었던 앨범이 최근 들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거대함에 비해 작품이 실제로 건넨 음악적 설득력은 예상보다 훨씬 빈약했습니다. 말과 기획으로는 웅장했지만 정작 앨범은 그 약속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채 서사만 남긴 듯한 인상을 주었는데요. 스스로의 신화를 갱신하기보다는, 이미 만들어온 이미지를 반복 소비하는 느낌도 강했고요.
결론적으로 앨범이 주는 인상은 양가적입니다. 해석할 거리와 넘치는 떡밥, 그러나 정작 그 의미를 떠받칠 음악적 밀도는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 이해하려고 다시 듣고 해석해 보고 기록까지 해봤지만 그 과정에서 느낀 실망과 허탈함까지 부정할 수는 없는 앨범이었습니다.
장르의 스타와 청자라는 일반인과의 번역, 그리고 그 손실들의 의미 있는 충돌이었음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그 충돌이 완성도 있는 실험이었는지, 아니면 거품 낀 시도였는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Edited by 사각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