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은 이상기온으로 6월 초부터 섭씨 30도를 넘어 36도를 찍는 곳도 있다. 이곳 말레이시아 안띠, 안꺼(Aunt, Uncle의 말레이시아 발음이다. 말은 아줌마, 아저씨지만, 노년층에 가까워지는 장년층을 부르는 호칭이다. 보통은 70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젊게 대접해 드릴 때 쓰는 호칭에 더 가깝다.)들은 말레이시아가 3-40년 전만 해도 평균 섭씨 25도 정도로 사람살기 딱 좋은 기후였는데, 지금은 더워서 사람살기 너무 힘들다고 입을 모아 말씀하신다. 말레이시아가 원래 더운 나라라고만 알고 있던 나에게는 무척 놀라운 정보이다.
7월 중순인 요즘 평균기온은 32도에서 35도. 낮 체감온도는 40도는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에어컨을 밤새 틀고 잠을 잔다. 주변 몇몇 친구들은 실내온도를 18도 맞추고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잠을 잔다. 와! 매년 여름 전기세 살벌해 맘 놓고 에어컨 한번 실컷 틀수 없는 한국에서 자란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이들이 이토록 사치스러울 수 있는 이유는 말레이시아 전기세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무척 부러운 점이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에어컨을 틀고 살아서인지 냉방병이 없는 모양이다. 나는 워낙 추위를 타는 편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에어컨 추위에 끄떡없다. 이것 또한 부러운 점이다. 나는 에어컨 바람을 불편해하는 사람이라 요 몇 주동안 더위에 잠을 설쳤다. 아침 8시, 상쾌한 바람 한 점이 없다. 아쉬운 대로 공원에 나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움-찔!
수풀사이로 묵직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깜짝이야!'
화런華人들은 사족뱀四脚蛇이라고 부르는 모니터 리자드Monitor lizard다.
나의 걸음소리에 헐레벌떡 도망가는 모니터 리자드. 말레이시아 전역에서 쉽게 접하게 되는 야생동물 순위로 따지면 사족뱀이 2위는 하지 않을까! 덩치가 큰 건 1미터도 넘는 이 도마뱀이 도로, 학교, 공원, 하수구를 활보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 나의 친구집 변기에서까지 출몰했다. 허걱!
내가 처음 이 친구를 봤을 때는 한 대학교 공원 물가에서였다. 내 앞을 성급히 지나가는 거대 도마뱀. 나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기 일보직전이었다. 거대 도마뱀이 주택가에서 활보하다니. 공포그자체였다. 그러나 지금은 움-찔 정도. 왜냐고?
이 친구는 지금 자신이 더 겁을 먹었으니까!
온순한 성격, 겁이 많다. 그래서 이 친구는 말레이시아에서 '소심한 겁쟁이'로 비유된다. 자신의 외모가 얼마나 위력 있는지는 알지도 못한 채 작은 움직임에도 놀라 헐래 벌떡 주행낭을 친다. 나는 한 친구덕에 이 괴물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독특한 취향을 가진 나의 친구, 량잉. 말레이시아 남자와 결혼에서 페낭에 살고 있는 이 일본인 친구는 쥐포비아가 있다. 쥐라는 말만 들어도 기절한다. 진짜 기절. 그런데 함께 걷던 어느 날 우리는 이 사족뱀과 우연히 마주쳤다. 나는 기겁하고 도망치는데, 량잉은 사족뱀을 쫓아가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나! 사족뱀 꼬리를 쓰다듬고 있는 이 친구. 갑자기 이 친구가 괴물로 느껴졌다. 나를 보며 하는 말, "너무 귀여워!" 세상 참 재미지다!
상상 속 두려움의 위력은 막강하다. 작은 무언가도 엄청난 공포로 느껴지게 만드는 위력. 이 공포, 이 두려움.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 경험이 3할이라면 고정관념이 7할일 테다. 왜 경험에 3할을 주었냐면, 사족뱀에게도 그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 말레이시아에 모인 이민자들에게는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사족뱀을 단백질 공급책으로 잡아먹었다고 한다. 자신이 얼마나 위력 있는지 느끼기도 전에 이들은 겁부터 배웠던 것일까? 오늘의 나는 사족뱀이 되어 부풀려진 말에 상대가 얼마나 좋은 친구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지레짐작 겁을 먹는 것일까?
각자의 성격이 다르듯 각자가 느끼는 공포도 다르다. 당신은 무엇에 공포를 느끼는가? 어떤 이는 무생물일 테고, 어떤 이는 생물일 테지. 어떤 이는 작은 바퀴벌레, 어떤 이는 사족뱀, 또 어떤 이는 사람, 혹은 평판이라는 두려움, 불확실함이라는 두려움, 죽음이라는 두려움까지. 많은 공포가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 인생의 승리자란, 아마도 그 공포의 존재를 하나씩 줄여가는 사람이지 아닐까! 사족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