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스스로 만든 많은 장벽을 넘어서
드디어 다이버가 되어 PADI 오픈워터 자격증이 내 손에 들어왔지만 자격증을 취득하기 전에 내가 꿈꿨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바닷속 예쁜 생물들을 만날 용기를 가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 해가 바뀌어 새해 계획을 세우면서 슬쩍 리스트에 넣어 보았다. 펀다이빙 해보기! 계획한 것은 지키고 말아야 하는 성격이지만 이번엔 마냥 쉽지는 않았다. 과도한 인터넷 검색을 통해 비교하고 시뮬레이션해보고, 몹시 내향적인 나의 성격 탓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 다짐과 포기를 반복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마침내 마음을 다잡고 스쿠버다이빙 동호회에 가입하고 올림픽공원 다이빙풀에서 하는 연습모임에 참석한다. 어색하게 인사 나누고 자기소개하는 시간, 민망하다면 민망한 복장으로 동그랗게 모여서 준비운동 하는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왠지 부끄럽다. 수준은 제각각이지만 우리는 모두 다이버라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했다. 장비 세팅하는 법, 이퀄라이징, 중성부력 등등 자격증 교육에서 배웠던 것들을 끊임없이 연습하고 몸에 익힌다. 자연스럽게 몸이 기억하고 반응하도록 반복적으로 연습하며 감각을 익히는 것이다.
사실 스쿠버다이빙을 하는데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국내 또는 해외 바다에 나가서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실내다이빙풀에서 연습하는 것도 그렇다. 연습 한두 시간 하려고 하면 수영장 입장료, 장비 대여료(소유하면 좋겠지만 소유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공기통 비용까지 5~6만원은 거뜬하다. 다이빙풀까지 이동하는 시간과 연습 전 준비하는 시간, 연습 이후에 정리하고 씻는 시간, 다녀와서 지친 몸에게 주는 휴식의 시간 등등 주말 하루를 온전히 투자해야 한다. 이 중에 정작 다이빙하는 시간은 길어야 한 시간 정도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정말 비효율적이고 왜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펀다이빙을 즐기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다. 다이빙뽕에 취하신 숙련된 분들도 바다로 나갈 여건이 되지 않을 때 차선으로 수영장에서 즐기기도 한다. 나 역시 다시 다이빙에 재미를 느끼며 연습에 매진했다. 그리고 장비 욕심이 생겨나 마스크, 핀, 신발, 슈트를 구입했다. 슈트는 당시 좁은 나의 원룸에서는 관리가 어려워 다시 중고판매했고, 나머지는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함께하고 있다.
몇 번의 수영장 연습을 했을 때 즈음 동호회 게시판에서 제주도 문섬 펀다이빙 투어 참여자 모집글을 발견한다. 제주도는 나의 고향이다. 여전히 나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 폭풍 고민을 시작한다. 이미 다녀오신 경험이 있는 주최자분이 문섬에서 찍었던 사진들에 마음이 홀렸다가 일정상 제주도까지 가서 부모님 얼굴도 못보고 돌아와야 하는 상황에 망설이기를 반복했다. 함께하시는 분들의 배려로 다이빙도 함께 하고 부모님도 뵙고 올 수 있게 되었다.
기대와 걱정으로 복잡해진 마음을 가득 안고 나의 첫 펀다이빙을 시작한다. 금요일 늦은 밤에 도착하는 바람에 토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마주했지만 제주도 바다는 역시나 기분을 좋아지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러나 상쾌한 기분도 잠시, 분주한 준비를 마치고 조그마한 고기잡이배를 타고 섬을 향하고 있자니 긴장감이 엄습해 온다. 동해 바다에서의 기억이 떠올라 걱정이 된다. 몰래 크게 심호흡하며 태연한 척해보지만 쉽게 감춰지지 않는다. 그 긴장감은 바다에 내 몸을 던져 넣은 후에도 계속된다. 5월임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바닷속은 늘 예상보다 더 차갑다. 하지만 깊은 바닷속까지 들어가 울긋불긋 가을나무들 같은 다양한 색깔의 산호와 해초들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눈이 똥그래지고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기쁨을 소리없이 몸짓으로 다이빙 버디들과 함께 나눈다.
드디어 내가 바라던 바다를 만났다. 햇살을 담은 파란 바다에 알록달록 예쁜 산호초가 하늘거리고, 먹을 수 없게 생긴 외모를 가진 물고기들이 간간히 헤엄쳐 지나간다. 거기에 까만 잠수복을 입은 귀여운 인간들과 그들이 내뿜는 몽글몽글한 공기방울, 오직 다이빙할 때만 들을 수 있는 평온한 듯 거친 나의 숨소리까지…… 아, 완벽하다.
그렇게 나에게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을 선사한 첫 다이빙을 끝내고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바다 밖으로 나와 먹은 음식은 짜장면이다. 세상에나, 배로 무인도까지 배달되는 짜장면이라니! 10년도 더 지난 일이라 지금도 그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진정 배달의 민족이다. 맛이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두 번째, 세 번째 다이빙은 한결 수월하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바닷속을 관찰하고 다이빙 버디들을 관찰하고 그 풍경 속에 들어 있는 나를 느껴본다. 첫 번째 다이빙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지만 지루하지 않다. 우리를 위협하느라 잔뜩 배를 부풀렸음에도 주먹크기도 되지 않는 작고 귀여운 복어를 만난 것 정도가 새로울 뿐이지만 그냥 그 상황에 속해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좋았고 행복했다.
꽤 성공적으로 나의 첫 펀다이빙은 끝이 났고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다이버가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