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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Apr 22. 2023

아름다움은 앓음다움이다.

충분히 아파야 한다.


오랜만에 혜화역 맛집 혜화돌쇠아저씨에 갔습니다. 백발의 할아버지가 포마드 머리로 피자 반죽을 치는 낭만적인 식당입니다. 그날도 맛있게 먹고 나오는데 참 아름다운 카피 하나를 봤습니다. 


돌쇠 할아버지가 콜롬비아에서 목숨 걸고 따온 생두를
직접 정성을 다해 대충 볶은 커피가 삼천원

원두를 목숨을 걸고 따왔다니! 물론, 재치 있는 허풍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왠지 그날은 이 문장 앞에서 한없이 깊은 몰입을 했습니다. 


20년된 혜화돌쇠아저씨의 역사, 음식에 대한 진정성으로 미루어 보아 허풍은 아니라고 가정하고 커피 한잔을 위해 콜롬비아까지 날아간 할아버지를 상상해 봅니다. 



왜 피자집에서 커피를 팔아야 하는지 의사결정 과정이 어땠을까? 왜 하필 콜롬비아일까요? 그리고 콜롬비아 원두를 선택하기까지 쓰디쓴 커피를 얼마나 마셔야 했을까요? 나아가 콜롬비아까지 가는 과정은 또 얼마나 험난했을까요. 참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원두를 대충 볶아 삼천원에 판다니! 


한참을 포스터 앞에서 서 있다가 모종의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맛있는 음식, 진정성 있게 요리하고 서빙하는 직원들, 젋음으로 충만하게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성대생들 모두 아름다웠습니다. 



아름다움에 대하여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요? 단순히 미적으로 완벽한 것일까요? 아름다움에 대해 색다른 관점으로 정의내린 구절 하나를 소개합니다. 


소설가 박상륭 선생님 표기에 따르면 '아름다움'이란 '앓음다움' 입니다. '앓은 사람답다' 는 뜻이 되겠죠. 고통을 앓은 아픔을 겪은 사람 고뇌한 사람 혼돈의 현실 속에서 번민하고 갈등하고 아파한 사람다운 흔적이 느껴지는 것 그것이 앓음다운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랍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지극히 개인적인 내적 앓음에 의해서만 가능하겠죠.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는 당신이 어떤 아름다움을 보았는지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 김형태,  '너 외롭구나' 中에서 -


아름다움의 어원은 '앓음다움'이라고 합니다. '앓음'이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뜻합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사람이란 고통을 이겨내 아름다워진 사람을 말합니다. 아름다우려면 반드시 앎음다워야 합니다. 


다시 한번 아름다운 것들을 떠올려 봅니다.


아름다운 프로덕트, 아름다운 콘텐츠, 아름다운 기획, 아름다운 브랜드 등 이러한 아름다운 것의 창조자들은 오늘도 끙끙 앓고 있습니다. 창조의 과정은 포기하고 싶고 유혹에 넘어가고 싶고 번뇌의 연속이겠지요. 저는 가끔 무언가 불편하고 일이 안 풀릴 때 앓음다움에 대해 떠올리곤 합니다. 고통, 실수, 아픔, 후회는 아름다움의 증거이고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라고 스스로를 달래줍니다. 


저는 그 날 한자리에서 20년을 버틴 혜화돌쇠아저씨의 앓음을 들여다본 것 같습니다. 그 앓음으로 인해 아름다운 음식, 공간,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것 아닐까요?


만약, 여러분도 앓고 있는 것이 있다면 아름다움의 어원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알에서 깨어나는 새처럼 아름다워지기 위해 충분히 아파야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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