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쓰고 생각 정리하기
주여, 제게 이들을 내려주소서.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한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어 나가는 용기를,
그리고 이들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미국의 개신교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의 기도문이다. 이 기도문은 세상의 문제를 2가지로 구분한다.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 바꿀 수 있는 문제는 스스로를 고양시키며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 하지만 바꿀 수 없는 문제는 보통 타인을 탓하거나 나를 탓하게 만든다. 특히 문제의 원인이 내가 될 때 나는 더 비참해진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리차드 세라는 이 문제를 시간의 문제라고 환기한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104호에 크고 구부러진 철판으로 된 작품 시간의 문제는 관람객들에게 저마다의 경험을 제공한다. 크고 높은 철판을 따라 누구는 좁은 길을 가고 누구는 넓은 길을 간다. 누구는 어두운 길목을 걷고 또 누구는 다시 밝아지는 길목을 경험한다. 이 거대한 작품을 볼 때 중요한 요소는 바로 시간이다. 관람객들은 104호라는 인생에서 길을 걸으며 저마다의 시간을 경험한다.
얼마 전 중학교 동창들과 거의 9년 만에 만나 축구를 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은 학벌, 경제적 능력, 외적인 모습 등 우리가 보통 상대적으로 사람을 볼 때 가지는 잣대의 여러 요소와 별개로 지난 9년 동안 저마다의 시간을 디자인해왔다. 동창들 모두가 걸어 온 길은 리자드 세라의 시간의 문제처럼 넓어졌다가 좁아졌다가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가 저마다의 색이 칠해져 있었다. 나는 빡빡머리 남대문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 신나게 축구를 하는 동안 내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그 날 몸이 흠뻑 젖어 축구할 때 만큼은 정말이지 시간만이 문제였다.
내가 도저히 바꿀 수 없는 것을 마주할 때 리차드 세라의 시간의 문제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리차드 세라의 시간의 문제는 타인을 탓하거나 나를 자책하기보다 시간을 문제라고 정의하고 주도적으로 시간을 경영하면 바꿀 수 없는 문제가 바꿀 수 있는 문제로 잘게 쪼개져 평온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나는 내개 주어진 길을 걸으며 시간을 진정으로 잘 쓰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