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과학관, 전기회로 체험물 개선
내가 지난 2023년 초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으로 부임했을 때, '아이디어 제작소'라 불리는 전시물 유지보수 공간을 먼저 찾았다. 원래 일했던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전시물 관리를 맡았던 터라 보다 작은 규모의 과학관에 와서 걱정했던 것이 전시물들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세 그것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이곳에서 전시물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분이 개선하고 있던 체험물을 보고 나서였다.
해당 체험물은 관람객들이 전기회로를 여러 형태로 바꾸어 보면서 흐르는 전류량이나 불이 들어오는 전구를 관찰하도록 설계되었다. 특히, 회로연결에 필요한 전기단자를 금속과 자석을 사용하여 관람객들이 쉽게 붙였다 뗄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체험물을 만든 회사에서 간과한 것이 있으니 바로 전선과 단자역할을 하는 금속부품을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붉은색 단자덮개를 벗기니 나타난 것은 위의 사진과 같았다. 납땜을 통해 전선다발과 금속단자를 이어놓은 것이었다. 언뜻 보면 좋은 방식 같지만 전시보수 담당자분의 이야기를 들으면 실상 그렇지 않았다. 관람객들은 전기회로 체험물을 다룰 때 단자 끝부분을 손으로 곱게 잡고 체험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보통 전선을 잡아 이리저리 당기기 일쑤이기 때문에 평평한 금속면에 전선을 납땜으로 붙여놓은 경우, 쉽게 납땜부위가 떨어지며 체험물 고장으로 이어졌다.
문제를 알게 된 이후, 이곳 '아이디어 제작소'에서 일하는 직원분의 '아이디어'와 '실행'이 돋보였다.
위 그림은 직원분이 문제의 전선-단자 연결방식을 2차례에 걸쳐 개선한 개념도이다. (1)은 앞서 사진에 나온 것과 같이 금속조각과 전선을 납땜으로 단순히 붙여놓았다. 이후 1차 개선 때에는 금속조각의 측면과 전선다발이 만나게 한 후, 이를 가는 렌치볼트로 밀어주어 전선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보았다. 금속조각은 굵은 볼트로 바꾸어 단자덮개에 고정시키고, 가는 렌치볼트도 단자덮개 옆에 뚫린 구멍을 통해 삽입되어 전선이 굵은 볼트 옆면에 밀착되도록 밀어주었기 때문에 괜찮은 해결방식 같았다.(2) 하지만, 이것도 하루에 수백 번 이상 전선이 당겨지다 보니 충분한 고정력을 주지 못하고 전선이 가는 볼트에서 미끄러져 단자덮개 밖으로 나오는 일이 생겼다.
결국 마지막 개선 아이디어가 해결책이 되었다. 이번에는 전선다발을 고리모양으로 만들어 끝을 꼬은 후, 가늘고 긴 볼트로 고리를 관통시킴으로써 전선이 당겨질 때 버티는 힘이 충분히 생기도록 하였다. 가는 볼트 자체는 전선고리 전후에 커버를 통과하게 하여 지지되도록 하였고, 굵은 볼트 또한 커버에 삽입되어 전선다발과 접촉되도록 하였다.(3) 이제 관람객들이 전선을 아무리 당겨도 전선다발이 끊어지지 않는 한 전선과 굵은 볼트 간의 접촉이 끊어지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아래는 1차 및 2차 개선한 전선-단자 연결부 사진이다.
글을 읽으며 별거 아닌 것 같은 체험물 부품의 개선에 관한 이야기를 무얼 이리 길게 하나 싶은 독자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전시물이 고장 나면 만든 회사에 단순히 전화해서 보수를 요청하거나 아니면 초기의 방식대로 납땜을 다시 해버리면 쉬웠을 것이다. 우리가 문명사회 속 온갖 사물들 속에 살면서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대충 감내하고 살 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곳의 담당자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체험물속 전선과 단자가 왜 자주 떨어져 나가는지를 고민하고, 해결하려 재차 시도하였다.
예상대로 이후 2년 간 알고 지낸 '아이디어 제작소' 담당자분은 서울시립과학관 전시품 하나하나를 유지가 아닌 개선 관점에서 바라보고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과학관에서 새로운 볼거리를 마구 만들어 내는 것도 좋지만 하나의 체험물이 관람객들에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개선'해 나가는 과정이 더욱 소중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