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아파트는 나를 키웠다

한국 아파트 생태계를 삶과 법으로 해석하는 변호사의 기록

by 유희주

나는 아파트에서 태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아파트를 향해 평생을 걸어왔다.


주민등록 초본이 네 장이라는 것은, 어린 시절을 통틀어 ‘집’이라는 것이 한 번도 안정적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부모님은 1990년대 신도시 아파트 대신 신도시 상가를 매수했고, 그 선택은 우리 가족의 시간을 조용히 흔들었다. 나는 신도시 빌라에서 시작해, 아파트 전세를 전전하며, 대학 시절에는 빨간 버스와 지하철로 편도 1시간 40분을 흔들리며 살았다.


아파트는 늘 멀리 있었다. 내가 손을 뻗으면 한 걸음 더 멀어지는, 그런 구조의 세계. 그러다 어른이 되었고, 변호사가 되었고,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다시 ‘아파트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2020년, 저금리에 취해 신축 오피스텔을 가계약했고, 2022년 금리가 7%까지 올랐을 때 나는 잔금이라는 지옥을 통과하며 깨달았다. 이별의 아픔보다 무서운 건 ‘잔금’이고, 세상에서 가장 사람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도 ‘잔금’이다.


은행 다섯 곳을 다니며 대출을 쥐어짜고, 발품을 팔아 용산의 아파트를 신혼집으로 삼았지만, 남편의 퇴사선언과 함께 우리는 다시 현실을 마주했다. 연봉은 은행 앱에서 스쳐 지나갔고, 매달 관리비와 이자는 내가 감당해야 할 세계의 크기를 알려주었다. 앞으로 30년간 대출이자를 갚아야 한다는 공포는 매일 아침 나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러던 중 나는 엄마가 되었다. 대출은 출산을 기다려주지 않았고, 뱃속 아이는 예정대로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 모든 과정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아파트 때문에 울었고, 아파트 때문에 버텼고, 아파트 때문에 아파트 때문에 다시 일어섰다.


이 글은 아파트에 살고 싶었던 아이가, 아파트 때문에 단단해진 어른이 되어, 2025년 현재의 대한민국 아파트 생태계를 읽는 사람이 되기까지의 기록이다.


그리고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아파트는 집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 감정, 희망, 그리고 불안이 그대로 투영된 ‘한 사회의 미니어처’라고. 이 글은 그 미니어처를 처음으로 해석해 보려는 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