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파트에서 태어나지 못했다. 내 세계는 오래된 빌라들이 가깝게 서로의 벽을 공유하던 좁은 골목이었다. 연신내 초등학교 앞, 시간이 조금씩 비껴가는 듯한 공간. 그 골목에는 지선이네와 찬성이네, 그리고 미진이네와 우리 집이 같이 살던 곳. 아이들의 이름이 집의 주소가 되는 공간이었다.
여름이면 과일트럭이 골목 입구에 섰다. 사람들은 수박을 깨서 반으로 갈라놓고, 라디오를 가운데 두고 바람을 기다렸다. 에어컨 하나 없는 집이었지만 누구도 덥다고 크게 말한 적은 없었다. 골목길에 펴놓은 돗자리도 우리 집의 일부였다.
나는 조용하고, 수줍은 아이였지만 문만 열면 누군가가 있었다. 언니가 있었고, 오빠가 있었고, 친구가 있었다. 그 골목은 내 방이자 놀이터였고, 나의 세계를 지탱하는 울타리였다. 그래서 좁은 빌라 2층 집도 한 번도 답답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미진이네 집에서만은 조금 다른 공기가 흘렀다. 미진이에게는 자기 방이 있었고, 멜론이 간식으로 놓였다. 한쪽 벽에는 내가 갖지 못한 인형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조용한 차이들이 어린 나에게 처음으로 낯선 감정을 남겼다. 그 방의 풍경이 어린 내게 처음으로 ‘집에도 계급이 있구나’라는 감정을 남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신도시로 이사하게 되었다. 짐을 싼다는 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라는 걸 어린 나도 이미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내 골목, 내 친구들, 내 세상을 떠나는 일. 마치 다른 행성으로 이동하는 것 같았다.
신도시에 도착하던 날, 나는 골목의 시간과 전혀 다른 풍경 앞에서 멈췄다. 네모반듯한 길. 바둑판처럼 나뉜 구역들. 동일한 간격으로 서 있는 아파트들. 깨끗하게 구획된 놀이터와 주차장. 정돈된 세계 그리고 구분된 세계였다.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자 더 낯선 장면이 펼쳐졌다.
“너 몇 단지 살아?”
자기소개가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은 물었다.
“나는 롯데아파트”
“나는 건영아파트야!”
그 말들이 마치 비밀 암호처럼 오가는 순간, 나는 잠시 멈칫했다. 나는 골목에서 자란 아이였고, 내 세계에는 그 숫자도, 암호도 없었다.
그 순간 처음으로, 나는 내 세계가 다른 세계의 바깥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도시는‘아파트 이름’이 정체성이 되는 곳이었다. 나는 골목의 아이에서 신도시의 아이가 되어야 했다.
신도시에 정착하자 삶의 리듬도 달라졌다. 학원 셔틀은 아파트 단지를 기준으로 돌았고, 친구들을 만나려면 “몇 단지 놀이터에서 볼까?”라고 먼저 물어야 했다. 마트도 학교도 떡볶이집도 모두 아파트 단지 구조 안에 있었다. 그렇게 나는 골목의 리듬을 잊고 아파트의 리듬 속으로 들어갔다.
골목에서 아파트로 이동하면서, 내 안의 어떤 감정도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경험은 훗날 내가 아파트를 단순히 ‘집’이 아니라 ‘언어’로 읽게 만든 첫 번째 수업이었다.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과 계절과 계급이 아주 조용히 들어가 앉는 그릇 같은 것이라는 걸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조금씩 배우고 있었다.
나는 아파트에서 태어나지 못했지만 아파트를 향해 끊임없이 이동하며 자랐고,
결국 아파트라는 세계를 직업으로, 삶으로, 언어로 해석하는 변호사가 되었다.
어쩌면 내 서사의 첫 장은 그 골목에서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