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빨간버스에서 어른이 되었다

by 유희주

빠른년생이었던 나는 열아홉에 대학에 들어갔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이제는 진짜 놀아보자”는 일념으로, 그동안 미뤄둔 모든 ‘하고 싶은 것들’을 한꺼번에 해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내 청춘에는 늘 두가지 제약이 따라붙었다. 아직 미성년이라는 사실, 그리고 집이 일산이라는 점이었다.


대부분 재미있는 일들은 밤 열 시 이후에 시작된다. 하지만 나는 늘 그 전에 자리를 정리해야 했다.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다음 날이면 늘 내가 모르는 이야기들—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갑자기 사귀고 헤어지고—그런 에피소드들이 쏟아졌고, 나는 언제나 그 한가운데에서 빠져 있었다. 늘 반박자의 청춘을 사는 기분이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은 자취방이 있거나, 당시 유행하던 ‘원룸텔’ 같은 둥지가 있어서 열 시 이후의 청춘의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일산행 3호선 막차를 타기 위해 뛰어야 했다. 그 막차를 타기 위해 저녁약속도, 술자리도, 심지어 사랑도 반박자 빠르게 접어야 했다.


택시비를 감당하기엔 용돈이 빠듯했고, 다음 날 아침 수업에 지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물리적 부담도 컸다. 결국 나는 하루에 두 번씩, 강의실과 집 사이의 긴 여정을 묵묵히 오갔다. 학교 바로 앞에 자취방이 있거나, 서울에서 통학하는 친구들이 항상 부러웠다.


나의 진짜 하루는 남들과는 달리 21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이 광교 청약에 당첨되었다. 지금은 사람들이 눈을 반짝이는 동네지만, 그때만 해도 수원 끝자락 어딘가의 허허벌판이었다. 신분당선도 없던 시절, 나의 교통수단은 지하철에서 빨간버스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을지로 3가 대신 강남역 자라 매장 앞에서 막차 시간을 초조하게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신도시는 완성되기까지 최소 10년이 걸린다. 그 10년 동안 우리 집 옆에는 또 다른 아파트가 분양되고, 빨간버스 정류장에는 노선이 하나씩 늘어났다. 그렇게 10년을 견디다 보면 어느새 도시의 외형을 갖추게 되는 것이 신도시의 시스템이었다.


강남역 자라 매장 앞에서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며, 배터리가 5%남은 휴대폰을 부여잡고 마음 졸이던 밤들이 있었다.

서서 가면 1시간 30분.

앉아서 가도 1시간 30분.

시간은 같았지만 체력 소진은 천지 차이였다. 그래서 나는 매일 “오늘은 앉아서 갔으면 좋겠다”라고 빌었다. 나의 ‘운수 좋은 날’은 빈자리에 달려 있었다.


대학교 졸업 후 광화문 정부청사에서 인턴을 하던 시절에도, 로스쿨 준비 스터디를 하던 때에도, 빨간버스는 내 하루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하루 세 시간. 내가 깨어 있는 시간의 1/4이 버스 안에서 흘러갔다. 배고프면 야금야금 빵을 뜯어 먹고, 채용 공고를 읽고, 시험 대비 노트를 펼쳐보고, 가끔은 울고, 진짜로 잠들기도 하면서.


드라마에서는 남자친구가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장면이 흔하다. 하지만 내 연애는 늘 강남역 빨간버스 정류장 앞 혹은 지하철역 개찰구에서 끝이 났다. 일산이나 광교까지 데려다주기에는 너무 멀었고, 그들 또한 돌아올 마지막 교통수단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빨간버스를 기다리는 긴 줄의 개미 군단 한가운데서, 몸을 한껏 웅크리고 발을 동동거리던 청춘의 내가 있다. 30분 넘게 오지 않는 5006번 버스를 기다리던 겨울이면 핫팩과 귀도리, 여름이면 작은 선풍기와 보조배터리가 필수였다. 내 청춘에는 작은 크로스백에 높은 힐보다는 큰 가방과 편한 신발이 필요했다.

그렇게 서서 기다리고, 앉아서 버티고, 다시 일어나 걸어가며, 나는 어른이 되었다. 빨간버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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