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거실에서는 시누이 가족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안방에서는 어머님, 동서 그리고 나, 이렇게 세명이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어머님은 식구들과 고스톱 치는 이 시간을 좋아하신다. 거실 분위기가 조금씩 이상하게 흘러가더니 다투는 소리가 났다. 대학생인 시누이 아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화투판은 돌아가고 있었지만 좌불안석이었다.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은 이미 거실에 가 있었다.
"화투 치는 사람 어데 갔나?"
평온한 어머님 말씀에 손에 들고 있던 화투패와 바닥에 깔린 패들을 얼른 스캔했다. 짝 맞는 패를 하나 내리치고 뒤집었다. 나의 시선은 여전히 거실에 있었다.
"야야. 니 쌌다."
경쾌한 어머님 목소리에 화투판을 쳐다보니, 비 패 세장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어머님 표정이 밝아 보였다. 들고 계신 비광을 내가 싼 비에 시원하게 내리치셨다. 동서와 나에게 피를 한 장씩 달라고 하셨다. 한치의 흔들림도, 오차도 없는 정확함이셨다. 그 판은 어머님이 이기셨다.
"어머님, 그만하고 거실에 나가 볼까요?" 엉덩이를 반쯤 일으키며 말했다. 어머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앉아라. 패 돌린다."
그리고 무심하게 툭 던지셨던 한마디.
"내는 밖에 일 걱정 안 한다. 자들 식구들끼리 잘 해결할 기다. 너거들 집 일은 너거들이 알아서 잘 하믄 되고. 아무리 내 자식이라도 일일이 참견하면 안 된다."
결혼한 자식에게 부모가 지켜야 할 선을 명확하게 긋는 어머님 어록이다. 아들이 있는 나에게는 강력한 메시지로 와닿았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어머님은 아들 집이든 딸 집이든, 자식들 집에서 일어나는 일에 간섭을 안 하신다. 이래라저래라 할 필요가 없다신다. 지혜롭게, 열심히 잘 살라는 말씀만 굵직하게 하신다. 울 시엄니가 자식을 사랑하시는 방식이다. 명쾌하다.
한 가정을 꾸려서 살고 있는 자식들에게 지나친 간섭을 하는 부모님들을 간혹 보곤 한다. 친구의 시어머니는 대학생이 된 손녀 옷차림까지 참견하신다고 한다. 친구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방향을 제시하셔야만 안심을 하신단다.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님 마음이겠지만, 지나침은 때때로 친구 가정에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나 역시 자식 걱정을 하는 부모다. 내 걱정이 아이에 대한 그저 습관적인 걱정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말과 간섭으로 하는 걱정은 그만두고, 독립적으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믿고 지지해주어야겠다.
거실에서 일어난 작은 해프닝. 어머님 말씀대로 시누이 식구끼리 잘 해결했다. 걱정 안 하신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어머님 속이 얼마나 타들어 갔을지... 짐작이 된다. 자식 걱정을 속으로 삼키시면서 기다려주셨던 울 시엄니 스웩!
오졌다.
* 코로나로 인한 사적 모임이 수도권 10명까지 허용됐던 2021년 11월 말. 오랜만에 가족모임을 가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