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신나는 날도 있어
회사와 집을 왕복하는 사이 시간이 덧없이 흐른다. 계절은 미처 흠뻑 느껴보기도 전에 끝나버리고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인 책상. 그 위에 놓인 달력 속 숫자들만 줄줄이 바뀌지. 하염없이 모니터만 바라보다 차곡차곡 쌓여버린 내 나이가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낯설어진다. 과연 내 알맹이도 그 숫자에 걸맞은 어른으로 무르익고 있는 걸까. 오늘 날짜도 모르고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왜 이뤄놓은 건 없이 허망함만 쌓이는지. 어차피 매년 똑같이 돌아오는 모든 날들이 식상해졌다. 생일이고 뭐고 다 부질없어. 그날이 휴일이냐 근무일이냐 그것만 중요해. 그저 해가 뜨면 출근하고 해가 지면 퇴근하는 쳇바퀴 속 직장인 라이프. 회사가 내 인생 전부가 되어버린 것 같아 가끔씩 불안해진다.
이렇게 고일대로 고여버린 나도 1년의 흐름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바로 나의 오감에 새겨진 회사의 업무 루틴. 수많은 규정 때문에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년 비슷한 일정으로 굴러가는 공공기관 직원의 숙명이 아닐까. 사람들의 옷차림만으로도 곧 찾아올 업무를 예언해 낸다. 차라리 제철음식 예찬론자들이 부럽다니까. 찬 바람이 불어오는 걸 보니 곧 대하 한번 먹어야겠네. 그런 거는 남들이 듣기에도 재밌고 본인도 좋잖아. 나는 두툼한 외투를 꺼내면서 '곧 있으면 성과보고서 시즌이네.' 이런 생각이나 한다고. 으으. 이런 내가 나도 싫어.
1월은 시무식, 2월엔 상반기 승진과 정기전보, 3월은 올해 벌써 뭘 했다고 1분기 결산, 그러다 보면 시간이 쭉쭉 흐른다. 사업 설명회, 작년도 성과 발표. 와! 여름휴가다! 하반기 승진과 정기전보. 지긋지긋한 을지훈련. 어느덧 내년도 사업계획안을 짜서 예산심의를 올리고 성과목표도 세우고 나니까 낙엽이 지고. 허? 벌써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올해도 안녕. 그래도 항상 이런 일만 찾아오는 건 아니다. 그러면 아무리 나라도 여태 못 다녔지.
"과장님 다음주가 초복이래요.”
"아... 그래요오.”
멈칫! 응? 잠깐. 지금 뭐라고? 복날이라고?
그 말에 묵직하던 눈꺼풀이 번쩍 뜨인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대리님의 모니터. 역시 과연 그랬군.
다음 주 구내식당 메뉴판.
*[초복 특식] 누룽지 반계탕 (100인분 한정)*
두둥! 멍하던 머리에 도파민이 싹 훑고 지나간다. 대리님과 은밀하게 교환하는 눈빛.
“반계탕 고고?"
“콜!”
미쳤다. 선착순 100명 못 참지.
“근데 너무 적은 거 아냐? 여기 직원이 몇명인데.”
"에이 그래서 재밌는 거죠.”
“그건 맞아.”
낄낄. 깔깔. 신명난 대화에 조용했던 부서가 술렁인다.
“뭔데 그래?”
사실 별 거 아니다. 요새 누가 복날 같은 걸 챙겨. 그렇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말지. 하지만 여긴 회사다. 매일매일 뻔하디 뻔한 직장생활. 게다가 우리 같은 공공기관은 내 10년 뒤 미래까지 예정되어 있다고. 고맙지만 안 고마운 애증의 회사. 이런 소소한 이벤트가 너무 반가워.
“이거이거 스피드가 생명인데 무슨 수로 일찍 나가지?”
직원들이 의자까지 돌려가며 우리 쪽을 바라본다.
"뭔데뭔데. 너네 또 나 빼고 재밌는 거 보지?”
갑작스러운 챌린지에 눈을 반짝이는 직원들. 반계탕 크루에 새로운 멤버들이 합류했다. 부서는 21층. 점심시간에 살짝만 늦어도 엘리베이터 전쟁에서 패배한다.
“어허이. 이거 쉽지 않네. 쉽지 않아.”
응? 어느 틈에 오신거지? 걸걸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팀장님들까지 슬그머니 합류하셨다. 전략회의에 뺨치는 진지함. 완벽한 작전만이 살 길. 그런데 갑자기 팀장님이 씨익 미소를 지으신다. 뭔데요! 궁금해.
“부장님. 애들이 다음 주에 선착순 100명 반계탕 먹으러 가자는데요?”
파티션 속에서 이 모든 대화를 듣고 계셨을 우리 부서 최고 권력자 부장님.
"에헴. 반계탕? 좋지.”
오예! 부장님도 반계탕 특공대 가입 완료! 캬아! 역시 팀장님! 쓴배님은 다르네 달라.
자 멤버들 다 집합! 반드시 전원 누룽지 반계탕을 먹는다! 먹는다! 우우! 우리는 하나! 워크숍을 뭐 하러 가.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단합력이 불타오른다.
결전의 날. 구두러버 대리님이 운동화를 신고 왔다. 어이없어 진짜. 계단이라도 뛰어내려 갈 거냐고. 웃겨. 요새는 이 대리님 덕분에 회사 다닐 맛이 난다.
그런데 11시 부장님의 자리로 전화가 울린다. 설마! 뻘쭘하게 일어난 부장님.
“나 이사님 방에 좀 다녀올게.”
하아. 실패네. 눈치 없는 이사 같으니. 추욱. 반계탕 특공대들의 기운이 힘없이 빠져나간다. 그런데 급하게 정장자켓과 구두를 챙기시던 부장님이 사무실을 떠나기 직전 우리를 돌아보신다.
“너네끼리 먼저 가서 먹고 있어.”
찡긋! 꺄아! 부장님 뒤로 후광이 보여요. 멋져!
“일반식은 닭볶음탕이래요.”
“어어. 좋네. 그거 먹으면 되겠다.”
실망 가득한 목소리. 웅얼웅얼. 매가리 없는 답변이 메아리처럼 퍼져나간다. 그렇지. 가란다고 어떻게 가냐. 코로나 이후 유동적으로 운영되는 점심시간. 첫 타임인 11시 30분에 뛰쳐나가야 그나마 승산이 있는데 임원실 이동시간만 고려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일반식이라도 먹어야지 뭐. 에효효 구내식당의 점심메뉴는 2가지로 운영된다. 4천원짜리 일반식과 5천원인 특식. 아주 고마운 가격이지. 밖에서는 괜찮은 백반집만 가도 8천원이 넘는데 말이야. 거기에 직장인이 점심시간에 밥만 먹나. 커피까지 한잔씩 마셔주면 한 끼에 만원이 훌쩍 넘은지 오래다. 덕분에 코로나 이후로 한산했던 직원식당이 다시 북적인다.
내가 주로 먹는 일반식은 무려 4가지 반찬에 국이 기본 제공되고 셀프존에 가면 샐러드나 후식음료, 현미밥이 함께 나온다. 평소에 먹기 힘든 나물반찬도 자주 나오고 내 입맛에는 음식맛도 괜찮아. 하긴 엄마밥이 없으니 남이 차려주는 밥은 다 맛있어. 심지어 그 귀찮은 설거지나 쓰레기 정리도 안 해도 되잖아. 나 같은 직원들이 제법 있는지 일반식으로만 운영되는 조식과 석식 때도 식당이 제법 붐빈다. 아침에는 무려 계란후라이를 바로바로 부쳐준다니까! 배달음식이 지겹기도 하고 메뉴고민마저 귀찮은 날에는 돌고 돌아 구내식당이 최고의 선택이다.
11시 29분이다. 후우. 현실을 받아들여야지. 주변 식당이 모두 붐비는 점심시간. 이 인원이 다 같이 움직이려면 예약 없이는 힘들다. 결국 직원식당 뿐이야. 우리 그거 먹고 디저트는 맛있는 거 먹자. 그런데 그때.
“다 일어나!! 나가자!!!!”
어우 깜짝아! 반계탕 특공대의 대장. 옆팀 팀장님이 갑자기 후다닥 달려 나가신다. 엥? 혼자 어디 가세요? 영문을 모른 채 허겁지겁 모니터를 끄고 팀장님을 따라나선다. 같이 가요 팀장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서야 멈춰 선 팀장님. 헐레벌떡 달려 나온 탓에 평소에는 허옇게 떠있던 직원들의 얼굴에 혈색이 돈다.
“팀장님…저희끼리 가요?”
그 순간 땡! 우리 앞에 멈춰 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데 익숙한 사람이 다급하게 손을 흔든다.
“어? 부장님이다! 부장님!!”
“얘들아!!!!! 타!!!!!!!!!!”
“와!!!! 타자!!!!!!"
항상 돌부처처럼 차분하신 부장님도 신이 나서 소리치신다.
“와! 다 탔다!! 와아아!!!!”
환호하던 그때 그제야 구석에 서있는 이사님이 보인다. 어머나! 아이코 안녕하세요. 인기척 좀 내시지. 민망해라. 허허. 다행히 이사님도 이 상황이 즐거워 보인다.
“회사 재밌게 다니네.”
네. 헤헤. 오늘은 좀 그래요. 이사님의 썰이 시작된다.
"아니 너네 부장이 내 방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자기가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30분까지 꼭 부서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야.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니까? 무서워서 내가 할 말이 더 있었는데 25분에 끊었어.”
평소 절대 그럴 분이 아니라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머쓱해하는 부장님께 박수를 보낸다. 와아아! 엘리베이터에서는 정숙이 기본예의지만 지금은 예외야. 어차피 우리 편 밖에 없다고! 부장님은 임원실을 나오자마자 팀장님께 전화를 하셨고 두 분의 현란한 진두지휘 덕분에 우리는 놓치지 않고 이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다. 이 상황에 어떻게 안 신나! 너무 재밌잖아!! 하지만 안심하기는 일러. 아직 우리 식판 받은 거 아니잖아.
3층에 도착하자마자 운동화 대리님이 이사님께 인사도 안 하고 달려 나간다. 돌격!!!! 가자!!!! 우리 뿐만 아니라 엘리베이터에서 쏟아져 나온 결전의 직원들이 우다다다 달린다. 안돼!!! 중년의 부장님도 파릇파릇한 막내도 모두 헐레벌떡 사원증을 꺼내 게이트를 통과한다. 달려달려!! 저 앞에 입구부터 북적이는 구내식당이 보인다. 새로운 무리들이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영양사님이 소리치신다.
"반계탕 드실 분들 이쪽에 한 줄로 줄 서시고 손 들어주세요!”
“저요!!! 저희요!!!!!”
그렇게 쥐어지는 종이티켓. 86번.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다 받은 건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과장님이 94번을 받았다.
“와아!! 성공이다!!!”
운동화 대리님은 무려 72번. 본인이 미리 줄을 서놓으려고 했는데 프로 영양사님께 그런 꼼수가 통할 리가 없지. 혼자 결승선에 서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단다. 부장님이 본인 아들 운동회에서도 이 정도로 열심히 뛰지는 않았다며 숨을 고르신다. 저도요. 전 요즘 횡단보도 깜박이면 바로 포기해요. 뒤늦게 도착한 지각쟁이들의 푸념에 영양사님이 커다란 뚝배기가 100개뿐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웃으신다.
“닭볶음탕도 다리 많이 넣고 끓여서 맛있어요.”
그 말에 다리라도 먹어야겠다며 우르르르 사람들이 몰려간다. 에헴! 그러게 일찍 일찍 다녀야지! 부러워하는 지인들의 시선을 마음껏 즐기는 우리. 하하하하하하. 그러고보니 정말 오랜만이다. 회사 사람들이랑 진심으로 편하게 웃는 거.
당당하게 번호표와 식권을 내고 쟁반을 받아 든다. 나란히 나란히. 특식줄에 서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설렘으로 가득하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와. 과연 100개나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큼직한 뚝배기가 얹어진다. 흐뭇한 마음만큼 묵직한 무게. 네 반쪽은 어디 갔니. 제법 토실한 닭 반마리가 반신욕을 즐기고 있다. 생각보다 사이즈가 괜찮네. 튼실한 저 다리 한쪽이면 점심식사로 충분하지. 그 옆으로 보이는 네모난 누룽지와 대추, 황기. 있을 건 다 있네. 곁들이로 나온 오이고추와 쌈장, 굵은소금, 후추, 깍두기도 순서대로 담는다. 자잘한 시판 깍두기가 아쉽지만 5천원 반계탕 한상이 이 정도면 완전 땡큐지. 추가 밥 코너는 잠시 고민하다 담지 않았다. 다 먹고 부족하면 그때 더 먹지 뭐.
바깥 풍경이 훤히 보이는 양지바른 자리.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반계탕을 들고 있는 부서사람들이 한데 모여 앉는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가 웬일로 이런 명당이 비어있네. 완벽한 작전성공에 기분이 매우 흡족한데 안 반가운 깐족이가 내 옆으로 온다. 모든 부서에는 하나 이상의 진상이 있다. 일명 또라이 보존의 법칙. 내가 속한 그룹에 또라이가 없으면 내가 바로 또라이다. 다행히 이 부서에는 자타공인 또라이가 하나 있다. 평소에는 말도 섞기 싫지만 지금은 승리의 기쁨 때문인지 참아줄 만하네. '먹자!' 부장님의 선언으로 식사 시작! 맛있게 드세요!
얼마나 푸욱 끓였는지 젓가락을 슬쩍 대자마자 다리뼈가 쏙 빠진다. 덕분에 두툼한 다리살 하나를 건져 올렸다. 소금은 살짝만 찍어서 한입에 와앙. 작은 닭이라 그런지 질기지 않고 쫄깃쫄깃해. 서로 말은 없지만 동그래진 눈들에 만족스러움이 가득 담겨있다. 좋다. 어디 한번 국물도 호록. 크으. 아무래도 깊은 맛이 아니지만 충분히 우러나온 닭육수의 감칠맛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다른 육수들은 묵직한 느낌이라 한여름에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데 닭육수는 같은 고기여도 참 깔끔하단 말이야. 점심으로 먹기에 딱 좋은 든든함이다. 뛰어온 보람이 있네. 동실동실 국물 속을 떠다니던 마늘덩이들이 씹힌다. 덕분에 느끼하지 않은 것이 먹으면 먹을수록 계속 땡긴다.
“누룽지가 너무 적네. 이거 얼마나 한다고”
깐족이가 투덜거린다. 또또또. 또 초를 치는구나. 아니 근데 혼잣말이라기에는 데시벨이 너무 큰 거 아니야?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그렇지 내가 엄연히 선배인데 이 인간은 내 앞에서 맨날 저렇게 말을 반토막으로 하더라? 남자들한테는 깍듯하면서 여자 선배는 만만하다 이건가? 재수없어. 아 됐어. 페이스에 휘말리지마. 이너피이스으. 얼른 누룽지나 한술 뜨자고. 불어난 누룽지가 여전히 쫀득쫀득하다. 우음. 꼬소해. 손이 가면 그만큼 티가 난다더니 밥을 굽는 누군가의 노고가 느껴지는 눅진한 행복이다.
젓가락으로 요리조리 남은 살코기를 마저 발라 먹는다. 퍽퍽한 부위를 먹을 때는 깍두기도 하나씩. 크으. 아까 구박해서 미안해 깍두기야. 너 없었으면 어쩔 뻔했니. 살짝 쉬어서 새큼해진 깍두기가 훌륭하게 잘 어울린다. 정신없이 먹다 보니 어느새 뼈 밖에 안 남았네.
마지막 살코기를 해치우기 전 오이고추에 쌈장을 듬뿍 찍어 한입 베어문다. 와그작!
“과장님. 지금 ASMR 찍으시는 줄”
대리님의 말에 빵 터졌다. 아 먹는데 웃기지마!
겉모습으로 맵기를 예상할 수 없는 풋고추가 고깃집을 지배하던 시절에는 잘못 걸려서 혼쭐날까 봐 함부로 집어먹지 못했는데. 어느 날 나타난 오이고추는 대혁명이었다. 고추보다는 피망에 가까운 적당히 맵싹한 맛에 이 아삭한 식감이 시원시원하잖아! 무더운 여름날 만사가 귀찮을 때면 이 오이고추를 쌈장과 참기름에 무쳐먹는다. 뚝딱 만들어지는 동안 참기름 냄새에 죽었던 입맛이 돌아오고 찬 물에 만 밥이랑 먹어주면 더위가 싹 가시거든.
잘 먹는 직원들은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먹고 있다. 순식간에 닭곰탕으로 변신. 난 점심은 가볍게 먹는 게 좋아. 요즘은 좀만 과하게 먹어도 오후 내내 정신을 못 차리거든. 더부룩한 기분도 별로고. 식판을 반납하고 나가는 길에 보이는 후식음료 항아리. 여름스러운 매실차와 얼음이 가득 들어있다. 냄새만 맡아도 예상가는 달짝지근한 맛. 평소 같으면 지나칠 텐데 복날에는 한번 먹어줘야 할 것 같단 말이지. 차그락차그락. 얼음과 함께 한국자를 듬뿍 퍼 담아 부서사람들의 손에 들린 컵에 나눠준다. 그리고 나도 한잔. 으으. 시원하다. 여름나기 준비 끝.
아 잘 먹었다. 오잉? 시계를 보니 돌아갈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간다. 모두들 어렵게 따낸 특식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지. 사무실에 돌아가는데 여전히 마음이 즐겁다. 팀장님은 콧노래까지 부르시네. 평소라면 돌아가기 싫어서 목에 건 사원증에 질질 끌려가다시피 들어가는데. 든든하게 먹어서 그런가 직원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모두의 발걸음이 사뿐사뿐.
“중복에는 뭐가 나올까?”
나한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알 수 없는 깐족이의 말도 거슬리지가 않는다. 이래서 다들 몸보신을 챙기는 구만.
안타깝지만 중복에도 누룽지 반계탕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기회를 양보하기로 했다. 쳇. 시시해. 그런데 몇 달 뒤 대리님이 또 조용히 나를 부른다. 왜요? 창립기념일에 노조에서 무료커피 이벤트를 준비한다는 소식이다. 이런 건 대체 어디서 듣고 오는 거야? 언제나 그렇듯 냠냠 소식에 누구보다 진지한 우리. 맛있는 건 분명 먼저 떨어질 거야. 미리 메뉴를 정해놓았다가 오픈런을 하기로 했다.
“우리가 명품 오픈런은 못 해도 이런 건 할 수 있잖아요. 히힛”
이런 잔망덩어리. 대리님의 말에 안 웃을 수가 없다. 아이고. 이 사람아. 또다시 스멀스멀 흥이 오른다. 재밌겠다. 그럼 몇 시까지 출근해야 하지? 뭐야 뭔데? 너네 둘이 또 무슨 얘기하는 거야? 부서가 또 술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