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배식을 못 하는 도마뱀 집사

나는 더러워지는 게 싫어.

by 연연하는 하루하루

나는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
정확히 말하면 육아를 하기 전까지는 매우 쿨하고 인간성이 좋은 사람인 줄 알았다.

여러 모임의 장을 맡으며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폭넓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직업 또한 학군지의 국어강사로 자부심이 있었기에 '인간 나'로서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임신으로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이한 '엄마 나'는 너무나 부족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나의 이런 모난 성격은 '파충류 엄마' 일 때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인간으로서 미성숙했던 한 사람이 아이와 파충류를 키우며 조금 더 나은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인 나의 고백을 조금씩 풀어보려 한다.




아이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한 참을 놀다가 아이 친구가 말했다.

"너희 집엔 규칙이 왜 이렇게 많아?"

한 번도 규칙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나의 당연한 생활 습관은 어쩌면 아이에겐 너무 많은 규칙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나는 정리정돈을 잘하진 않지만 어지러운 집안을 좋아하지 않아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매번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나의 18번은 어린이집에서 놀이가 끝난 후 정리시간에 부른다는 "모두~~ 제~자리~"

간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돌아다니면서 먹으면 절대로 안되고 앉은자리에서 먹어야 한다.

지금이야 습관처럼 익숙해진 상황이라 아이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지만, 한 참 호기심이 많았던 18개월~24개월 때는 아이는 돌아다니면서 간식을 먹고 나는 쫓아다니며 간식부스러기를 주우며 잔소리를 해댔다.

그래서 나는 육아가 너무 힘들었다. 하루 종일 치우고 또 치워도 매번 어지럽히는 아이와 나는 정말 창과 방패 같았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정말 아이케어에 급급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는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어느 정도의 여유를 찾게 되니 나의 결점의 과거들이 하나 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못난 인간이라고 느끼게 된 건 도마뱀을 키우면 서다. 사람 엄마와 도마뱀 엄마의 육아가 크로스 될 때 나는 나 자신의 결점을 더 많이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일화로 나의 고백을 시작하자면, 도마뱀은 어느 정도 크면 자율 배식을 하는데 나는 도마뱀이 먹이를 밟고 온 사육장을 돌아다닐 걱정에 두 마리의 도마뱀에게 직접 먹이를 먹여 주고 있다.

도마뱀의 먹이는 다양하게 있는데 우리 크림이와 커피는 귀뚜라미와 사료를 먹는다. 귀뚜라미는 보양식 개념이라 정말 어쩌다 한 번씩 주고 주로 사료를 주고 있는데 사료 배식은 사료 가루를 물에 게워서 아이 이유식처럼 되직하게 만들어서 배급을 하는데 그 되직한 사료를 밟은 체 온 사육장을 돌아다니는 게 싫은 나는 자율 배식이 싫어 직접 떠 먹여주고 있다.

만약, 2년 정도 자란 도마뱀에게 사료를 직접 떠 먹여준다면 배급 시간은 대략 10분 정도가 걸린다. 왜냐하면 도마뱀은 사료를 먹을 때 "할짝할짝" 천천히 먹기 때문이다.

두 마리 도마뱀에게 먹이를 주고 나면 20분 남짓이 걸리기 때문에 어찌 보면 짧은 시간은 아니다.

한 번은 남편이
"도마뱀, 자율 배식 해도 된대~ 알고 있어?"
라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알고 있다고 말하며 사육장에 사료가 묻는 게 싫어서 그렇다고 대답하니 남편은 '그 성격 참...'이라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도 나의 결점을 잘 알고 있지만 내려놓는 것이 참 쉽지는 않다.


어느 날 커피가 탈피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았다. 도마뱀은 야행성이기 때문에 여간해선 허물을 벗는 모습을 볼 수가 없는데 운이 좋았다.

동작이 조금 느릿느릿하지만 온몸에 있는 탈피 껍질을 하나씩 벗긴 다음 그 껍질을 야금야금 먹어 치운다.

도마뱀이 탈피 껍질을 먹는 이유는 탈피한 껍질에는 단백질(케라틴) 같은 영양 성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 야생에서는 포식자에게 자신의 흔적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이고.

나는 탈피하는 커피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 아침 아이에게 서두르지 않는다고 속사포 랩을 쏘아대고, 일하는 엄마에게 너무 많이 전화했다며 지적질을 한 나의 부족한 모습들을 흔적도 없이 먹어 치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의 속사포 랩과 지적질의 허물은 우리 아이가 온전히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랑의 영양분이라는 게 눈꼽만큼도 없는 엄마의 악만 남은 빈껍데기를 우걱우걱 씹으며 소화할 아이가 너무 안쓰럽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

나는 여전히 늘 부족한 인간이라 내일 아침이면 또 속사포 랩을 뱉겠지만, 이렇게 나의 고백을 적어 두면 조금은 더 나은 엄마가 될 수 있지않나 싶다.


아이가 나의 허물을 흔적도 없이 삼켜준 덕분에 나의 온전한 하루가 시작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