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딸, 차가운 도마뱀

가족소개

우리집엔 파충류 2마리와 포유류 3명이 산다.
파충류 2마리는 내가 키우는 도마뱀이고,
포유류 3명은 나 그리고 남편 그리고 9살 딸이다.

결혼 전엔 깔끔하고 시원시원한 내 성격에 따르는 주변인들도 많았기에 내가 성격이 좋은 줄 알았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육아를 해보니 내가 정말 형편없는 사람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나의 형편없음은 도마뱀을 키우는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그래서 인간엄마로서 도마뱀엄마로서 너무나 부족한 엄마의 고백을 글로 남겨보려 한다.



뜨거운 딸
- 극T의 성향을 가진 아빠와 극F의 성향을 가진 엄마 밑에서 태어난 나의 딸은 학습된 F의 성격을 지녔다. 다정한듯 하지만 쿨한?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하지만 또 T라고 단정짓기엔 애교도 정말 많아 주변에서도 다들 부러워한다. 그리고 국어 강사인 엄마를 닮아 정말 말을 잘한다.

한번은 일기장 김장했던 날의 내용을 적었는데,
그 내용을 빌려오면 이렇다. (참고로 딸의 나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오늘은 김장하는 날이라 외할머니집에 갔다. 아빠, 엄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모두 바빴다. 엄마는 완성된 김치를 아빠랑 외할아버지 입에 넣어주었다. 근데 왜 나는 안 주지? 아차차. 내가 김치를 안 먹지!"

이 일기를 읽고 나랑 남편은 배꼽을 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말을 잘하는 만큼 까불기도 잘 해서 가끔은 여자아이인지 남자아이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체력은 또 얼마나 좋은지 7세때 베트남에 간적이 있는데 새벽에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일어나 어른도 소화하기 힘든 스케줄을 밤 늦게까지 소화한 아이다.

그 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어 태권도에 보냈고 지금은 2품을 소유한 멋진 유단자 언니이다.

춤 추는것도 정말 좋아하는 흥이 많은 언니라 집에서는 음악소리가 연신 흐른다. TV가 없는 거실이라 다른 사람들 집에서는 TV소리가 흐른다면 우리집은 딸아이가 고른 음악과 댄스가 난무한다.

이렇게 에너지가 강하고 파이팅이 넘치는 딸아이가 4-5살 먹은 어린아이마냥 될 때가 있는데 바로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아이의 애착 인형이 '나'이라, 잘 시간만 되면 그렇게 나를 찾는다. 나를 만지고 자야 잠이 온단다.
덕분에 나의 잠옷들은 여느 아이들의 애착 인형마냥 너덜너덜하다. 그래도 이렇게 과도한 스킨십을 받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나를 내려놓고 애착인형의 본분을 충실히 다 하고 있다.

또 딸아이의 취미는 엄마게에 편지 쓰는 것인데 잊을만 하면 한번씩 편지에 감동적인 말을 적어주곤 한다.
또래 여자 아이들 보다 에너지가 많고 활동적이라 아들 같은 딸이지만 샤부작 샤부작 잔잔한 감동을 자주 주는 아이다.

친구들은 모두 휴대폰을 가지고 있고 본인은 전화만 가능한 워치를 가지고 다녀도 자기는 특별한거라고 말하는 마음이 따뜻한 아이다. 무엇보다 아무리 혼나도 5분 뒤면 잊어버리는 쿨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내 눈엔 너무나 매력적인 나의 딸을 나는 너무 사랑한다.


차가운 도마뱀
- '크림'이와 '커피'는 우리집 도마뱀이다.
나는 동물을 매우 좋아한다. 반면에 남편은 동물을 매우 싫어 한다. 그래서 항상 동물을 키운다고 하면 남편이 반대 했다.

약 5년 전 쯤 도마뱀을 키우는 지인 집에 놀러갔다가 도마뱀 가죽의 차가움과 매끈함에 반 해 기르고 싶다고 남편을 졸랐으나 번번히 퇴짜를 맞았다.

그렇게 나의 도마뱀 키우기는 물거품이 되나 싶었는데 2년 전쯤 남편이랑 싸운 어느 날 우연히 프리마켓에서 크레스티드 게코 릴리화이트인 크림을 만나 홧김에 데리고 왔다.
지금 생각하면 싸우길 잘 한 것 같다.^^

그리고 크림이를 키우며 도마뱀의 매력에 빠져 두어달 뒤 크레스티드 게코 카푸치노인 커피를 데리고 왔다.

크림이는 수컷인데 너무 예민한 스타일이라 살이 정말 안 찐다. 그래서 내가 사료를 줄 때마다 늘 잔소리를 많이 한다. 그리고 사육장 청소 하는 날은 그 느릿느릿한 크림이가 겁에 질려 엄청난 스피드로 온 사육장을 "우다다" 뛰어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겁이 많은 탓에 예민할때 핸들링을 시도 한 나의 딸을 3번이나 문 적이 있다.

그에 반해 암컷인 커피는 성격이 좋은 편이라 제법 통통하다. 도마뱀은 원래 암컷이 수컷에 비해 순하다고는 하는 우리 커피는 정말 순하다. 에너지 파워풀 충전된 딸이 핸들링을 시도 하고 계속 찍쩝 거려도 한 번도 문적이 없다. 그리고 도마뱀의 아이큐는 대략 10~30정도라 멍청한 편인데 커피는 종종 나를 빤히 쳐다보며 뭔가 알아듣는 눈빛을 보여줄 때가 많다. 나도 인간인지라 예민한 크림이 보단 둥글둥글한 커피한테 말을 더 많이 걸고 많이 지켜보는것 같다.

그리고 내가 키우는 크레스티드게코 도마뱀은 온도와 습도 유지가 중요한데 약간 차가운 피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핸들링을 할때 놀라지 않게 찬물로 손을 씻고 만져주는 게 좋다.
그래서 크림커피를 만질 땐 차갑게 손을 씻는데 그때마다 딸이 신생아일때 차가운 내 손에 놀랄까봐 반대로 따뜻한 물에 손을 씻고 조심스레 딸아이를 만졌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도마뱀집사로 지낸지 벌써 횟수로 3년이 되었다. 데려올땐 내 검지 손가락만 했는데 지금은 3배 정도 되어 내 손바닥에 올려 놓으면 꽉차는 느낌이 든다.

쑥쑥 자라는 커피와 크림이를 볼 때마다 내심 뿌듯함을 감출 수가 없다. 가끔은 딸아이 육아에 도마뱀 두 마리를 키우는것이 워킹맘인 내가 부담이 될 때가 있지만 알 수 없는 위로를 안겨줄 때가 있어 키우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