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한 사랑
8월의 찌는 듯한 이 무더위에도 꿋꿋하게 긴바지를 입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입을 긴바지가 없을 때에는 기모가 들어간 바지도 마다하지 않고 입는다.
세상에
그는 바로 10살된 아들이다. 그가 처음부터 반바지를 안 입었던 것은 아니다. 2년 전 여름까지만 해도 반바지를 입었는데, 어느 시점인지는 모르겠으나 주변의 친구들과 이성친구들을 의식하면서부터인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아들의 왼쪽 허벅지에 콩알만한 상처가 있다. 이미 상처가 아물어 흉터로 남아서 더이상 취할 처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목욕할때마다 방수밴드를 붙여달라고 했다. 평소에도 수시로 이미 아물어버린 흉터를 손톱으로 긁어서 생채기를 내기도 해서 상처는 시나브로 커지고 있는 중이다.
대댄~찌!
친구들과 게임을 할때 편을 가르거나 단합을 위해 손을 쫙 펴고 내밀어야 할 때마다 나는 무척 당황스럽고 난감했다. 짧고 두꺼운데다가 손등에 징그럽게 올라온 핏줄이 항상 거슬렸기 때문이다.
손 뿐만이 아니었다. 머리부터 아래로 쭉 스캔해보자면 이렇다.
시작부터 삐——
나의 납작한 뒷통수가 걸린다.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칭찬하며 머리를 쓰다듬기라도하면 온 몸이 경직되어 온전히 칭찬을 기쁘게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신경은 온통 납작한 뒷통수를 들킨 것으로 가득찼으니까
삐——
손으로 딱 쥐기 좋게 튀어나온 주걱턱, 겨울에 목폴라를 턱까지 펴서 올려 덮으면 세상 제일 예뻐보였다.
삐——
왼쪽 팔꿈치에 6-7센티정도 되는 흉터에서 또 걸린다.
삐——
금방 허리에서 또 멈춘다. ‘허리가 긴 체형. 또는 그러한 체형의 사람’을 부르는 말인 ‘요롱이’라는 유행어가 돌 때, 나를 두고 놀리는 말 같아 듣기 매우 거북했다. 심지어 나를 요롱이라고 놀리던 친구의 남자친구가 있었다. 좌식 식탁의 환경에서 자란탓이라며 가난과 다리길이의 상관관계가 있을거라는 과학적인 근거로 논문을 쓰고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앉기보다는 웅크리거나 구부린자세를 좋아했다. 내 허리 길이를 아무도 가늠하지 못하게 혼란을 주고 싶었다.
(종종 두꺼운 신발 깔창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뼈져리게 후회하고 있지만..나쁜 자세로 인해 엉덩이 뼈가 고질적으로 아프다.
여러개의 삐- 중에서 가장 신경쓰였던 부분은 바로 왼쪽 팔꿈치에 있는 낫에 베인 상처이다.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6-7세 때의 일로 기억한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셔서 방학이면 농삿일을 도우러 부모님을 포함한 모든 친척들이 할머니댁으로 내려갔다.
가을걷이로 벼베기를 마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찰나 둘째 삼촌이 나에게도 들고갈 할당량을 줬다. 그게 낫 몇자루 였다. 한자루도 아니고 여러자루라서 한꺼번에 들고가는 것이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휜어진 낫의 날카로운 끝 부분이 어린 나에게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결국 들고 오다가 팔꿈치를 긁혔버렸다. 어떤 두려움때문이었는지 아무에게도 말하지않고 바세린을 발라가며 혼자서 해결했다. 혼날 것 같아서였다.
어른이되어도 두고두고 삼촌이 원망스러웠고 어린 여자아이를 공주대접은 못할망정 아끼고 보호하며 키워주지 않은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가난한 삶에 찌들어 일만하며 사느라 세심하게 아이를 챙겨줄 여유가 없는 부모님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느꼈다.
여름이라 반팔, 민소매를 입는 시즌이되면 나의 숄더백은 언제나 왼쪽 어깨에 걸쳐있었다. 어깨에 가방을 두르고 팔꿈치를 접어 가방 손잡이를 잡고 다니는게 가장 편안하고 안정적인 자세였다.
팔을 툭 떨어트리고 다니면 뒷사람이 내 흉터를 볼 터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왼쪽팔은 접혀있는 편이었다.
언제나 남자는 내 오른쪽에 두었으며 내가 의식하고있었기에 상대는 자연스럽게 흉터를 보지 못했다.
남자와 스킨십을 할 때 상대가 내 팔을 잡거나 흉터 근처에 침입자가 발생하면 예전에 선생님이 내 뒷통수를 쓰다듬을 때 느꼈던 발작같은 순간의 일시정지가 있었다. 나에게는 들키면 안되는 비밀들이 많았고 결국 그 비밀들 때문에 연인들과의 관계도 경직되었다.
이성에 눈을 조금 뜬 것 같은 아들이 생각났다.
아이 옷 장 서랍에서 입지 않아 차곡차곡 쌓여있는 반바지들을 보며 이런것도 유전인가 싶어 마음이 아팠다.
더운데 반바지 좀 입으라며 화도 내고 다그쳐도 봤지만 아이는 더 반발할 뿐이었다. 아무도 너의 허벅지에 난 흉터에 신경 안쓰니 반바지를 입어도 된다고 얘기할 때마다 별로 효과적이지는 않는 방법같아 한숨만 쉬었다. 나처럼 타인을 지극히 의식하며 젊은 시절을 마음껏 자신답게 누리고 살지 못할까봐 겁이났다. 이 아이도 나를 원망할까? 도대체 이 자의식 과잉인 사람들의 문제는 왜 생겨난 것이고 뭣때문일까
나의 과거를 훓어보면 결국 ‘사랑’이라는 단어로 귀결된다. 나는 많은 사랑이 필요한 아이였고 나의 아이도 그럴 것이다. 나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충분하게 받고 자랐다고 생각해본적이 없다.
내가 필요할 때, 부모님은 없었고 있더라도 적절한 방법으로 나를 보듬어주지 않았다. 나도 어떻게 하는 것이 충분히 아이가 느낄만큼의 관심과 사랑을 주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노력해야된다는 것은 안다.
아직은 사랑을 받기만해도되는 이 어리고 앞으로의 미래가 많이 남은 아이에게 무한한 사랑을 줘야지.
어느날 나는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했다.
“아들, 네가 긴바지를 입고싶으면 입어. 언젠가 반바지가 입고 싶어지면 그때 입어도 되. 엄마는 네가 어떻게 하든지 우리 아들이 제일 멋있고 최고야. 사랑해”
“우리 딸, 엄마 아빠는 네가 어떤 모습이든 너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
아들의 검은 눈동자에 비춘 과거의 나에게도 하는 말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