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혜리 Jan 22. 2024

몰입을 위한 시간, Spotify

제4장 번역가가 일하는 법

프리랜서 번역가의 작업실은 정해진 곳이 없다. 그때그때의 마음 상태에 따라 노트북 하나만 들고 원하는 장소에서 일을 시작하면 그곳이 바로 오늘의 작업 공간인 것이다. 나는 주로 창문을 등지고 내 방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는데, 너무 오래 혼자 있어서 적당한 소음이 그리워질 때는 동네 카페에 간다. 다만 동네 카페 중에서도 최신가요를 너무 크게 틀어 놓거나 음료 제조 소리(커피 머신 작동음)가 크게 나는 곳은 피한다. 적당히 어두운 공간에 가사 없는 연주곡을 틀어 놓는 공간을 선호하는 편이다. 누군가는 이런 나의 취향을 듣더니 ‘꼭 땅속에 있는 것 같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생각해 보면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포근한 어둠이 있는 고요한 장소에 머물 때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에서 일을 할 때는 최소한의 불만 켜고 가사가 없는 연주곡들을 틀어 놓는다. 왠지 유명한 클래식 앨범을 틀어놓을 것 같겠지만, 사실 모차르트, 바흐, 쇼팽 등의 음악은 잘 모른다. 내가 주로 재생해 놓는 음악은 가사 없는 크리스마스 캐럴 연주곡, 가사 없는 영화 OST 연주곡들이다. 주로 한스 짐머의 영화 OST를 듣는다. 그리고 가끔 늦게까지 일하느라 몽롱해진 새벽 시간에는 Honne의 앨범을 틀어 놓는다. 


그리고 모든 음악은 Spotify로 듣는다. Spotify는 코이카 단원으로 인도네시아에 있을 때 처음 써 봤는데, 대중적이지 않은 내 독특한 취향에 맞는 곡만 쏙쏙 추천해 주는 영리함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귀국 이후, Spotify가 한국 내 서비스를 하기 전이라 약 1년 정도는 사용하지 못하다가 이후 국내에서도 정식으로 서비스되기 시작하면서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Spotify는 내가 자주 듣는 음악이 뭔지 분석해서 그 곡과 비슷한 음악을 추천해 주는 기능이 뛰어나다. 추천해 준 대로 가만히 듣다 보면 내 취향을 200% 반영한 곡들로만 콕 집어서 들려주는 선곡 능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내 취향과 비슷한 전 세계의 다양한 곡들을 들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다른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도 사용해 봤지만 결국 내 취향을 가장 잘 알아주는 Spotify만 정기 구독료를 내고 사용한다.


나에게 음악이란 해야 할 일에 몰입하기 전에 필요한 ‘20분’을 위한 것이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나의 학창 시절에는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하기 5분 전에 예비 종소리를 들려주는 문화가 있었다. 9시에 수업 종이 울린다면, 8시 55분에 예비 종을 미리 들려주는 것이다. 예비 종소리를 들은 학생들은 55분부터 교과서를 꺼내 놓거나 자리에 앉는 등 9시에 정시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나는 집중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일에 몰입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예비 종소리처럼 잔잔한 연주곡들이 담긴 플레이 리스트를 재생해 놓으면, 리스트에 담긴 곡들을 다 들을 때쯤에는 자연스럽게 번역에 몰입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머리숱이 풍성한 닭. 신기해서 자꾸 쳐다보는 나를 흘겨보는 도도한 녀석.


작가의 이전글 사실 나는 맥북을 좋아하는 갤럭시 유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