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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 Jul 23. 2023

엄마 밥이 그리운 날

열아홉에 만난 Y는, 주방 일에는 도무지 관심도 재주도 없는 친구다.  그런 Y가 촉촉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 갓 지은 밥에 금방 만든 반찬 해서 밥 먹고 싶다~~ 집밥다운 집밥을 먹어 본 지가 언젠지,,, "

".... , ..  당장 그 눈빛 치우지 못해- "  


어무니 밥보다 내 밥이 더 맛있다는 친구다.  Y 어머니가 들으시면 서운하실 거다. 나 역시도 반갑지는 않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오신다고 해도 반갑지 않은 게 여름 손님이라고 했다.  Y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고 해도, 모를 것이다. 대개 머리로 이해하는 건, 삶으로 체득한 걸 따라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뭐어 어쨌든 그 말이 내내 맘에 걸렸던 차에, 연일 비도 오고 Y의 안부도 물을 겸 전화를 했었다. " 시간 되면 집에 와서 밥 먹고 가. "  Y는 단박에 달려올 기세로 반색했다.



손님맞이 찬이라고 해서 대단할 것도 없다. 뭐든 아쉬울 것 없는 친구니, 내가 준비할 수 있는 텃밭 재료로 만든 밥상에 생선요리 하나 얹은 상차림이면 Y가 바라는 집밥으로 충분할 터였기 때문이다.  Y는 집에 오겠다고 약속한 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반찬 만드는 일을 거들겠다는(;;;;) 걸 간신히 뜯어말려 텃밭 구경이나 하라고 바깥으로 쫓아버리고는, 맘이 급해졌다. 서둘러 일회용 비닐 봉다리에 밀가루와 썰어놓은 호박을 한꺼번에 집어넣고는 흔들어서 적당하게 밀가루 옷을 입혔다. 보통은 시간 맞춰, 초대한 손님이 오기 직전에 상차림까지 끝내 놓고 여유롭게 기다리는 편인데, 집밥에 들뜬 Y의 맘까지는 계산하지 못했다. 마음만큼이나 손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Y는, 탄수화물 끼니는 하루에 한 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데다가 절식이 생활화된 친구다. 그런 Y가 연신 맛있다며 식탁 위에 음식들을 비워냈다. 찜기에 쪄낸 호박잎 쌈에 바특하게 끓인 된장찌개 한 숟가락을 얹으면서, 옛날에 할머니가 해주신 것 먹어 본 이후로는 처음이라며 행복해했다.(대체 뭘 먹고 사는지,,,) 평상시 이 친구의 식단 구성이 견과류와 베리, 요플레, 바나나와 사과, 닭가슴살 ... 염도를 극도로 조절한 1년 365일 연예인급 다이어트 식단이란 건 알고는 있지만, 대체 그런 주전부리가 어떻게 끼니가 될 수 있는지, 밥을 주식으로 하는 나로서는 Y가 뭘 먹고 사는지 알아도, 매번 궁금하다.  청양고추와 무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조림한 갈치는 뜻밖에도 푸성귀 찬에 순번이 밀려서 다른 반찬들이 비워질 때쯤 식탁에 주인공이 됐다. 집에 돌아갈 때, 미리 꾸림 해놓은 반찬 서너 가지와 열무김치까지 Y는 사양 않고 챙겨갔다. 현관문을 나서며 Y는 친정집에 다녀가는 기분이라며 헤벌쭉 웃었다. " 난 너 같은 딸년 둔 적 없다."



나라고 처음부터 주방 일이 몸에 익었던 건 아니다. 직장 다닐 때만 해도 칼질은커녕 라면 하나 끓이는 그 단순한 조리조차 제대로 못해서 엄마한테 구사리를 듣고는 했었다. 아픈 엄마를 케어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겪고 배우면서 실력이 는것이지, 별일 없이 살았으면 Y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상황상 어쩔 수 없이 하다가 보니 뜻밖에도 손끝이 여물어졌다고 해야 할까. 불과 몇 년 전 시간이 없었다면, 소문난 반찬가게를 Y와 공유하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이래저래 힘들게만 느껴졌던 그 시간이, 지금의 나를 건사하고 있는 셈이다.



Y는 차를 마시다가 말고, 참외를 깎고 있는 내게 말했다.

" 한적한 외각으로 나가서 하루에 1팀 받는 밥집 하면 어떨까? 밥집 이름은 ' 엄마 밥이 그리운 날' 어때? "

" 손님 엄가가 똥손이면 어떡해? "

" 야잇, 거기까지 나가면 반칙이지,,;;; 뭐지? 왜 찔리지? ... "

Y와 나는 각자의 이유로  웃었다.

.

.

.

나두 찾아가고 싶다. 그런 곳이 있다면





#엄마밥 #그리움 #비오는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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