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 시간 정도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빅터 프랭클 작가가 겪은 수용소 체험 이야기며 많은 것들을 시사하고 있었다. 죽음이라는 갈림길에 서 있는 극단의 시간 속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통해 깊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작가가 처음 겪었던 수용소가 나에겐 마치 먼 일 같을지라도 비슷한 일들을 종종 겪어봤던것 같다. 수용소에 있진 않아도 내 자신이 바닥에서 힘겹고, 앞 길이 까마득한 때가 생각났다.
내 얘기와 책내용을 소개하겠다.
인간스러운 책이라고 생각했던것 같다. 인간으로서 느낄 수 밖에 없는 원초적인것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열악해도, 아니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사람은 어는 곳에서나 적응하며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던 거 같다. 동시에 어느 곳에서나 살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사람은 처음 맞이하는 어려움임에도 궁금증이란 것을 가졌고, 끝을 궁금해 하며,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여러가지 망상과 상상을 하며 좋은 결과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 그렇다고 하니 내가 이상한게 아니구나 싶었다.
조금이라도 좋은 것들이 눈 앞에 생길거라는 믿음 속에서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 허무함과, 비극적인 상황에 고난과 충격에 휩싸여도 후에는 적응하게 되어서 무감각하게 되어 갔을 때 오히려 객관적인 상황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매우 공감이 갔다.
나에게도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힘은 어려움을 겪은 일들에 대한 무감각이 생길 때라는 것에 비춰서 현생에서 경험한 어려움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기보단 앞으로 이뤄나갈 것들의 그릇을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고난도 허락하심에 감사를 하게 되었다. 지금도 나의 본 모습에 대해 낯설 때가 있지만 이것도 많은 시행착오 후에는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식했던 부분이었지만 잊고 있던 부분을 상기가 됨에 감사하다.
작가가 무감각한 상황 속에서 감정이 생겼던 상황을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모멸감이라고 했다. 육체적 고통보다 불합리한 상황에서 이해하지 못 하는 이유에서 받는 인간으로서의 모멸감이 그를 화나게 했다고 했다. 죽음을 보는 수용소에서 구원에 대한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작가도 구원은 사랑 안에서, 사랑을 통해서 실현된다고 이야기하며 아내 생각을 하는 것을 보았다.
수용소에서 무감각해지고, 그들의 원초적인 사는것과 죽는것에만 집중하고 그 외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고 했지만 내적인 세계,영적,예술적인 것은 나날이 커지고 있단 것을 느꼈다고 한다. 사소한 것을 통해, 자연을 통한 아름다움을 바라보게 되고, 사랑하는 아내와 대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현실을 피해서 잊을 수 있는 그 시간은 사랑이었던거구나 싶었다. 아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모르지만 그 대상을 생각하며 사는 것에 대해 행복하고,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삶을 살아가며 불합리하게 모멸감을 느낄 때가 있는거 같다. 이렇게 살면 정말 화도 나고, 메마른 정서를 가지고, 냉소적이거나, 예민해질 때가 있다. 그 때는 작가가 느꼈던거처럼 사랑이 답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랑으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인간이 사는 이유라는 생각했다. 어쩐지 사랑이라는 단어는 누구나 좋아하고,어릴때부터 자연스럽게 배우고 관심이 많아지게 되는 본능이 있는건가도 싶다. 사랑하는 대상이 사람이던, 물건이던,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해 행복을 느끼고 살아 가고 또 전하며 살고 싶다.
읽다보니 실제 이야기가 아닌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는듯한 잔인함들 때문에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이 안타까웠다. 계속 되는 죽음과 인간의 잔인함으로 인해 방어기제로 무감각을 가지고 살아간다. 인육까지도 먹을수 있다는 내용을 보고선 정말 영화 속에서만 나올듯한 비현실적인 요소가 잔인하다는걸 느끼게 했는데 현실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찾고, 또 내면의 자유는 그들에게 주어졌다. 환경은 신경쓰지않고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결정하는 것은 자유다라는 이야기가 인상이 깊었다.
작가는 탈출을 할 수 있었음에도 고향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선 마음이 좋지 않았다. 뻔히 보았지만 탈출해야됨에 불편했는데 가지않겠다고 친구에게 말한 뒤로는 그 감정이 사라졌고, 의사라는 직업정신이었던건지 곁에 있겠다는 선택을 자유롭게 했다는것에 나도 도전을 받았다. 상황이 어떻더라도 자신의 선택이 곁에 있어, 치료하고자 하는 선함과 사랑의 마음을 닮고 싶다. 상황에 상관없이 나에게도 내적 자유로 되고 싶은 내 모습을 만들어야겠다.
책을 다 읽게 되어 작가의 생각을 정리하며 곱씹어봤다. 로고테라피로 많은 정신질환자들을 치료해온 빅터 프랭클.
프로이트 이론도 들어봤는데, 로고테라피를 알고나니 나도 로고테라피가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의미의 초점을 두고 살아간다라는 것에 기반한 치료 기법.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삶의 의미를 찾고, 책임감 속에서의 자유를 가지고 나아가며 정신 질환을 고칠 수 있는것이다.
강제 수용소에서 원고를 잃어버려 삶의 좌절을 느꼈지만, 그 곳에서 느끼고 배운 인간의 심리와 정신 분석을 미래에 석방 후 병원에서 치료하게 될 실제 환자들을 생각하며 수용소에서 살아남는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했던 작가. 살아나와보니 원고를 잃어 좌절 했던 감정과 생각은 오히려 역전된 상황이었다. 수용소에서 경험이 컸던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살게 만들었다지만 수용소에서 계속 선별되는 과정에서는 약간의 운명도 있지 않았을까도 생각해본다. 어쩔수 없는 질병과 육체적인것에 대한 것이랄까.
나도 하던 일들을 멈추게 되면 뒤쳐지거나 해가 되진 않을까 생각이 들지만 다른 것들로 채워주시고, 더 큰 것을 하게 될 것이니 걱정과 강박은 내려놓아야겠다. 실패가 기회로 역전이 된다는 것을 다시 보게 되었고,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도 되새기게 되었다.
허무주의 같은 것에 경계를 갖고, 현재가 과거의 실패였다라고 생각했을 때 다시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용기를 가지고 길을 가야겠다.
그런데 우연히 듣게 된 것중에 이런 불안 속에서 사람들이 신이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우리를 이끄는 것이지 신이라는 존재는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봤었다. 같은 불안을 경험해도 신의 존재를 느끼는 것은 하나님만의 은혜고, 은혜가 없으면 안된다는 것을 다시 느꼈던 것 같다.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나의 현재의 선택을 통해 미래를 살아갈 이유를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