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의 진짜 재미

주꾸미는 가라!

by 기억하는 나비

금요일 저녁, 주꾸미 샤부샤부 냄비가 보글보글 끓고 있다. 제철 맞은 주꾸미는 통통하게 살이 올라 탱글 탱글하고, 미나리와 콩나물이 맑은 육수 위에서 군침을 돋운다. 맞은편에는 나보다 열 살 어린 후배가 앉아 있다. 우리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오늘 있었던 일을 안주 삼는다.

"차장님, 오늘 진짜 못 볼 꼴 보셨죠?"

후배가 먼저 입을 뗀다. 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 사무실에서 벌어진 일은 22년 차 직장인인 나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11개월 차 신입 여직원. 나이는 서른일곱, 내 맞은편에 앉은 후배와 동갑이다. 그 직원이 오전 내내 남자 팀장 앞에서 찡찡댔다. 일이 힘들다고, 모르겠다고, 못 하겠다고. 그러더니 오후엔 회의실로 들어가 두 시간을 울었다. 회의실 불이 꺼지지 않는 걸 보며 나는 조용히 가방을 챙겼다. 조퇴 사유는 딱히 없었지만, 그 광경을 더 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서른일곱에 11개월 차면... 사회생활 처음은 아닐 텐데."

후배가 고개를 갸웃한다. 나도 모르겠다. 사람은 다양하고 같은 사람은 없다는 걸 22년 동안 수없이 배웠지만, 여전히 이해 안 되는 장면들이 있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수 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팀장 앞에서 찡찡대고, 회의실에서 한 사람을 붙들고 두 시간을 우는 건 조금 다른 문제 아닌가.

소주 한 병이 비고, 두 번째 병이 열린다.

스물다섯에 입사해서 마흔일곱이 된 지금까지, 나는 울고 싶은 순간이 없었을까. 당연히 있었다. 수없이 있었다. 하지만 숨어서 울었고, 퇴근길 버스 창문에 기대어 울었고, 집에 도착해서 방문을 잠그고 울었다. 남들 앞에서 우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게 맞는 건지 틀린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렇게 버텨왔을 뿐이다.

세 번째 병, 네 번째 병. 어느새 다섯 번째 병이 열린다.

후배와 나는 나이 차이가 열 살이다. 직급도 다르고, 입사 연차도 다르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후배와는 친구처럼 편하다. 내가 젊게 사는 건지, 이 후배가 조숙한 건지. 아마 둘 다일 거다. 서로의 주파수가 맞는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통하는 법이니까.

"역시 회사생활의 진짜 재미는 요 거지."

스트레스받으며 일하지만, 믿을 수 있는 후배와 소주 마시며 그 스트레스를 풀고. 단순하지만, 이게 22년을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인지도 모른다.

만년 차장이라는 타이틀이 뭐 어떤가. 승진에서 밀려 힘없는 직원이면 또 어떤가. 금요일 저녁, 제철 주꾸미에 소주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후배가 있다는 것. 서로의 하소연을 안주 삼아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떠들 수 있다는 것. 그게 내 회사생활을 지탱하는 힘이다.

주꾸미가 어느새 다 익었다. 후배가 내 접시에 주꾸미를 건져준다. 나는 후배의 빈 잔에 소주를 따른다. 우리는 말없이 잔을 부딪친다.

50여 명 직원이 있는 작은 공기업. 그 안에서 나는 오늘도 나를 지키며 산다. 맘 맞는 후배와 소주를 마시고,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 직원을 보며 고개를 젓기도 하면서. 이것이 나의 회사 생활이고, 나의 일상이고, 나의 삶이다.

후배를 배웅하며 손을 흔든다. 다음 주 월요일에 보자고, 다음엔 뭘 먹을지 고민해 보자고. 아니, 누구를 또는 무슨 사건을 안주로 삼을지 기대해 보자고. 발걸음이 가볍다. 소주 다섯 병을 마셨는데도 취하지 않은 것 같다.


충주시 퇴직공무원인 유투버 김선태 씨가 말했다. "원래 많이들 욕한다! 나도 많이 욕했다. 모든 조직에선 다 그렇다!"

그래 오늘의 내가 술 마시며 한 것도 남들 다 하는 거야. 그것도 직장생활의 일부인 거야.


여자 2명에서 소주 5병! 우리는 술꾼 도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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