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옷은 이 도시에 없었다.

위고비의 시작

by 기억하는 나비

"죄송해요, 손님. 그 디자인은 라지(L) 사이즈까지만 나와서요."


직원의 친절한 말투가 더 비참했다. 피팅룸 커튼을 젖히고 나오던 수연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억지로 올리려던 옷의 지퍼는 갈비뼈 근처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거울 속의 자신은 터질 듯한 옷감 속에 갇힌 짐승 같았다.


결국 수연은 그날도 빈손으로 백화점을 나섰다. 내일 회의는 또 몸을 대충 가린 옷으로 참석해야 했다. 화려한 쇼윈도 속 마네킹들은 저마다 날씬한 허리를 뽐내고 있었고, 수연은 마치 이 도시의 미관을 해치는 불청객이 된 기분으로 황급히 지하철역으로 숨어들었다.


나를 위한 옷은, 이 화려한 도시에 단 한 벌도 없었다.


다음 날 책상 위에 놓인 것은 새 옷 대신 건강검진 결과표였다. '고혈압 주의', '당뇨 전단계'. 그리고 붉은색 글씨로 선명하게 박힌 '고도비만'.


30대 후반, 대기업 회계팀 차장. 빈틈없는 업무 처리로 인정받는 김수연의 성적 표라기엔 너무나 초라했다. 수연이 한숨을 쉬며 검진표를 서랍 깊숙이 밀어 넣으려는 찰나, 파티션 너머로 날카로운 목소리가 꽂혔다.

"수연 차장, 이번 분기 결산 데이터 다시 확인해. 1원 단위까지 맞추라고 했지?"


재무기획팀 김지숙 부장이었다. 김 부장은 55 사이즈를 유지하는 착한 몸매와는 대조적으로, 늘 가시 돋친 착하지 않은 말을 내뱉곤 했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콤플렉스를 완벽한 업무 능력과 더 완벽한 자기 관리로 방어해 온 그녀에게, 살찐 수연은 게으름의 상징이자 만만한 먹잇감이었다.


김 부장은 헐렁한 셔츠로 몸을 가린 수연을 위아래로 훑으며 팔짱을 꼈다.


"숫자를 다루는 사람이 자기 몸 하나 통제를 못 해서야 원. 자기 관리가 곧 실력인 거 몰라? 미련하게 먹는 걸로 스트레스 풀지 말고, 나처럼 새벽 요가라도 좀 다니지 그래."


동료들의 시선이 수연의 등 뒤로 꽂혔다. 이미 오래전 난 그녀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있었다. 수연은 입술을 깨물며 "죄송합니다, 바로 수정하겠습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회계장부의 숫자는 밤을 새워서라도 맞출 수 있었지만, 체중계의 숫자는 수연의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은 지 오래였다.


퇴근길, 수연은 가방 속에서 위고비 상자를 꺼냈다. 어제 병원에서 의사가 건넨 처방전으로 받아온 것이었다.

"수연 씨, 이제 정말 체중 조절을 하지 않으면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약을 모두 복용해야 해요."


'위고비(Wegovy) 0.5mg.'이 가벼운 용량이 내 무거운 삶을 정말 들어 올릴 수 있을까?


수연은 떨리는 손으로 주사 펜을 쥐었다. 김지숙 부장의 비웃음, 피팅룸에서의 굴욕, 건강검진표의 경고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것은 살을 빼기 위한 욕망이 아니었다. 살고 싶다는, 나를 함부로 대하는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싶다는 절박한 구조 신호였다.

수연은 천천히 복부에 주삿바늘을 갖다 대었다. 이것이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내딛는 첫 번째 용기였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