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비밀
"딸깍."
익숙한 소리와 함께 주사기 펜의 다이얼이 멈췄다. 처음 0.5mg을 맞출 때 손을 벌벌 떨던 그녀는 이제 없다. 투명한 약물이 채워진 주사기를 확인하고, 능숙하게 복부의 살을 집어 올린다. 1.0mg, 1.7mg를 거쳐 어느덧 최대 용량인 2.4mg.
이것은 지난 5개월간 몸에 일어난 기적을 증명하는 숫자이자, 매주 목요일 밤마다 치르는 은밀한 의식이다.
5개월 전만 해도 '고도비만' 판정을 받았던 몸무게는 이제 '과체중'의 경계선까지 내려왔다. 워낙 키가 큰 편이라, 사람들은 이제 그녀를 '정상 체중'으로, 혹은 '늘씬하다'라고 까지 봐주었다. 맞는 옷이 없어 피팅룸에서 식은땀을 흘리던 여자는 이제 없다. 프리사이즈 옷이 들어갈 때의 그 낯선 쾌감이란.
하지만 수연은 이 변화의 비밀을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특히 회사에서는 더더욱. 하지만 나의 평화를 깨는 빌런은 가까이에 있다.
"수연 차장, 잠깐 나 좀 봐."
오후 3시, 나른한 탕비실. 수연의 뒤로 김지숙 부장이 다가왔다. 그녀는 평소처럼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예전처럼 경멸 어린 시선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불쾌한 '탐색'의 눈빛이었다.
"요즘 아주 딴사람이 됐어? 나 수연차장 턱선 처음 봐."
"아, 감사합니다 부장님. 저녁마다 좀 뛰고 있어요."
수연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김 부장은 팔짱을 낀 채 한쪽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
"러닝? 그 무거운 몸으로 무릎이 남아나나 몰라. 흐음... 솔직히 말해봐."
김 부장이 한 발짝 그녀 쪽으로 다가오며 목소리를 낮췄다. 뱀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혹시 위고비 맞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컵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내 동공의 흔들림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집요하게 눈을 맞춰왔다.
"네? 위... 뭐요? 그게 뭐예요?"
"에이, 시치미 떼지 마. 요즘 유행하는 그 주사 있잖아. 김 차장이 무슨 수로 운동만으로 5개월 만에 이렇게 빼? 평생 의지박약으로 살았잖아."
그녀의 말속에는 '네가 스스로 해냈을 리 없다'는 확신과 조소가 깔려 있었다. 세상은 비만을 '게으름의 형벌'로, 다이어트를 '의지의 승리'로 규정한다. 약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나의 노력은 '반칙'이 되고 나는 또다시 '약물에 의존하는 나약한 인간'으로 낙인찍힐 것이 뻔했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며, 5개월간 연습해 온 거짓말을 내뱉었다.
"부장님도 참, 제가 그런 거 맞을 용기가 어딨 어요. 저 요즘 소화가 너무 안 돼서 강제로 소식하는 중이에요. 위내시경이라도 받아봐야 하나 봐요."
"그래? 뭐, 아니면 말고. 근데 너무 급하게 빼면 얼굴 흘러내려. 조심해."
김 부장은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 않은 눈치였지만, 흥미가 떨어졌다는 듯 탕비실을 나갔다. 그녀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고 해도, 사람들의 인식은 여전하다.
"약 힘으로 뺐다고? 그건 치트키 아니야?"
"운동 안 하고 약 쓰면 요요 금방 온다더라."
그래서 수연은 오늘도 입을 다문다.
일주일에 단 한 번, 10초 남짓한 주사 시간이 내게 선물해 준 것은 단순한 체중 감량이 아니었다. 음식 앞에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평화, 밤마다 폭식의 유혹과 싸우지 않아도 되는 자유였다.
샤워를 마치고 거울 앞에 섰다. 쇄골이 희미하게 드러난 모습을 보며 주사 펜을 정리했다. 누군가는 이것을 '의지 부족'이라 손가락질할지 몰라도, 이 약은 물에 빠진 사람에게 던져진 튜브와도 같았다. 튜브를 잡고 헤엄쳐 나온 건 결국 그녀의 팔과 다리였으니까.
김지숙 부장이 아무리 의심해도 상관없다.
처음 0.5mg의 용기를 냈던 그날을 후회하지 않는다.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 주사기 한 대의 무게가 그녀를 구원했음을 알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