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식욕, 낯선 평화

식탐을 버리고 찾아온 평화

by 기억하는 나비

삶은 언제나 시끄러웠다. 귀로 들리는 소음이 아니라, 뇌 안에서 웅성거리는 식탐이라는 이름의 소음이었다.


'오늘 저녁은 뭐 먹지?', '스트레스받는데 매운 거 시킬까?', '딱 오늘 밤까지야'


머릿속에서는 쉬지 않고 메뉴를 제안했고, 수연은 그 명령에 복종하느라 늘 허덕였다. 뚱뚱한 몸을 보여주기 싫어 회식 자리를 피하고 친구들과의 만남을 끊어낼수록, 집 안의 식탁은 빈틈이 없어졌다. 문 밖으로 나가지 못한 욕망은 배달 앱 속의 사진들로 옮겨 붙었다.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 네 캔과 냉동 안주를 사고, 집에 오자마자 치킨이나 족발을 시켰다. TV 속 예능 프로그램의 웃음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배가 터질 때까지 밀어 넣고 나면, 알코올 기운과 함께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퉁퉁 부은 얼굴로 거울 앞에 서서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말로 스스로를 비난하는 것. 그것이 수년간 반복해 온 비참한 루틴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시끄럽던 소음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마치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새벽처럼, 뇌 안이 고요해졌다.


"음... “

주방에 서서 찬장을 열었다. 예전 같으면 냄새만 맡아도 침이 고였을 인스턴트 라면 봉지가 보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특유의 기름진 밀가루 냄새가 코끝을 스치자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냄새조차 맡기 싫어지는 감각. 그것은 내 평생 처음 느껴보는 '낯선 거절'이었다.


식욕이 침묵하자, 비로소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 결산 끝나고 다들 삼겹살에 소주 한잔 어때?"

오후 회의가 끝날 무렵, 옆 부서 팀장이 제안했다. 팀원들이 환호하며 일정을 잡으려 할 때, 파티션 너머로 김지숙 부장의 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연 차장은 회식 안 가지? 원래 이런 데 얼굴 안 비치잖아. “


그녀는 수연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서류를 넘기며 툭 내뱉었다. 예전 같으면 그 말속에 담긴 '넌 우리와 어울리지 못하는 부적응자'라는 뉘앙스에 상처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 그 모멸감을 떡볶이와 튀김, 혼술로 씻어내려 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네, 부장님. 저는 오늘 정리를 좀 해야 해서요. 맛있게 드세요."


수연은 진심으로 평온하게 대답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도망치는 게 아니었다. 술잔을 비우고 고기를 구우며 억지웃음을 짓는 것보다,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가치 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친구도 없고 회식도 없는 이 단절된 시간이, 이제는 나에게 '완벽한 평화'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방 안에는 편의점 음식 대신 읽고 싶었던 소설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반기는 건 음식 냄새가 아니라, 창가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밤바람이었다.


TV를 켜지 않아도 외롭지 않았다. 배가 부르지 않아도 허전하지 않았다. 아무 방해도 없는 진짜 평화.


0.5mg의 용기로 시작된 이 여정은 날씬한 몸보다 더 소중한 '마음의 고요'를 선물해 주었다. 침묵하는 식욕은 더 이상 결핍이 아니었다. 그것은 비로소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었다는, 가장 강력한 선언이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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