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용기
매주 목요일 밤, 주사기를 드는 순간은 이상한 비밀스러움이 함께했다. '의지가 부족해서', '게을러서' 결국 약물에 의존한다는 부끄러움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오늘 밤은 달랐다.
수연은 거울 속의 나를 오랫동안 응시했다. 턱선이 날렵해지고 쇄골이 도드라진 외형의 변화 때문이 아니었다. 눈빛 속에 담긴,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 때문이었다.
지난 반년의 시간은 단순한 다이어트 기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몸과 뇌가 보내는 신호가 얼마나 망가져 있었는지를 처절하게 깨닫는 과정이었다. 배가 터질 것 같은데도 젓가락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던 그 폭식의 충동은, 나약한 의지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뇌의 오작동, 명백한 '질병'이었다.
그녀는 냉장고에서 주사 펜을 꺼냈다. 익숙하게 다이얼을 돌리며 생각했다. 이것은 치트키가 아니다. 고장 난 몸의 신호를 정상으로 돌려놓는 '치료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비로소 평평하게 만들어준 도구일 뿐이다.
"수연아, 그동안 힘들었지. 네 잘못이 아니었어. “
수연은 처음으로 배에 주삿바늘을 꽂으며 자신에게 사과했다. 미련하다고, 한심하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웠던 수많은 밤들을 용서했다. 병을 인정하자, 오히려 진짜 의지가 샘솟았다. 이제 치료는 거의 끝났다. 망가진 시스템이 고쳐졌으니, 이제부터는 건강한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진짜 의지가 필요한 시간이었다.
더 이상 이 주사를 부끄러워하며 숨어서 맞지 않기로 했다. 이것은 자신을 사랑하기로 한 가장 용기 있는 결정의 증거니까.
다음 날 아침,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발걸음이 달랐다.
늘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걷던 구부정한 자세가 꼿꼿하게 펴졌다. 시선이 높아지니 사무실 풍경이 달라 보였다. 수연은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내 자리로 걸어갔다.
"어? 수연 차장, 오늘 뭔가 좀... 다르네?" 기분 좋은 일 있어?
탕비실 앞에서 마주친 김지숙 부장이 멈칫하며 수연을 위아래로 훑었다. 예전 같으면 그 시선에 심장이 졸아들어 얼른 눈을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도망치지 않았다. 똑바로 김 부장의 눈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네, 부장님."
수연의 목소리에는 불필요한 덧붙임도, 비굴함도 없었다.
눈치 빠르고 처세술에 능한 김 부장은 단번에 공기의 변화를 감지한 듯했다. 수연의 눈빛에서 더 이상 만만한 먹잇감의 기색이 느껴지지 않자, 그녀는 늘 궁금해하던 나의 사생활에 대해 하던 질문을 멈추었다. 면전에서의 모욕도 사라졌다.
"어... 그래. 일 봐."
김 부장은 찜찜한 표정으로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물론 안다. 그녀가 완전히 변한 것은 아니다. 뒤에서 직원들과 모여 "저거 분명히 약했어", "독한 년, 얼마나 가나 보자" ”얼마 안 가서 요요로 더 뚱뚱해질 거야. “하며 소문을 퍼뜨리고 음해할 것이 뻔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만약 김 부장이 다시 한번 날카로운 눈으로 다가와 "너 솔직히 말해, 위고비 맞지?"라고 묻는다면, 그녀는 이제 피식 웃으며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네, 맞아요. 부장님이 아플 때 약 드시는 것처럼, 저도 제 병을 치료하는 중이에요. 덕분에 아주 건강해지고 있답니다."
삶의 주도권은 이제 완전히 그녀에게 넘어왔다. 0.5mg의 주사액이 준 것은 날씬한 몸이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오해와 편견에 맞설 수 있는 '진짜 용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