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다시 피아노를 치는 이유

by 차유진



몇 년 전, 드라마 촬영에서 직접 피아노를 연주해야 하는 장면이 있었다. 연출부가 연주 가능 여부를 묻진 않았지만, 현장에서 태연하게 연주하는 척하기 민망할 것 같아 한 곡이라도 익혀가야겠다는 생각에 동네 피아노 연습실을 찾았다.


장 폴 마르티니(J. Martini)의 '사랑의 기쁨'(Plaisir d'amour). 어릴 적 가장 좋아했고, 유일하게 기억해 내던 곡이었다. 흰건반 위에 손을 올리자 신기하게도 30년 동안 잠들어 있던 열 손가락이 해동되듯 저절로 움직였다. 다만 실수 없이 끝까지 치기까지는 두 달이 걸렸다. 촬영을 무사히 마친 뒤, 번쩍 든 생각.


'재료 다 떨어졌다. 다음엔 뭘 치지?'


그날로 피아노 학원에 정식 등록했다. 3년 동안 일주일에 세 번씩 수업하며 반주법 책 여섯 권과 하농 두 권, 체르니 30번과 40번을 거쳐, 결코 오를 수 없을 것 같았던 체르니 50번의 고지까지 올랐다. 손가락 마디는 시큰거렸고, 어깨와 팔의 근육통 때문에 한의원 침까지 맞아 가며 매달리다 불쑥 스친 생각.


'근데, 나 왜 이렇게 열심히 하지?'


어릴 적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피아노 앞에 앉아 체르니 40번을 연주하던 두 살 터울의 언니는 부모님의 '하트 유발자'였다. 레슨 선생님도 입시 전공을 권할 만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반면 나는 체르니 30번도 간신히 붙잡을 정도로 진도가 느렸고, 소질 없으면 그만두라는 말도 밥 먹듯 들었다.


늘 화제의 중심에 있던 언니에 가려 쪼그라든 자신감은 결국 초등학교 6학년 때 피아노를 손절하게 만들었다. 30년 만에 다시 펼친 체르니 30번을 한 달 만에 끝낼 수 있었던 동력에는, 분명 언니를 향한 열등감이 활시위를 당겼다.


언니도 오빠의 유학을 뒷바라지하던 부모님의 짐을 덜기 위해 피아노가 아닌 다른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결혼 후 분신 같던 피아노가 용달차에 실려 나가던 날, 옹알이하던 딸을 안고 눈이 붓도록 울었다.


엄마의 눈물을 멀뚱히 바라보던 딸은 자라서 발레리나를 꿈꾸기 시작했다. 발레를 위해 태어난 듯한 기럭지와 재능은 축복이자 시련이었다. 예술의 길은 결국 외할아버지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에 달려 있다는데, 정보력은 충분했지만 경제력은 넉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당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주었다.


딸의 꿈을 멈추게 하지 않기 위해 언니 역시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조용히 뒤로 물렸다. 학창 시절 동네에서 예쁘다는 말을 곧잘 듣던 언니의 피부에는 어느새 거뭇한 잡티가 눈처럼 내려앉았다. 이제는 둘째 딸의 미술 재능까지 드러나, 숨 돌릴 틈 없는 뒷바라지를 이어가고 있다.


벌써 등이 굽어가는 언니의 모습을 볼 때마다, 자기 삶을 하얗게 태워 결국 재도 남기지 않겠다는 안타까움이 스친다. 하지만 한때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언니의 선택은 분명하다. 가족을 위해, 남겨둘 몫은 따로 챙겨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명절날, 동생 방에 놓인 피아노를 마주한 언니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으면서도 어딘가 낯설었다. 조심스레 의자에 앉아 건반 몇 개를 눌러보더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픽 웃었다. 그리고는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딸들의 이름을 호탕하게 부르고는 방을 나갔다.


언니에게 피아노는 이따금 떠오를 수는 있어도, 굳이 다시 만날 필요는 없는 첫사랑이다. 나 역시 언니보다 더 나은 연주 실력을 갖추게 되었고, 그로 인한 열등감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건반 앞에 앉을 때면 언니의 리즈 시절이 떠오른다. 눈부시게 예쁘고 도도했던, 나의 '이미연' 이었던 언니.


지금 다니는 교습소에는 아홉 개의 피아노 방이 있다. '반짝반짝 작은 별'을 더듬듯 치는 방에서부터, 체르니를 반복 연습하는 여러 방을 지나, '쇼팽의 즉흥 환상곡'을 연주하는 방까지.


한 손에 피아노 책을 수줍게 쥐고 들어오는 중년 남성, 내일 콩쿠르에 나가도 상 하나쯤은 거뜬히 받을 실력의 백발 어머님,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탄 채로도 빠짐없이 출석하는 젊은 여성분까지 각자의 사정과 속도를 안은 사람들이 각 방에 앉아 말없이 건반을 누른다. 그들의 연주를 들으며 문득 떠오른 생각.


'그들은 왜 피아노를 떠났고, 어떤 이유로 건반 앞에 앉게 되었을까. 그들의 삶은 어디에서 다시 조율되기 시작했을까.'



흐릿한 사진 속에서도 피아노 치기 싫어하는 선명한 표정

예쁘게 땋은 머리 언니 옆에서 시샘하는 바가지 머리 동생




2024.2.26. 오마이뉴스 <배우차유진에세이> 게재
2025.12. 15. 글 개정. <브런치>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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