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한 낮 이태원, 오랜만에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났다. 오랜만에 딸린 식구 없이 홀몸으로 가볍게 나가는 외출에 적잖이 설레었다. 요즘 결혼이 늦어지는 추세라 결혼을 안 한 친구들도 많고, 결혼을 해 아이도 있는 친구도 있다. 살아가는 환경과 그 간 살아온 삶에 따라 우리의 대화의 주제는 다양해지고 달라졌다.
나는 친구들과 대화할 때 이미 내 삶이 되어버린 결혼이나 자식 얘기를 아예 안 할 수 없지만 되도록 안 하려고 노력한다. 내 얘기를 하고, 친구 얘기를 듣고 우리가 공유했던 추억을 말하고 싶다. 엄마로서의 나 말고 그냥 나로서의 나는 어땠나. 그걸 분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적어도 이 시간만큼은 그러고 싶다. 친구의 얘기를 듣다 보면 내가 써두고 까먹은 타임캡슐 속에 넣어둔 편지를 발견하는 기분이 든다. '맞아 그때 이랬었지. 내가 이런 걸 좋아했었지. 난 이런 걸 잘했었어.'
요즘 싸이월드가 복구된다는 소식에 기뻐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나고 보니 아련하고 예뻤던 본인의 과거를 추억하며 꺼내보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친구들과 있으면 싸이월드 사진첩을 열어보지 않아도 그때 그 시절의 나를 만난다. 편한 친구들과 있으면 어릴 적 같이 있었던 때와 오버랩되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기분이다. 보물 찾기에서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지나간 순간이 반갑고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친구들과 만나고 오면 딱히 생각나는 말이나 유의미한 대화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냥 입꼬리 아프게 웃고 떠든 기억만 난다. 어린애들이나 할 법한 유치한 농담과 장난을 치면서 우리는 철없던 시절로 돌아간다. 그때만큼은 계속 꼬리를 물던 고민들을 잠시 내려놓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가 들수록 편하게 수다 떨 수 있는 친구가 귀하다고 느껴졌다. 또 나이를 들수록 아무런 목적 없이 편한 친구를 사귀기 더 어렵다는 걸 느낀다. 점점 사람을 사귈 때 조심스럽고 많은 힘이 들어가는 인간관계에 유일하게 힘을 좀 빼고 만날 수 있는 관계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코로나 거리두기 해제한 후, 시댁으로 시어머님 친구분 세 분이 놀러 오셔서 신랑이 가서 열심히 고기를 구워드린 일이 있다.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처녀시절에 교회에서 만난 친구 세 분이 계시는데 환갑이 넘은 지금까지도 관계를 잘 이어나가고 계신다. 어머님 말씀으로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한결같다고 하신다. 사실 결혼하고 살다 보면 각자의 가정 때문에 멀어지도 하고, 또 각자 처한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멀어지도 한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네 분 모두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풍파들을 겪으셨을까. 그 풍파를 본인이 직접 겪기도 하고 겪는 걸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각자에 자리에 그대로 계시며 또 눅진하게 서로를 기다려 주셨으리라. 나 또한 그런 사람,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언제든 편하게 연락하고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친구, 나는 내 친구들에게 그런 친구로 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