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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자 Apr 25. 2024

고장난 벽시계

세월아 너는 어찌 돌아보지도 않느냐



퇴근하는 길이었다.  한 할아버지가가로수 벤치에 앉아서 나훈아의 ‘고장난 벽시계’를 듣고 계셨다. 지나가다가 다시 돌아와 할아버지 곁에 앉았다.


“할아버지. 이 노래 좋아하세요?”


“예. 좋아하죠.”


나는 할아버지와 두런두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39년생인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아파서 집에 누워 계신다고 했다. 평소엔 할아버지가 돌보고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오면 밖에 나와서 바람도 쐬고 운동도 한다고.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힘들까 봐 그런지 요양보호사가 오면 자꾸 나가서 운동하고 오라고 한다며, 할아버지는 씁쓸하게 웃으셨다.



나는 다시 집으로 걸어가며 그 옛날 남편의 사업이 기울어 처음으로 돈 벌러 나섰을 때가 생각났다. 2008년의 일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교차로에 실린 구인광고를 보고 처음으로 찾아간 곳이 바로 교보문고 서점이었다.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출근해서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로 닦으며 2시간 만에 청소를 마쳐야 서점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서점 문이 열리면 미화원인 우리는 3,4층 사이의 소방시설 공간에 올라가 쉬었다. 벽면은 시멘트이고 위생시설이 아주 빈약했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희미하지만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기억은 또렷하다. 그래도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주며 노래도 부르고 점심도 먹고 가져온 간식도 나눠먹고 피로를 풀곤 했다. 그 당시 유행하던 노래가 나훈아 씨의 ‘고장난 벽시계’였다.



“고장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쉬곤 했는데 자꾸만 다시, 다시 한 번 더 불러보라고 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동생 뻘 되는 덕남이와 오이례 형님이었다. 노래 가사를 외우고 싶은데 잘 안 된다기에 내가 부를 테니 종이에 적어보라 했는데 두 사람은 나보고 적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종이에 가사를 적어 보여주며 따라 불러보라 했더니 따라부르지 못했다. 그제야 알게 된 사실이 두 사람은 글을 읽지 못한다는 거였다. 오이례 형님은 나에게 젊을 적 자신이 장사를 하며 돈을 모았던 일을 말해준 적이 있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궁이 근처에 흙을 파서 묻어둔 작은 항아리에 꼭 만원씩을 넣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도 아무리 힘들어도 꼭 돈을 모아놔야 한다며 일러주었는데... 평생 고생하며 산다고 한글도 모르고 살았구나.



마침 서점인지라 가장 기초적인 가,나,다,라를 배울 수 있는 교재를 사서 두 사람에게 한글을 가르쳐주기로 했다. 그때 우리는 점심시간이 되면 소방시설 공간에 작은 상을 펼쳐 밥을 나눠먹었는데, 밥을 먹고 나면 반찬통을 치운 자리에 책을 펼치고 한글 공부를 했다. 그렇게 하루 한 시간 정도를 두 사람을 앞에 앉혀놓고 한글을 가르쳤다.



두 사람은 처음 자신의 이름도 써보고 궁금했던 단어들을 써보았다. 그중 아버지와 어머니를 어려워했다. ‘ㅏ’와 ‘ㅓ’를 자꾸만 헷갈려했다. 그래서 ‘ㅏ’는 남자의 성기를, ‘ㅓ’는 여자의 성기를 떠올려보라 했더니 확실히 알아 들어서 넘어갈 수 있었다. 그 후 서로 직장이 바뀌며 헤어지게 되었고 한글 공부도 이어갈 수 없었다. 그들이 그렇게 읽고 싶어했던 ‘고장난 벽시계’ 가사는 다 써보지도 못했다.



그 때 두 사람은 나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살면서 처음 들어본 선생님이라는 호칭. 없이 사는 사람들이었지만 너무나 순수했던 사람들이었다.



“세월아 너는 어찌 돌아보지도 않느냐”



‘고장난 벽시계’의 가사가 오늘따라 가슴 아프게 와 닿는다. 세월이 흐르고 이젠 두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수 없다. 아. 그 시절이 그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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