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에서 수없이 이루어지는, 의미 있는 또는 의미 없는 만남들에 대한 보고서와 같은 책입니다. 과연 사람들의 만남과 헤어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밋밋한 듯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하루키의 솜씨는 대단합니다. 구성의 탄탄함이라든지 또는 캐릭터의 참신함이랄까 그런 것들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작품에는 이런 것들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있습니다. 찬찬히 읽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인생살이에서 만남과 헤어짐, 그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나를 그 정도로 소중히 여겨줄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과연 인생에서 만남과 헤어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어느 정도나 나에게 소중할까요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자 소재는 만남, 인연입니다. 주인공인 다자키 쓰쿠루와 그의 고등학생 시절 단짝 친구인 4명은 단짝 시절에는 서로에게 어느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쓰쿠루는 그의 이름에 걸맞은(쓰쿠루는 한자로 지을 작(作), 즉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그가 오랫동안 꿈꾸던 역을 만드는 일을 하고자 혼자 도쿄의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되고 나머지 4명의 친구들은 나고야에 남게 되면서 이들의 인연과 우정에 균열이 생기게 됩니다. 쓰쿠루는 이유도 모른 체 이 친구들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고, 그로 인해 마음에 응어리를 가지고 20대를 거쳐 30대 중반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생긴 스스로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여자 친구의 권유로 4명의 그 시절의 친구들 중 살아있는 3명의 친구들을 하나씩 만나는 순례를 하게 됩니다, 멀리 핀란드까지.
생각해보면 참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어린 시절의 소중한 인연이라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아님을 확인하게 됩니다. 쓰쿠루가 혼자 나고야와 친구들의 무리를 떠났다는 이유만으로 나머지 친구들은 그를 그룹에서 제외시켜 버립니다, 사건의 경위와 진위 여부조차 파악하려고 하지 않고.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보호하고 지켜야 한다는 명분 때문에, 그렇게 해서라도 나머지 그룹은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에요.
인생에서 만남과 인연, 그리고 '소중한' 만남과 '소중한' 인연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쓰쿠루와 그의 친구들 사이에는, 정말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일까요? 아니, 정말 그들은 서로서로에게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였을까요? 조금 심하게 표현하면, 눈 앞의 이해관계에 의해 얼마든지 서로의 관계가 깨질 수도 있는 그런 사이였을까요.
나고야에 남아 있던 친구들은, 쓰쿠루에게 겁탈을 당했다는 시로의 이야기를 듣고 어느 누구도 사실 관계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그냥 옆에 있는 시로의 눈치를 살피며, 옆에 없는 쓰쿠루를 희생양으로 삼아서 현상 유지를 하는데 급급합니다. 그 결과 모두에게 1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마음의 짐이 쌓이기만 하고 해결되지는 않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결국 남아 있는 4인의 그룹도 와해되고 맙니다. 소설을 통해 접해서 조금 특별하게 보이기는 합니다만 찬찬히 나와 주변을 돌아보면 이런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남을 알 수 있습니다. 평생을 함께, 같이 가자고 맹세(?)하고 다짐했던 그 시절 그 친구들 중에, 현재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관계를 돈독하게 꾸준히 유지하는 이들이 주변에 얼마나 있나요?
# 하루키의 캐릭터들, 일상과 현실을 이야기하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다자키 쓰쿠루는, 아마도 그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무기력하고 개성 없어 보이는, 그래서 밋밋하고 특징 없고 재미 또한 없는 캐릭터의 전형과도 같은 인물입니다. 그를 포함해서 5명으로 그룹이 구성되었지만 그의 이름에만 색채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에 걸맞게 가장 평범하고 무난한 삶을, 최소한 겉보기에는 영위해 갑니다. 어찌 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의, 가장 평균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에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큰 상처와 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작가가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이 소설의 맨 처음 몇 행을 쓰고는 어떻게 진행될지, 어떤 인물이 나올지 아무것도 모른 체 썼다'라고 했는데 사실 너무 평범한 인물들이어서 물 흐르듯 써 내려갈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고 사는 몸과 마음의 무게는 결코 평범하지도 가볍지도 않습니다.
이 작품에서 '하이다'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맨 처음에 한 생각은,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캐릭터 같은데 너무 어이없이 마무리한다(그냥 주인공 곁에서 사라져 버립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소설 속 인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내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다 보니 충분히 수긍이 가는 인물이었습니다. 내 주변에도 하이다 같이 잘 지내다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사람들이 분명히 있고, 반대로 나도 누군가에게 하이다와 같은 행동을 한 적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 스스로가 쓰쿠루와 비슷한 캐릭터라는 생각을 이 작품을 읽는 내내 했습니다. '그러나 쓰쿠루 본인에 대해 말하자면, 남에게 자랑할 만한, 또는 이렇다 할 특징을 갖추지 못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느꼈다. 모든 점에서 중용이었다. 또는 색채가 희박했다.' 이 문장에 제 이름을 넣어서 읽어도 거의 맞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이 부분이 살면서 좀 기운 빠지게 만들기도 하고 또 가끔은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했는데 작품의 끝 무렵에 나오는 결론과 같은 문장이 힘을 주네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는 색채 없이 그냥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힘들게 하는 건 아니다.' 개성이 없으면 개성이 없음을 개성으로 삼아 열심히 살면 됩니다.
# 통찰력 있는 하루키의 사고와 이를 반영한 문장력. 하루키의 문장을 읽는 재미도 꽤 큽니다.
그러나 쓰쿠루 본인에 대해 말하자면, 남에게 자랑할 만한, 또는 이렇다 할 특징을 갖추지 못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느꼈다. 모든 점에서 중용이었다. 또는 색채가 희박했다.
자기 자신의 가치를 가늠하는 일이란 마치 단위가 없는 물질을 계량하는 것과 같았다. 저울의 바늘이 지잉 소리를 내며 딱 한 군데를 가리키지 않는다.
"한정적 목적은 인생을 간결하게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쓰쿠루는 생각했다. 자신이 없는 동안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거리를 두게 되었다. 어떤 부적절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그러나 그것이 도대체 어떤 일인지, 어떤 일일 수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원인을 따지고 들면 거기서 어떤 사실이 드러날지, 그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던 거였겠지.
"실례일지는 몰라도 한정된 관심을 가질 대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라도 발견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한 성취 아닌가요?"
"요리사는 웨이터를 증오하고, 그 둘은 손님을 증오한다. … 자유를 빼앗긴 인간은 반드시 누군가를 증오하게 되죠."
창의력이란 사려 깊은 모방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현실주의자 볼테르가 한 말이에요.
아무리 평온하고 가지런해 보이는 인생에도 어딘가 반드시 커다란 파탄의 시절이 있는 것 같거든요. 미치기 위한 시기라고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인간에게는 아마도 그런 전환기 같은 게 필요한 거겠죠.
"늦고 안 늦고는 논리성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 나중에야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았다 해도 그건 논리성과는 다른 문제겠지."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봐야만 하는 걸 보는 거야.
분명 자기에게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낙담케 하는 뭔가가 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 그는 소리 내어 말해 보았다. 결국 남에게 내밀 수 있는 건 뭐 하나 가진 게 없어. 아니, 그러고 보면 나 자신에게도 내밀 것이 하나도 없을지 모르지.
돈을 들인 익명성, 그것이 이 사무실의 기본적인 콘셉트인 것 같았다.
"회사 생활을 통해 배운 또 한 가지는 이 세상 대부분의 인간은 남에게 명령을 받고 그걸 따르는 일에 특별히 저항감을 갖지 않는다는 거야. 오히려 명령을 받는 데 기쁨마저 느끼지. 물론 불평불만이야 하지만 그건 진심이 아냐. 그냥 습관적으로 투덜대는 것뿐이야. 자신의 머리로 뭔가를 생각하라, 책임을 가지고 판단하라고 하면 그냥 혼란에 빠지는 거야. 그러면 바로 그 부분을 비즈니스 포인트로 삼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던 거지. 간단한 일이야 알겠어?"
"우리의 목표는 무슨 좀비 같은 걸 만들어 내는 건 아냐. 회사가 바라는 대로 움직이면서도 '나는 스스로 생각한다.'라는 마인드를 품을 수 있는 요원을 육성하는 거야."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 당하고 싶지 않은 것을 데이터로 만들고 분석하여 그것을 비즈니스로 삼았다. 그게 출발점이란 말이지?"
스스로에게 설명하는 것 역시 너무 어렵다. 억지로 설명하려 하면 어딘가에 거짓말이 생겨난다.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는 색채 없이 그냥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힘들게 하는 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은 밤의 새다. 조용히 뭔가를 기다리다가 때가 오면 일직선으로 그쪽을 향해 날아간다.
가 버린 시간이 날카롭고 긴 꼬챙이가 되어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가족들은 쓰쿠루가 벌써 폐기 처분해 버린 옛날의 모습을 그에게서 찾으려 했다.
아무튼 아버지에게 비범한 비즈니스 재능이 있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필요한 것을 재빨리 손에 넣고 불필요한 것은 철저히 버리는 재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