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틈 20분
전화영어가 완벽한 취미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약간의 의무감과 약간의 자신감이 붙어 작은 흥미가 생겼다.
외국계 기업에 다닐 때 처음 시작한 전화영어가 1년이 지나 벌써 1년 반이 넘어간다. 회사에는 생각보다 외국인이 많았고 어렸을 때부터 외국인 친구 사귀기가 버킷 리스트일 정도로 외국인 친구를 만들고 싶었던 내 입장에서는 아주 만족스러운 부분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외국인과 부딪힐 일은 생각보다 많았다. 엘리베이터를 잡아주거나 같이 타거나 또는 로비에서 만나는 등 예상치 못한 회사 곳곳에서 외국인들을 만났다. 처음엔 간단한 인사조차 수줍었고 외국인들도 한국에 적응한 건지 같이 수줍어했다. 하지만 회사에 적응하고 자주 마주치는 얼굴들이 낯이 익어갈 때쯤 간단한 인사와 눈인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 외국인과 대화를 하려고 할 때면 한참 동안 문장을 생각하고 파파고로 확인을 하고 문장을 되뇌었다. 간단한 말을 꺼내려고 할 때조차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고 손은 땀을 쥐었다. 하지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40분씩 전화영어를 하면서 간단한 문장이라도 전보다 빠르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1년 넘게 전화영어를 하면서 매일 귀찮음을 느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었다.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너무나도 귀찮지만 전화가 시작되는 순간 귀찮음이 사라지는 매직을 매일 느꼈고 지금도 느끼고 있다.
이런 성취감에 힘입어 다른 팀 영국인 동료와 언어교환을 시작하였고 대화 속의 말을 전부 알아듣기는 어려웠지만 알아듣는 척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법을 익혔다. 언어 교환은 영어 실력 향상에 확실히 효과가 컸다.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차원이 존재한다면 외국인과의 대면은 전화영어와는 또 다른 차원이었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내가 그들의 영어를 못 알아들을 때면 알아듣지 못한 데에 대한 부끄러움보다 내가 알아듣지 못하게 말하는 상대방의 발음을 가늠하게 되었다. (내가 잘한다는 것이 절대 아니라 나 자신을 자책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한참 셜록홈즈에 빠져 정주행을 달리며 영국인과 언어교환을 하니 자연스럽게 영국 발음을 미국 발음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미묘하게 다른 영국 발음은 내가 알던 단어들을 처음 듣는 단어로 만들었고 다름을 구별하며 또 새롭게 배워가는 재미가 되었다. 교실 속 짝꿍과 연습하던 교과서 속 다이얼로그는 이 날을 위한 것들이었을 것이다. 교과서로만 배우던 상황 속 영어 대화가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니 그것 또한 재미있었다.
확실히 재미있었다. 더욱더 어학연수를 가고 싶어졌다. 외국인들과의 대화는 나의 부족함을 지속적으로 깨닫는 원동력이 되었고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질수록 어학연수에 대한 갈망이 커져갔다. 죽기 전에 꼭 외국에서 1년 넘게 살다 올 것이다. 한국어와 영어를 자유자재로 쓰고 한국어를 까먹어 웃음이 나오는 상황이 되는 그날을 꿈꿔본다. 내가 대학생도 아니고 이미 직장을 다니고 있는 상태에서 코로나를 헤치며 당장 어학연수를 떠날 수는 없지만 어학연수를 꼭 가게 되는 그날까지 귀찮은 전화영어는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