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수집

하루를 시작하는 향과 마무리하는 향

by 소금빵

나는 요즘 향기에 푹 빠져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향기를 모으는 일에 재미를 보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향기는 기억이다. 비싼 값을 지불하는데 큰 망설임이 없다.


여행에 가져간 향수 또는 맡은 배역에 뿌리는 향으로 그 여행지와 배역을 기억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여행지에서 우연히 알게 된 향을 좋아하고 일부로 좋은 기억으로 만들고 싶은 향을 챙겨가기도 한다. 이렇게 우연히 알게 된 향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 선택의 즐거움을 준다. 바쁘고 뒤엉키는 출퇴근길, 회사의 고단함 속에서 문득 내가 고른 향을 맡을 때면 잠깐이나마 기분이 환기된다.


출근할 때는 그날의 기분과 날씨에 따라 향을 선택하고, 퇴근 후 샤워를 할 때면 하루를 마무리하고 기분 좋게 잠들 수 있는 향을 고른다. 하루를 시작하는 향은 대게 향수와 바디로션이고 저녁을 마무리하는 향은 조금 더 다양하다. 샤워할 때 쓸 수 있는 바디워시, 바디 스크럽, 바디 젤리, 그리고 샤워 후 마무리로 바디 스프레이 또는 바디 오일이 있다. 마지막으로 침대에 누워 룸 스프레이로 침구와 잠들 공간에 뿌려주고 은은한 향초로 더 포근한 잠자리를 만든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향뿐만 아니라 지속력, 색깔, 제형 등 선택지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같은 제품이라도 결코 한 가지에 만족하기는 어렵다. 일이 고된 날이면 아로마 테라피를 떠올리면서 라벤더를, 숲 속 고요함을 느끼고 싶은 날이면 머스크를, 기분 전환이 필요하면 러쉬 스노우 페어리, 플럼을 찾는다.


샤워를 하는 행위는 나에게 단순히 씻는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씻는 것은 목욕재계를 하는 것처럼 나의 몸과 마음을 정리해준다. 나의 샤워 시간은 보통 40분 정도로 나도 모르게 시간이 지나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몸에 김이 날 정도로 뜨거운 물에 몸을 맡기면 내 몸에 붙었던 하루의 고단함이 물에 씻겨 가는 기분이다. 이렇게 씻고 나면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기분 좋은 향이 나의 하루를 마무리해준다. 운동할 때도 준비 운동과 마무리 운동이 중요하듯이 하루의 시작과 끝을 향으로 만들어 본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모인 공간에 내가 좋아하는 향이 더해져 나만의 안식처를 만들어 준다.


하나 더 기분 좋은 기억

며칠 전 운동을 가고 있는데 추운 1월임에도 불구하고 손이 시리지 않은 온도를 느꼈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나를 스치는데 갑자기 이 무렵 여행 갔던 상해와 홍콩이 생각났다. 상해와 홍콩은 우리나라보다 더 남쪽에 있던 탓에 한 겨울이더라도 코트 하나면 거리를 거닐기 거뜬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겨울에 따뜻한 지역을 찾는 철새처럼 매 겨울마다 우리나라를 떠났다. 그곳의 겨울은 푸르고 잔디가 있었으며 설레는 바람이 불었다. 새로운 장소에서 먹는 맛있는 음식과 가벼운 옷차림, 이곳에 없는 색다른 분위기 속에 새긴 기분 좋은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바람에 향기가 실려온다. 그곳에서 내가 만든 기분 좋은 기억도 바람과 함께 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