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하반기, 코로나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봄이 오기도 전에, 도시 전체가 조용히 문을 닫아갔다. 나는 일하던 스타벅스와 치과병원을 그만두고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치대를 시작하면 자유롭게 한국을 오갈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지냈다.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졌다. 늦잠을 자고, 엄마와 금오산 자락을 천천히 걸었다. 주말이면 부모님과 함께 인적 드문 시골길로 차를 몰았다. 늘 달리기만 하던 내 삶에, 처음으로 '쉼표'가 생긴 시간이었다.
쉼표의 끝을 향해 출국 시기가 다가올수록, 내 짐가방은 무거워져만 갔다. 그 속에는 옷보다도, 다시 집을 떠나야 한다는 마음이 더 많이 들어있었다. 그래도 긴장으로 가득 찬 내 마음속에는 미지의 세계의 기대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치대를 시작한 첫 해, 세상은 여전히 멈춰 있었다. 모든 수업이 온라인이었다.
아침 수업 5분 전에 눈을 떠 노트북을 켜고, 간단한 아침과 커피 한 잔을 손에 쥔 채 소파에 앉아 수업을 들었다. 가끔은 수업만 틀어놓고 다시 잠들기도 했다. 그렇게 놓친 출석 점수가 몇 점이더라.
실습이 있는 날에만 학교에 가서 동기들을 만났고, 그렇게 친해진 친구들과는 주말마다 공부하기도 하며 조심스럽게 놀러 다녔다.
시험마저 온라인으로 치렀다. 카메라를 켜고 감독 프로그램을 설치한 채, 마치 감시받는 듯한 긴장 속에서 문제를 풀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구조는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하던 시간은, 밤늦게까지 남아 임상 실습실(Simulation Clinic)에 남아 나 혼자 조용히 연습하던 시간이다. 희미한 헤드라이트 형광등 아래, 모형 환자와 단둘만의 시간. 음악을 틀고, 드릴이 돌아가는 소리 속에서 손끝으로 미세한 감각을 익혀갔다. 수복 연습, 크라운 깎기, 틀니 제작까지. 손끝에서 작은 성취감이 피어날 때마다 '이건 내가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3학년이 되면서, 나는 처음으로 진짜 환자를 마주했다.
환자의 고통을 듣고, 문제를 찾아내어 직접 치료하는 일. 내 손끝에서 통증이 사라지고, 거울 앞에서 환자가 미소를 되찾을 때 느끼는 그 벅찬 감정.
단순한 충치 치료도, 신경치료도, 심지어 작은 미용 수복 하나도 모두 달랐다. 누군가의 웃음을 내 손으로 되돌려주는 일. 그게 이렇게 벅찬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진료실에서 스쳐간 수많은 얼굴들, 그 속에 담긴 웃음과 눈물, 그리고 내 안에 남은 잔향을 기록하고 싶었다. 웃기고, 따뜻하고, 때로는 가슴이 먹먹했던 순간들. 유학생으로서의 외로움, 치과의사로서의 성장,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얻은 삶의 조각들.
그 모든 이야기는 환자들의 치아 속에 담겨 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