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져야 보이는 길

by 유기

실패는 내 삶을 흔들어 깨우는 경종이었다. 대학 시절에도, 지금 의대 학사 편입에 실패한 지금도, 다시 눈을 뜨게 만들었다.


미국에 돌아온 뒤, 나는 스스로에게 끝없는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야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하루를 쌓아갈 수 있을까.


집 근처 스타벅스 창가 자리에 앉았다. 커피머신이 뿜어내는 낮은 진동음, 잔을 부딪치는 소리, 낯선 사람들의 대화가 뒤섞여 흐르는 가운데, 낡은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 위로 쌓여가는 글자들에, 나는 처음으로 내 삶의 밑그림을 진지하게 그려 넣기 시작했다.


나는 자유를 좋아했다. 하나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경험을 통해 세상을 넓게 느낄 수 있는 삶. 사랑하는 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나누며, 순간들을 온전히 함께할 수 있는 삶.

그렇다면, 나에게 자유를 줄 수 있는 직업은 무엇일까? 자유란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걸까? 곱씹을수록, 요즘 세상에서 자유는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꽤 큰 비용이 필요한 현실적 조건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동시에 깨달았다. 많은 돈을 좇다가 나 자신과 곁에 있는 사람들의 행복을 잃고 싶지는 않다는 것을.


결국 나는 다시 물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면서도, 물질적으로 안정된 직업은 무엇일까?




혼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답을 이어가다 보니, 저녁이 되어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자, 맛있는 음식 냄새가 퍼졌고, 거실에는 누나와 그녀의 오랜 친구가 앉아 있었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우리 셋은 오래전부터 편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그날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식탁 위에 흐르던 대화만큼은 유난히 뚜렷하다. 서로의 미래를 이야기하다가, 내 고민이 잠깐 화제로 올랐을 때였다.


"요즘 워라밸 깡패 직업은 치과의사야. 미국에선 수입도 좋고, 자리만 잡으면 스케줄도 자유롭대. 너 한번 알아보는 게 어때?."


치과의사? 단 한 번도 진지하게 떠올려본 적 없는 직업이었다. 그날 밤, 방으로 돌아와 무심코 노트북을 열고 구글에 검색창을 띄었다. "The best work-life balance jobs"을 검색했다. 여러 사이트를 둘러보다가 놀랐다. 치과의사는 늘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었다. 안정적인 수입, 스스로 조율할 수 있는 일정, 그리고 독립적인 개업의 길. 화면 속 설명은 너무나 달콤해 보였다. (물론, 나중에 실제로 치과의사가 되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단순화된 환상인지 알게 되었지만.)


나는 곧장 치대 입학 과정을 검색했다. 필요한 학위, 이수해야 하는 과목들, 눈에 띄는 교외 활동, Dental Admission Test (DAT) 시험.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은 문구, "유학생 지원 가능."

의대와 달리, 미국 시민권이 없어도 문은 열려 있었다. 물론 경쟁은 훨씬 치열했다.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진 다른 지원자에 비해 월등히 좋은 이력이 필요하긴 했지만, 내게는 오히려 마지막으로 잡을 수 있는 희망처럼 보였다.


그때부터 나의 하루는 단순해졌다. DAT를 붙잡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원서를 채우고... 그 시절 나를 만난 사람이라면 내 눈에 서린 독기를 기억할 것이다. 간절했고, 절박했고, 무엇보다도 후회는 허용할 수 없었다.


3개월 반이라는 짧은 시간 끝에, 마침내 원서 '제출'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긴 기다림이 시작됐다. 그 기다리는 시간 동안, 새벽에는 스타벅스에서 바리스타로, 오전과 오후에는 동네 치과에서 원무 일을 했다. 천문학적인 원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전 직장에서 모아놓은 돈이 있었지만, 머릿속엔 면접을 보러 비행기를 타고 다닐 날들이 그려졌다. 가능한 한 더 모아야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수차례 비행기를 타고 면접지를 오갔다. 서부의 화창한 날씨, 중부의 황량한 평야, 동부의 역사가 넘치는 도시, 남부의 여유로운 바닷가. 학교마다 풍경은 달랐지만, 모든 여정이 내 삶의 새로운 장면을 선물해 주었다. 지갑은 얇아졌지만, 가슴속엔 다시는 잊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예전에 본 일본 광고가 떠올랐다. 인생을 마라톤이라 가르치던 우리에게, '누가 인생을 마라톤이라고 했는가?'라고 묻던 장면. 정해진 코스를 벗어나 각자만의 길을 향해 달린다. 갈림길 앞에 서서 고민하는 선수, 침대에 누워 쉼을 선택한 선수, 끝까지 완주한 선수. 모양은 달랐지만, 모두가 자기만의 열정을 좇아 달리고 있었다. 그 메시지가 마음속 깊이 파고들었다.


나는 그 길 위에서 내 미래를 그렸다. 환자의 아름다운 미소를 되찾게 해주는 치과의사, 라포를 쌓아 마음까지 치료하는 사람. 언젠가 내가 세울 병원 로비 한편엔 작은 카페를 두고 싶었다. 환자와 보호자가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공간.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긴장을 풀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꿈. 치료가 단순히 아픔을 덜어내는 행위가 아니라, 삶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의 경험 모두가 과정이었듯, 앞으로의 순간들 역시 내 삶을 이루는 조각이 될 것이다. 실패가 없었다면, 나는 이 길을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실패는 나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내 발밑에 새로운 길을 놓아주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오늘도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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