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차별'이라는 단어를 몰랐다. 몰라서 덜 아팠고, 그래서 종종 웃을 수 있었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외국인 비율이 굉장히 적었던 학교였다. 심지어 미국인 중에서도 거의 95프로가 백인이었던 학교였는데, 유색인종이라고는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적었다. 이런 환경에서 머나먼 한국에서 온 '나'라는 존재는 현지인들에게 굉장한 구경거리였다. 손가락질하며 놀리는 아이들이 있었고, 호기심을 가지고 나와 친하게 지내려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이었던 걸까, 내가 겪었던 일화들이 차별이었다는 것을 인지했었을 때는 이미 다 큰 성인이 되었을 때였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 웃고 넘겼던 내가 오히려 다행이었던 건지, 아니면 더 슬픈 건지 잘 모르겠다.
나에게 가장 강력하게 기억이 남는 사건은 내가 중학교 축구부에 가입하려 했을 때다. 학교 운동부에 들어가는 가입 절차에 대해서 잘 몰랐던 우리 가족은, 뒤늦게 축구부에 신청했다. 하지만 웬걸! 이미 축구부 입단테스트 기간이 지나버렸던 것이다. 아직 공식적으로 부서 활동은 시작하지 않았지만, 입단 테스트도 다 끝났고, 이미 멤버도 다 정해져 있던 상태였다.
나는 축구부 감독님을 찾아가 내 사정을 말씀드리고 축구부에 들어갈 수 있는지 여쭤봤다. 감독님은 내 이야기를 잘 듣고 며칠 몇 시까지 학교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말씀해 주셨다.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함께 즐거운 발걸음으로 Dick's Sporting Goods로 향했다. 다양한 브랜드의 축구화를 신어보며 거울 앞에서 멋진 포즈도 취해봤다. 내 눈에는 검은색 아디다스 축구화가 가장 예뻤다. 가게를 나오는 내 양손은 축구화와 종아리 보호대로 가득 넘치게 들고 있었다.
기대를 가득 품고 첫 축구 연습에 나갔다. 저 멀리 운동장에 축구부 학생들이 모여있었고, 나는 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쭈뼛쭈뼛 다가가 부족한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 모든 시선에 나에게 쏠렸고 나를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조금의 어색함을 뚫고 한 학생이 내 인사를 받는 대신 입단테스트는 이미 끝났으니 새로운 멤버는 더 이상 뽑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난 감독님이 축구부 입단을 허락해서 연습하러 나왔다고 얘기했지만, 그 학생은 비웃으며 팀 스포츠에 대화도 되지 않는 사람은 필요 없다며 돌아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친구가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눈치 없이 학생들 무리 옆에 앉아서 종아리 보호대를 착용하고 축구화를 신기 시작했다. 옆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그 또한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영어가 자연스러워졌을 때쯤 그 아이가 했던 말을 다시 곱씹어보니 차별적 말투를 사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그 학생이 정확히 했던 말은 "Go back to where you came from!"라고 맥락상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진 영어를 잘하지 못했던 나는 몇몇 단어를 통해서 '네가 왔던 곳으로 가봐!' --> '난 방금 학교에서 왔는데... 학교에 다시 가보라는 건가?' --> '아! 내가 등록이 됐는지 학교에다 확인하라는 건가?'로 초월해석을 해버렸고 결국 정신적으로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첫 연습을 한 날, 내가 골대라인에서 하프라인을 넘기는 패스를 한적이 있다. 이 한 번의 패스에 분위기가 풀리며, 그날은 의외로 나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겨졌다.
차별은 상황과 배경을 가리지 않고, 꼭 유학생인 나에게만 일어나는 건 아니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겨울방학, 누나와 보스턴 길가를 걷고 있었을 때였다. 때는 추운 겨울이었고 우리는 식당들과 카페, 그리고 명품 가게들이 모여있는 뉴버리 스트릿 (Newbury Street)을 가로질러 전철역으로 향해 걷고 있었다. 당시 보스턴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누나는 투어 가이드처럼 나에게 여기는 뭐가 유명하고, 저기는 뭐가 맛있는지 열심히 설명하면서 걷고 있었다. 마침 우리가 걷고 있는 곳에 LA Burdick's라는 유명한 초콜릿 가게가 있었다. 누나는 저 가게를 가리키며 '저기 핫 초코 엄청 유명해! 완전 꾸덕꾸덕하고 그냥 초콜릿 그 자체야'라며 입맛을 다시며 설명하고 있었다. 날씨가 날씨인지라 내가 '들어가서 핫 초콜릿 하나 사서 마시면서 갈까?'라고 물어보며 가게를 향해 몸을 돌렸다.
누나와 나는 계속해서 '초콜릿'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가게로 들어가고 있었는데 반대편에서 한 흑인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가까워질수록 우리를 계속 쳐다보면서 걸어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서로가 가까워졌을 때 그 흑인 남자는 우리를 향해 'Yellow monkeys, yellow monkeys'라고 중얼거리며 내 옆을 지나갔다. 순간 벙쪘다. 그 단어가 어디서 어떻게 쓰이는지, 이제는 알고 있었다. 왜 저 흑인은 나와 누나한테 갑자기 인종차별적인 단어를 외치는 것일까?
'Yellow monkey'는 미국에서 흔히 일본인/동양인을 비하할 때 쓰는 단어다. 우리가 황인종 (yellow)이면서 원숭이 (monkey)를 닮았다는 데에서 유래된 비속어이다. 그리고 우연히 누나와 내가 계속 사용하고 있었던 '초콜랫; Chocolate'은 미국에서 흑인을 비하할 때 쓰는 단어다. 누나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진짜 초콜릿 가게에 들어가려고 그 단어를 사용했는데 한국어를 알아들을 리가 없었던 그 흑인 남성에게는 누나와 내가 자신을 가리켜 욕을 하고 있을 거로 생각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무지 덕분에 덜 아팠을지도 모른다. 무지라는 방패 뒤에 숨어 웃을 수 있었던 추억들만큼이나 나의 무지 속에서 던진 말과 태도는 누군가에게 또 다른 차별이 됨을 이제야 깨달았다. 어쩌면 어린 시절 그 친구들도 나와 같은 깨달음을 얻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