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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짱이 Oct 09. 2023

진로 찾아 삼만리

#1 나의 과거 이야기

  경기도 외곽의 촌동네에서 영재 소리를 들었다. 아마 몇 없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은 학원에서 어떤 수작을 부리려고 했을 말이었겠지만, 그당시 부모님에게는 가벼운 말이 아니었나보다. '우리 아이가 굉장히 똑똑하다!'라는 말에 취해 그날부터 흔히 똑똑한 아이가 가질 법한 직업을 추천하기 시작했다. 아직 어린 아이에게는 교수니 변호사니 하는 말들에 별 의미없이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부모님이 단지 머리가 좋아 대견해하는 감정만은 기쁘게 먹고 자랐다. 그 감정이 나를 옥죄는 줄도 모른채. 


  나는 타고나게 감각이 민감하고 생각이 많은 아이였다.(물론 지금도 그렇다) 피부에 닿는 것, 코를 괴롭히는 불쾌한 냄새, 시끄러운 소리를 극렬하게 싫어해서 언어 기능이 발달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주변 사람들을 상처주었다고 한다.(^^;) 또 일곱 살 때였나, 할머니 손을 잡고 자다가 '죽음'을 떠올리고 펑펑 운 적도 많다. 아마 애니메이션 "플랜더스의 개"를 보고 자서 그랬던 것 같다. 생명은 왜 죽는걸까, 잠에 들때마다 고민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재밌는 이야기로 친구들을 웃겨주는 게 좋았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게 좋아서 집에서도 맨날 영화 명대사를 따라하며 가족들을 웃겨주기도 했다. 누구를 닮은 건지 목소리가 커서 학교에서 항상 위원을 맡기도 했다. 지금에서야 내가 리더십이 있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걸 안다. 목소리만 컸지 상황을 판단하고 정리하는 능력이 내겐 없었다. 나는 단단하기보다 굉장히 무딘 사람이었다. 싫고 좋고는 분명하지만 상황에 따라 함께 흘러가기도 하는 그런 성격이니까. 


  문제는 내가 나에 대해 무지했다는 거다. 스스로를 몰랐기에 주변에서 하는 소리에 쉽게 흔들리고 내가 가야하는 길을 정하지도 못했다. 공부를 잘하니까 좋은 대학에 가서 머리쓰는 일을 하라는 부모님. 받아들이고 말 것도 없이 당연한 명제였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머리 쓰는 일'을 해야한다는 무의식의 강박이 있는 것 치고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애초에 나는 승부심이 강한 성격도 아니었고, 나의 호기심을 충족하는 선에서 공부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었다. 웃긴 말로 함께하는 시간을 즐겁게 만들고 혼자만의 공상에 빠지는 걸 더 좋아했다. 그냥 적당~히 즐기면서 살고픈 사람. 그게 나였다. 


  '대학' 보다는 '진로'에 초점을 맞추고 고민을 해야하는데, 여전히 '대학'이라는 외부적 조건에만 생각이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남들과 똑같이 점수 맞춰 대학 갔고, 대학 가서는 놀자판이었다. 사실 놀자판 보다는 회피에 가까웠다. 경기도 촌동네에선 나름 공부를 했다고 꼴에 대우를 받았는데, 대학에 오니 이게 웬 걸. 두 세개 외국어는 기본이요, 큰 규모의 공모전 수상에, 학업과 사업을 병행하는 학생도 있었다. 부모님에게 외치고 싶었다. '머리 쓰는 일은 이런 애들이 해야 한다구요!' 


  그래서 도망쳤다. 나도 은연중에 스스로가 굉장히 뛰어나다고 생각해왔는지, 모자란 나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익히 들었던 머리 좋다는 소리는 독약이었다. 세상에 나와보니 영리한 사람들은 무수히 많았고 나는 그들에게 잽도 되지 않았다. 현실을 받아들이기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부모님이 심어놓은 이상적인 나의 모습과 다른 초라한 현실의 간극에 나는 지쳐갔다.


  오히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나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조금은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내 장점을 발휘하며 살자고 생각했다. 어쨌든 벌어먹고는 살아야하니 어떤 일을 할까 고민을 해야할 때였으니까. 그런데 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벌레 한 마리가 남아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익히 들어왔던 '머리 쓰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 이 말이 줄곧 나를 괴롭히고 있다. 외부에서 보여지는 나를 놓지 못하고 있나보다. 스스로 뛰어나지 않음을 인지하는 것과 무의식에 남은 관념을 떨쳐내는 건 별개의 일이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 간 이 둘의 간극으로 인해 허송세월했다. 더 나아가지도 아예 물러나지도 못하는 애매한 줄에 놓여버렸다. 


  그래서 나름대로 나만의 진로 찾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한다. 과거의 나를 이해하고 현재의 나를 바라보고 싶어서. 또 미래의 나를 그려보고 싶어서. 요즈음 햇볕이 따사롭고 바람이 선선해서 나를 잡아먹고 있는 문장을 떨쳐내고 나아갈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변화하고 싶고, 달라지고 싶다. 뚜렷하게 나를 소개할만한 일을 하지 않고 하루하루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아가는 나지만 마음을 쏟는 일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싶다. 겉으로 보여지는 조건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일을 성취할 것이다.


 생각보다 글이 길어져서 프로젝트의 개요는 다음 편에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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