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500ml 생수병 하나로 11일을

by 김정은


500ml 생수병 하나.

11일을 버틴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8월, 폭염경보가 연일 이어지던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오후 4시, 업무가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평화로운 시간.

에어컨 바람을 쐬며 퇴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동주민센터 사회복지사가 복지관으로 뛰어들어왔다.

얼굴에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큰일 났어요! 이모 씨 어르신이 2주째 연락이 안 돼요!"

"이모 씨요? 우리 밑반찬 배달 대상자잖아요.

" "맞아요. 혹시 최근에 안부 확인 됐나요?"

서류를 확인해봤다.

주 2회 화요일, 금요일 배달. 쉽게 확인될 거라 생각했다.

"어? 이상하네... 3회 연속 부재로 표시되어 있네요.

"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3회면... 일주일 반이잖아요? 복지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즉시 현장으로 향했다.


어르신이 사는 아파트 계단을 오르며 이웃들에게 물었다.

"혹시 이모 씨 어르신 보신 적 있으세요?"

"못 본 지 꽤 된 것 같은데요?

원래 잘 안 나오시긴 하지만..." 문 앞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여러 번 눌렀지만 응답이 없었다.


"어르신! 이모 씨 어르신! 복지관에서 왔어요!" 문을 두드려도 소용없었다.

어르신은 미혼으로 혼자 사셨다.

유일한 가족은 지방에 사는 조카뿐이었다.

조카에게 전화했다.

"최근에 어르신과 통화하신 게 언제예요?"

"한... 한 달 정도 됐나요? 제가 바빠서..." 상황이 심각했다


. 119와 112에 연락했다.

"2주간 연락 두절이고, 폭염 상황입니다.

긴급 개입이 필요해요." 30분 후, 119가 도착했다.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갔다.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어르신은 거실 한가운데 엎드려 있었다.

옆에는 500ml 생수병 하나가 놓여 있었다.

2.캡처.JPG

"의식 있습니다! 살아계세요!" 다가가 보니 더 끔찍했다.

대소변을 그대로 본 채로 있었고, 바퀴벌레가 몸 위를 기어다니고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바퀴벌레부터 떼어냈다.


"어르신... 괜찮으세요?" 간신히 눈을 뜨고 말했다.

"물... 물만 마셨어... 11일..." 11일. 작은 생수병 하나로 11일을 버티셨다.

"병원 가셔야 해요. 119 왔어요."

"안 가... 조카한테 부담... 안 돼..."

목소리는 작았지만 완고했다.


다시 조카에게 전화해서 어르신께 바꿔드렸다.

"이모! 병원 가셔야 해요! 제발요!"

조카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어르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카가... 가라니까... 갈게..." 구급차에 실려가는 어르신의 손은 뼈만 남아 있었다.

11일간 물만 마시며 버틴 흔적이었다.


병원에서 의사가 말했다. "하루만 더 늦었으면 위험했어요.

심한 탈수와 영양실조입니다.

" 중환자실에서 2주간 치료받았다.

천천히 회복되는 듯했다

. 하지만 어르신은 지역사회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해 겨울, 어르신은 요양병원에서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우리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주 2회 밑반찬 배달.

정기적인 안부 확인. 완벽해 보이는 돌봄 체계.

하지만 어르신은 11일간 죽음의 문턱에 있었다.

'3회 연속 부재' 이 기록을 그냥 행정적으로 처리했다면?

2주가 아니라 한 달이 지나서야 발견됐을지도 모른다.

시스템의 빈틈은 항상 존재한다.


그 빈틈을 메우는 것은 사람의 민감함이다.

"조카한테 부담... 안 돼..." 어르신의 이 말이 가슴을 찢었다.

존재 자체가 부담이라고 생각하는 .

도움받는 것조차 죄스러워하는 마음.


진정한 돌봄은 무엇일까?

배달 횟수를 늘리는 것?

확인 전화를 자주 하는 것?

아니다.


"어르신, 오늘 더우시죠?"

"별일 없으세요?"

이런 일상적 관심이다.

한 사람의 부재를 알아차리는 것.

평소와 다른 신호를 감지하는 것.

그것은 매뉴얼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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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메시지 999》는
고독사와 가정 내 임종을 둘러싼
작은 신호들과 놓쳐버린 이야기들을 기록한 에세이입니다.

간호사이자 사회복지사로 15년을 살아오며,
삶의 마지막 곁을 지키려 애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일상 속 이야기와 활동 후기는 블로그에서 함께 나누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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