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전화를 안 받거나 문을 안 열어준 적이 없어요."
노노케어 어르신의 떨리는 목소리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늦가을, 화창한 아침 9시.
평소처럼 어르신말벗서비스를 위해 방문했는데 문이 잠겨 있었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나 보다.
담당 사회복지사가 먼저 현장에 도착했지만 상황은 여전했다.
"아무래도 너무 불안한데, 한 번 와주실 수 있을까요?"
전화를 받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제발 아무 일 없기를.
현장으로 가는 내내 손에 땀이 났다.
문을 따고 들어간 집 안,
어르신은 거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제발, 제발... 다가가 확인하니 의식은 없었지만 숨은 붙어 있었다.
"어르신! 어르신!" 미친 듯이 소리쳤다.
119를 부르는 손이 떨려서 번호를 제대로 누르기도 힘들었다.
응급실로 이송하는 내내 어르신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차가운 손. 저혈당 쇼크라고 했다. 보호자를 찾아야 했다.
어르신께 보호자가 있냐고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어르신은 연락할 염치가 없다며 전화번호 알려주는 것을 꺼리셨지만,
병원 상황을 한참 보더니 남동생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용기 내어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희 형과 저는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에요.
저는 입원하는데 도움을 줄 수 없을 것 같아요."
딱 잘라 말하는 목소리.
예상은 했지만 가슴이 먹먹했다.
그래, 가족이 다 이런 거지.
그런데 몇 시간 후,
다시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이 하루종일 무거웠어요.
제가 뭘 도우면 되나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아, 이 사람도 힘들었구나.
며칠 후, 주치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어르신 주치의입니다."
의사 선생님 목소리가 따뜻했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따뜻한 의사 목소리였다.
"다행히 어르신은 건강을 회복하고 있고
이번 주 내로 퇴원이 가능할 것 같은데,
염려되는 부분이 있어서 연락드립니다.
어르신은 지금 당뇨약에서 인슐린으로 변경된 상황이고...
이게 안 된다면 어르신은 다시 이렇게 저혈당으로 병원에 오게 될 겁니다.
이번에는 정말 돌아가실 뻔했거든요."
주치의가 걱정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왜인지 눈물이 났다.
의사가 퇴원 후까지 걱정하다니.
퇴원 날, 어르신을 모시러 갔다.
병원 로비에서 어르신이 휠체어에 앉아 기다리고 계셨다.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셨다.
"우리 집에 드디어 왔다."
집에 도착해서 하신 첫마디였다.
그 순간 울컥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생명의 은인입니다."
어르신이 내 손을 꼭 잡으며 말씀하셨다. 거칠거칠한 손. 따뜻했다.
관계는 생명을 살린다.
"한 번도 안 받은 적이 없어요"라고
말한 노노케어 어르신의 그 민감함이 한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
평소와 다른 낌새를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생명을 구한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이 하루종일 무거웠어요."
차가워 보이는 가족 관계 속에도 여전히 미안함과 걱정이 남아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희망이 있었다.
우리는 더 많은 시스템이 필요한 게 아니다.
더 민감한 관계가 필요하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회.
부재를 알아차리는 이웃.
부담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환영받는 공동체.
그것이 진정한 돌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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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메시지 999》는
고독사와 가정 내 임종을 둘러싼
작은 신호들과 놓쳐버린 이야기들을 기록한 에세이입니다.
간호사이자 사회복지사로 15년을 살아오며,
삶의 마지막 곁을 지키려 애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일상 속 이야기와 활동 후기는 블로그에서 함께 나누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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